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소장 출신인 데이비드 서치타가 현역 시절이었던 2013년에 쓴 논문 <제주해군기지: 동북아의 함의>에 담긴 내용이다. 그는 미 7함대와 주한미 해군 작전참모를 거친 '작전통'이었다.
서치타는 이 논문에서 "제주해군기지의 잠수함은 마치 단두대의 칼(guillotine blade)처럼" 중국의 해양수송로와 함대를 괴롭힐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자세한 내용은 길윤형·장영희·정욱식 공저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의 위기: 남북한은 동맹의 체인에 연루될 것인가> 참고)
10년 전 논문 내용을 새삼 거론한 이유는 최근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중국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대만 포위와 봉쇄 훈련을 5일부터 72시간동안 실시했다.
이후 6일부터 15일까지 서해(황해) 남부에 있는 하이저우만 해상에서 실탄 사격 훈련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또 8일부터 한 달간 보하이만에서도 군사 임무가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서치타의 논문 내용과 중국의 서해 훈련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무엇일까? 미국 내에선 대만 해협에서 미중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중국이 이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도처에 산재되어 있어 대만 해협과 그 인근으로 결집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중국의 군사력은 단 시간 내에 대만 해협 쪽으로 집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 대만 유사시 해군력을 결집시키려면 서해에 있는 동양함대와 북양함대의 투입도 요구된다.
서치타의 논문은 바로 이 점을 짚고 있다. 미국이 중국 동부와 가장 가깝고 대만 해협과도 인접한 제주해군기지를 활용하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공격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중국이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서해에서의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비책을 세우고 있는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논란 당시에도 미 해군이 이곳을 정박지나 기항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은 숱하게 제기되었었다. 하지만 군당국과 보수 언론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기에 바빴다. 실상은 어떨까?
2017년 제주해군기지 완공 이후 미 해군의 이지스함, 핵추진 잠수함, 핵추진 항공모함 등이 제주해군기지를 여러 차례 입항했다. 또 현행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미국은 "적절한 통고"를 하면서, 혹은 필요에 따라 이조차도 없이 대한민국의 비행장이나 항구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주권의 '미국화'는 유사시 우리 운명의 '타자화'로 연결된다.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이 주한미군 전력을 동원하거나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거나 경북 성주 사드 기지를 가동하면, 제3자인 한국은 중국에 군사적 적대 행위를 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는 중국의 보복 수위와 북한의 선택에 따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제기된 지 20년 가까이 지났고, 제주해군기지 논란도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기습적인 사드 배치도 5년이 경과됐다. 그런데도 이들 문제는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의 관점에서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특히 대만해협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우리의 선택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누락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에 있는, 혹은 한국을 경유하려고 하는 미국 군사력에 대한 주권적 통제 방안은 무엇이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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