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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와 숙명여대, 굴종할 것인가 승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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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대와 숙명여대, 굴종할 것인가 승리할 것인가

[기고] 국민대가 표절 판정할 수 없는 이유

(이 글은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다수의 대한민국 대학원생, 연구자, 교수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필자주)

1990년대 중반 대학원을 다닐 때 일이다. 도서관 휴게실에서 동료 학생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한 학생이 와서 앉자마자 씩씩거리며 가방에서 잡지 하나를 꺼낸다. "이거 한 번 읽어 봐." 이 친구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이 올랐나 궁금해 하며 접힌 부분을 펼쳐 들여다보니 성공한 사업가의 인터뷰였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것까지는 훌륭했는데 문제는 그 중간쯤 박혀있는 그의 발언이었다. 30여 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나중에 혹시 필요할지 몰라 박사학위도 따 두었다."

역경을 헤쳐 나가야 했던 그 바쁜 와중에 짬을 내 박사학위도 따 두었단다. 나중에 혹시 필요할지 몰라 1종 운전면허를 땄다는 사람은 봤어도 박사학위를 미리 따 두었다는 사람은 처음 봤다. 앞뒤를 읽어봐도 학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가 더욱 열불이 올랐던 것은 이 사람은 그렇다 치고, 이런 이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학교는 도대체 어떤 학교인가였다.

88서울올림픽을 향해 치닫던 1980년대는 한국사회가 뒤집어지듯 급변하던 시기였다. 컬러TV방송이 시작되고, 프로스포츠가 출범하고, 정부가 갑자기 저축이 아닌 '소비의 미덕'을 강조하기 시작하고, 덕분에 '마이카붐'이 확산하고,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고, 외제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범사회적 흐름과 별개로 대학가에서도 조용하지만 확실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박사학위 취득이었다.

학위 장사(?)의 시작

당시엔 대학 교수들 중 석사학위 소지자가 꽤 많았다. 서울대에도 있었다. 한국 지성사의 대표적 석학 고 이어령 교수도 이화여대 교수가 된 건 1966년이었지만 박사학위를 딴 건 1987년이었다. 사실 당시 '이어령의 논문을 감히 누가 심사할 것인가'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어령 자신이 밝혔듯 박사학위 제자들 가르치는 데 불편함을 느껴 늦은 나이지만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이때는 '석사 교수'들 뿐 아니라 대학원생들의 박사과정 입학이 급증할 때였다.

문제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대학이 박사학위를 남발하는 '논문공장'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재정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 사립대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임 교원을 뽑기 보다는 겸임교수, 초빙교수, 특임교수, 산학교수, 강의교수, 연구교수 등 기존에 없던 단기 계약직 교수들을 임용하기 시작한다. 국립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무더기로 교수가 됐다.

교수들도 문제였다. 학계엔 존경 마땅한 훌륭한 교수들이 많이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은데, 이들의 못된 버릇 중 하나는 제자들로부터 대접 받고 제자들 거느리길 즐긴다는 것이다. 대학원 지망생이 줄고 있는 분야가 특히 심하다. 그래서 이들은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협동과정 등을 신설해 학생들 모집에 나선다. 자신의 전공과 상관이 없어도 '장사'만 되면 대학원 프로그램을 새로 만든다.

표절의 발전

이런 학위과정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입학 전 교수로부터 편의(?)를 봐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학한 이들이 과연 제대로 논문지도를 받고 자신의 논문을 스스로 작성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렇지 않다. 결국 그들은 선배가 했던 대로, 옆에서 하는 대로 논문을 작성하게 된다. 표절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남의 글을 베끼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을 학위를 쥐어줘 졸업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학위장사 맞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날림 논문, 표절 논문으로 박사가 된 이들이 또 교수가 된다는 점이다. 결국 대학은 표절논문을 양산하는 논문공장이 되고, 여기서 박사가 된 사람이 또 교수가 되고, 이들이 다시 제자를 날림 지도하며 표절논문을 재생산하게 되는, 표절의 무한루프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압축성장이 많은 사회문제를 동반한 것처럼 학계도 빠르게 진화하면서 많은 문제를 수반하게 됐는데 그 중 가장 뼈아픈 것이 바로 표절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공직자 논문표절 문제가 빈번해지자 전수조사에 나섰는데 모든 대상자의 논문이 표절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나자 중간에 접었다고 한다. 답답한 것은 이 논란이 20년이 지나도 도대체 끝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국민대의 궤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문제는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의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에서 촉발됐다. 표절의 '피해자'로 알려진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의 설명대로 김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의 2장 1절의 3쪽 되는 분량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또 한글 '유지'를 'Yuji'로 번역한 논문의 경우 본문과 각주 곳곳이 출처 없이 토씨까지 똑 같을 뿐 아니라 표절률이 무려 43%가 나왔음에도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것은 학계 상식 뿐 아니라 학술 윤리에 반한다.

국민대가 김 여사의 논문들이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제시한 근거는 모조리 반박의 대상이다. 우선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의 박사학위가 실무·실용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생전 처음 듣는 궤변이다. 일반대학원생 아니면 표절을 봐줘도 된다는 것인가? 이는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대학원의 형태나 이름이 어떠하든, 그것이 석사논문이든 박사논문이든, 논문 쓰면서 남의 것을 자기 것인양 베껴 쓰면 안 된다. 간단하다.

또 국민대는 유사도가 높은 부분이 대부분 이론적 배경이라는 점을 들어 표절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희한한 결론이다. 이론적 배경은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에겐 결론 못지않게, 어쩌면 더 중요한 부분이다. 그 연구의 출발점이자 토대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토대를 베껴 썼다는 이야기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과거 내 논문을 쓸 때나 제자의 논문을 지도할 때 나는 논문의 서론격인 1장과 이론적 배경인 2장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여기에서 논문의 설계와 방향성이 결정되고, 결국 연구의 핵심인 '연구문제'가 확정되기 때문이다. 앞부분이 탄탄하면 뒷부분은 오히려 쉬워지고 깔끔하게 마무리가 된다. 꼬리(결론)는 머리(서론)에 의해 규정된다.

나아가 국민대는 연구의 핵심 부분에서는 독자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 표절 의혹이 제기된 부분이 결론 같은 '결정적 대목'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독자적으로 진행한 핵심 부분이 '대머리 남성은 주걱턱 여성과 궁합이 좋다'는 걸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나 핵심이 아니면 표절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리고 결정적 대목? 논문에 결정적 대목이 있다는 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논문은 목차부터 참고문헌까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게 학자의 자세다.

마지막으로 국민대는 김 여사가 재직했던 회사의 사업계획서를 도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회사 측이 학위논문 작성에 동의했다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마도 조사기간 중 제출된 듯한데 이 역시 논문의 표절여부와 상관이 없다. 학위논문이나 학술논문은 공적 영역의 저작물이지 사인 간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논문 작성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면 무조건 출처를 밝혀야 한다. 연구윤리는 누가 봐줘서 지켜지는 게 아니다. 연구 수행자 본인이 지켜야 한다.

국민대의 반 학술적 기만

구 교수가 "복사해서 붙여넣기"한 "완벽한 표절"이라고 지적했음에도 국민대는 위와 같은 반 학술적 논리로 표절논문에 면죄부를 준 것에서 더 나아가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한다. 국민대는 "논문 작성 당시 연구윤리를 가늠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연구윤리 교육에 관한 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못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김 여사의 논문 통과가 확정된 게 2007년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사회 고위층과 교수들의 논문 표절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다. 논란이 끊이지 않던 연구부정행위는 급기야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연구윤리위반으로 나라를 뒤흔들었고 이듬해엔 김병준 교육부총리와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취임하고서도 논문표절 문제 때문에 낙마하는 참사로까지 이어졌다.

논문표절이라는 사회적 논란이 10년이 넘도록 끊이지 않자 당시 거의 모든 대학들이 '교원연구윤리지침'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만약 당시 국민대에 관련한 '연구윤리 시스템'이나 '연구윤리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한 논문표절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5일 13개 교수단체 최초의 공동성명 발표가 있었는데 이들은 국민대의 판정을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작물을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활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로 규정한 2018년 공표 교육부 훈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김 여사의 논문은 '인용 표시 없이 6개 이상 동일한 단어가 연속으로 나열될 경우 표절'이라는 교육부의 2007년 '논문표절 가이드라인'에도 명백하게 저촉될 뿐 아니라 국민대의 그 이전 연구윤리지침에 근거해도 명백한 연구윤리위반이 될 것이다.

참고로, 하나, 표절은 학술 연구자가 이를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성립한다. 둘, 논문의 연구윤리 검증에는 시효가 없다.

국민대와 숙명여대, 굴종할 것인가 승리할 것인가

국민대에 이어 숙명여대도 난감한 상황이 됐다. 김 여사의 1999년 석사학위 논문이 또 표절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우희종 교수에 따르면 논문의 표절률이 40%를 넘는다고 한다. 숙명여대가 난감한 이유는 국민대와 동일하다.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는 총 네 편의 논문을 심사했는데 하나는 김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이고 세편은 박사학위 논문심사 청구 자격을 얻기 위해 제출했던 학술지 및 학술대회 발표문이었다. 따라서 박사학위 논문은 물론이고 이 학위논문의 전제가 되는 나머지 세 편 역시 표절판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세 편 중 한 편이라도 표절판정을 받으면 논문심사 청구 자격 자체가 상실되니까.

숙대도 마찬가지다. 만약 김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석사학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국민대 박사과정 지원자격 자체가 상실된다. 국민대가 연구부정행위가 아니라고 끝까지 버티더라도 숙대가 표절판정을 내리면 김 여사의 국민대 박사과정 입학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힘든 판단이고 어려운 순간이다.

그러나 국민대와 숙명여대의 구성원들이 학자적 양심과 지식인으로서의 용기를 발휘한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많은 생각이 들겠지만 복잡할수록 단순화 시켜야 한다. 굴종할 것인가, 승리할 것인가. 대한민국 학계는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8일 국민대 정문 앞에서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7년 쓴 박사학위 논문조사 결과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김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살펴보고 있는 숙명여대의 민주동문회도 숙명여대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개최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동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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