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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님, 연극 꼭 그날 보셨어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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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님, 연극 꼭 그날 보셨어야 했나요

윤석열 정부, 미중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점 찾으려 노력했지만...'디테일' 부족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한 시 보여졌던 한국 정부와 의회의 대처를 두고 이른바 '결례' 논란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한국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한 측면도 있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펠로시 의장에 대한 결례 논란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됐다. 첫 번째는 3일 펠로시 의장이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했을 때 한국 측 의회 또는 정부 인사 누구도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4일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은 브리핑에서 "공항 영접 등 제반 의전은 우리 국회가 담당하는 것이 외교상, 의전상 관례"라며 국회에서 담당했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안은주 외교부 부대변인 역시 "외국의 국회의장 등 의회 인사 방한에 대해서는 통상 우리 행정부 인사가 영접을 나가지 않는다. 외빈 영접은 정부의 공식초청에 의해 방한하는 외빈에 대해 제공하는 예우이며, 우리 의전 지침상으로도 국가원수, 총리, 외교부 장관 등 정부인사에 대해 제공하도록 되어있다"며 "1997년도 깅리치 하원의장 방한 시에는 물론 최근 다른 나라 국회의장이 방한하셨을 때에도 행정부의 영접인사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주한미국대사관 측에서 한국 인사가 아무도 영접을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 최 비서관은 "확인해보니 국회 의전팀이 영접하려고 했지만 미국 측이 늦은 시간에 공군기지를 통해 도착하는 점을 감안해 영접을 사양했다고 한다"고 전후 상황을 전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주한미국대사관은 이날 저녁 "미 의회 대표단 방한 시 대한민국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여 의전, 기획 관련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며 영접 문제에 대해 국회와 조율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3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 대사,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펠로시 의장 영접 결정 과정에 대한 정부의 이같은 설명에 무리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사안이 논란이 된 것은 흔히 외국의 주요 인사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영접을 나가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고, 이것이 지금까지 국민들이 봐왔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눈치를 보느라 펠로시 의장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일부의 시각이 이번 논란을 키운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책임있는 국가기관인 국회나 정부가 영접을 나가지 않을 경우 어떤 논란이 일어날지에 대해 예상하고 대비했다면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에서 설사 영전을 사양했다고 하더라도, 국회나 정부가 미측에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설득이라도 해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에 성의를 보일 수 있는 국회의 실무급이라도 영전에 나간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과 같은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연극 꼭 그날 봤어야 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통화를 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은 이에 대해 "모든 것은 우리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익 고려'가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최 비서관은 "최대한 압축해서 드린 말씀이고 해석은 언론의 영역"이라며 구체적 답을 피했다.

최 비서관의 이같은 언급은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통령이 휴가 일정까지 취소하고 펠로시 의장을 만난다면 중국이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은 물리적인 시간이 맞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약 2주 전 펠로시 의장의 동아시아 방문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윤 대통령과 만남이 가능하냐는 문의가 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때 마침 (윤 대통령의) 지방 휴가 계획을 확정해놨기 때문에 휴가 기간을 변경하면 좋겠지만, 꼭 그 기간에 서울에 오신다면 힘들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2주 전에 양해를 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다 이후 윤 대통령의 지방 일정이 서울에 머무는 것으로 변경되면서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짧은 일정에 식사라도 대접하는 게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으나 이미 펠로시 의장의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 대면을 준비하고 실행할 시간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중국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지만 아무리 의회 인사라고 해도 미국의 주요 인사를 아무런 접촉 없이 그냥 보낼 수도 없는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전화통화라는 방식의 접촉을 하기에 휴가는 좋은 명분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도착한 3일 연극을 보러 가고 이후에 식사도 한 것이 공개되면서 '휴가'라는 명분은 펠로시 의장과 대면 만남을 피하기 위한 핑계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대학로 연극을 보고 뒤풀이까지 하면서 미 의회의 대표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라고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출연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연극 공연에는 김건희 여사도 동행했으며 인근 식당에서 배우들과 식사를 하며 연극계의 어려운 사정을 청취하고 배우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대통령이 휴가 중에 미 하원의장을 만나기보다는 연극을 보고 최근 연극계의 어려운 사정을 듣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은 대통령의 선택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통령의 행적이 공개될 경우 논란이 될 수 있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통령실은 이미 2주 전부터 펠로시 의장의 방한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펠로시 의장이 한국에 도착한 당일에 윤 대통령 부부가 이 연극을 봐야 했을지 의문이다.

해당 연극은 윤 대통령의 휴가 기간인 5일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고 주말인 6,7일에도 계속되고 있다. 만약 윤 대통령이 이 연극을 펠로시 의장이 떠난 뒤에 봤다면 '결례', '소홀'이라는 평가가 지금처럼 많이 나오지는 않았을 수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세부사항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하면 일을 제대로 해내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40분 동안이나 통화를 했지만 그 내용보다는 외적인 것이 더 많이 회자됐다는 점을 보더라도, 외교에서는 세부적인 준비와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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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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