국토부가 9월에 KTX 서비스 개선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갑자기 KTX 서비스 개선안이 마련되는 이유는 원희룡 장관이 SNS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됐다. 원희룡 장관은 KTX를 이용하는 승객의 입장에서 느낀 불편이라며 글을 올렸다. KTX서비스에 개선의지를 내보이는 문장속에는 한탄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장관은 "불쾌한 냄새로 차라리 참고 마는 화장실, 머뭇거리게 되는 남녀 공용화장실, '이물은 마실 수 없습니다.' 수질을 의심케 하는 세면대 문구,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푹푹찌고 더운 수유실, 짐을 두기가 겁나는 보관함..." 이어서 "KTX의 다소 높은 이용료를 감안하면, 빠른 KTX속도 만큼이나 빠른 해결이 필요합니다."라고 밝히며 국민 불편의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일부 언론은 "국토부의 전신인 '국토해양부'가 지난 2012년 세종시로 이전한 이후 10년 동안 7명의 국토부 장관들이 KTX를 이용해 서울과 세종을 오갔지만, 이 같은 불편 사항을 발굴해 실질적인 시정에 나선 건 원 장관이 처음이다, '원 장관은 생활에 밀접한 불만 사항을 찾아 개선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평가가 관가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라며 장관을 띄우고 있다. 드디어 스타 장관이 탄생하는 것인가?
아마도 국토부는 장관이 언급한 내용을 중심으로 개선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장관이 느낀 불편은 열차 서비스의 본질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을까? 일단 원희룡 장관이 지적한 내용들을 따라가 보자. 20량으로 구성된 KTX 열차에는 모두 10개의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2호차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포함해 남녀 공용화장실은 모두 3개이고 나머지 7개는 남녀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
남녀 공용 화장실이 설치된 이유는 객차 구조상 남녀 각각 한 개의 화장실을 둘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녀 공용 화장실을 여성 혹은 남성 전용으로 운영할 경우 일부 객실 승객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조금 더 먼 객차로 이동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 공용 화장실에 대한 거부감이 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남녀 공용 화장실을 폐지할 수 있다.
화장실 냄새는 KTX 변기의 세척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KTX 화장실은 항공기와 유사하게 적은 양의 특수 세정액과 공기압력을 이용한다. 이때 세정액은 내부 여과망을 통해 정화 후 순환과정을 거쳐 재사용하게 된다. 좁은 화장실 구조에서 이용자가 많을수록 화장실에서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또는 화장실에서 기본 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승객이 있을 경우 바로 청소가 된 쾌적한 화장실도 금방 오염된다. 이 같은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려면 운행 중에도 주기적으로 화장실 청소가 되어야 하는데 결국 인력 문제로 귀결된다. 가뜩이나 적자라며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토부는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원희룡 장관을 분노케 한 것은 "이 물은 마실 수 없습니다"라는 화장실 세면대 문구였다. 장관은 수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그런데 이 문구는 일본의 신간센부터 독일의 이체, 프랑스의 TGV, 중국 까오티에, 러시아 삽산 등 내가 타본 전 세계 모든 고속열차의 화장실 세면대에 붙어 있다. 고속열차뿐만 전 세계 모든 열차의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마실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식수가 필요한 장거리 횡단 열차의 경우에는 객실 공간에 따로 온수를 공급하거나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한국에서 열차에 공급되는 물은 수질이 나쁘지 않다. 기지에서 수돗물을 채운다. 그러나 "마실 수 없다"라고 공지하는 이유는 물이 열차 물탱크 내에 저장되어 운행하는 동안 다양한 외부 환경에 노출되기에 음용을 제한할 뿐이다. 원희룡 장관은 화장실에 "이 물은 마셔도 상관없습니다"란 문구가 붙길 바랄지 몰라도 위생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철도 운영사 입장에서 볼 때 합리적인 생각은 아니다.
만약 국토부가 장관의 심기를 살핀다며 KTX 화장실 세면대 공급수 수질 개선에 나서는 순간 코미디가 벌어진다. 수질 개선을 위한 필터 장착과 정기적인 수질 검사를 시행해 고객 서비스 수준을 높일 것인가? 수질 기준은 어떻게 정할 것이며 주기적인 필터 교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장관이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특정 분야에 무지한 장관의 실수를 교정해 줄 수 없는 참모들이 없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관료사회에서 감히 옳은 말을 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을 본다.
KTX에서 푹푹찌는 곳은 수유실만이 아니다. 제조 당시부터 객실을 제외한 공간은 냉방이 안된다. 많은 입석 승객이 폭염 속 더위를 참으며 통로석에 앉거나 서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KTX의 구조적 문제이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 우선적으로 수유실 만큼은 보조 냉방기구를 설치하는 임시 대책을 세우고 새로 도입되는 고속열차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철도와 유럽철도의 차이점은 고속열차의 짐 보관 형태에서 드러난다. 절도범이 들끓는 유럽철도에서는 "내 손을 벗어난 짐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농담이 있다. 절도범들은 잠자는 승객의 머리 위 선반에 놓인 짐까지 가져간다. 반면 한국 열차에서 통로 짐칸에 놓을 정도로 큰 짐을 분실하는 경우는 극히 드믄 일이다.
만약 원희룡 장관의 지적대로 보관함에 짐 두기가 겁난다면 승객이 짐 보관대의 기둥에 쇄정 장치로 묶으면 그만이다. 생활용품점에는 매우 싼 가격에 비밀번호를 지정해 짐을 묶을 수 있는 상품을 팔고 있다. 고객 만족을 시킨다며 KTX 짐 보관대에 또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으나 승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승객들에게 맡기는 게 낫다.
무엇보다 원희룡 장관의 문제는 지금 당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철도 서비스에는 눈 감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최근에 포항의 한 방송사로부터 왜 포항에서는 수서발 고속열차를 타지 못하고 있는지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굳이 설명할 것도 없었다. 국토부가 안 하는 것일 뿐이다.
포항뿐만이 아니라 창원, 진주, 여수, 순천 등 지방 여러 도시에서 수서행 고속철도 혜택을 못 누리고 있다. 국토부가 결정만 내리면 당장 이번 추석부터 특별 열차를, 다음 설에는 정기 열차를 편성해 각 지방 도시발 수서행 고속열차를 달리게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국토부가 국민 편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원희룡 장관은 KTX 화장실 세면대 수질 개선에 몰두할 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화장실 세면대 물의 수질이 어떻든 간에 고속열차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것이 고속철도 소외 지역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