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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통일언론을 주창한다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 15. 조용수 선생, 마이크 잡다

김구학회(대표 한동우)의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김구, 조봉암 등 선열들이 오늘의 시대 상황을 직시하며 나라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민족의 존엄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겨레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독백 형식의 글이다. 모든 글은 선열들이 남긴 기록들, 행적들, 역사적 사실들 등을 토대로 하여 필자의 의견을 가미했다.

네이버 블로그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에는 2020년 7월 이후의 모든 연재 글(25편)을 볼 수 있다.(☞ 바로 가기)

1. 네 가지 사시(社是)를 정한 이유

내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올시다. 올해가 내 죽은 지 꼭 60년이오. 불과 서른하나에 죽은 이승의 한 때문인지 저승에서나마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환갑에서야 이리 말문을 여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은 60년 전 내가 죽으면서 절규했던 그 요구와 거리가 멀어 보이오. 이것을 넋두리라면 넋두리고, 한풀이라면 한풀이라 할 수 있소이다. 하지만 겪어보니 저승에서도 이승에서도 이치는 같소. 만고불변의 진리가 어찌 이승과 저승이 다르겠소.

60년 전 이맘때 나는 <민족일보>라는 일간 신문을 창간했소이다. 2월 13일 창간호를 발행했으니 3~4월인 요즘 한창 창간과 독자의 성원에 감격해 정신없이 일할 때였소. 참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할 때로 기억되오,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일보>는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의 비원을 호소하는 신문'이라는 네 가지 사시를 정한 신문이외다.

왜 이런 네 가지 사시를 정했는지 잠깐 설명하겠소. 사실 나 조용수는 원래 보수적인 사람이외다. 경남 함안의 보수적 집안에서 태어나 진주중학교에서 해방을 맞으면서 좌우익으로 나뉘어 싸울 때 나는 우익 입장에 섰던 사람이오. 그래서 좌익 학생들로부터 테러를 당해 대구 대륜중학으로 전학할 수밖에 없었소. 나는 일본에서도 민단에 몸담고 조총련의 재일교포 북송운동 반대에 참여했던 사람이오.

▲ 1961년 8월 28일 혁명재판에 회부되어 법정에 들어서는 <민족일보> 간부. 조용수 송지영 안신규(왼쪽부터). ⓒ연합뉴스

<민족일보> 사시

그런데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암울했소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노욕은 더욱 심해져 정적 진보당 조봉암 당수를 법살했소. 일본에서 조봉암 구명운동을 하던 나는 크게 낙심했고, 특히 조국의 3.15 부정선거 소식을 듣고 절망했소. 그러나 4.19 학생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빛과 같았소. 비록 우리는 헐벗었지만,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그 영광과 자부심, 그리고 번영된 민주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차올랐소.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국에 달려왔소. 새로운 민주 조국 건설에 일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외다.

1960년 7.29 총선에서 대중사회당 공천으로 경북 청송에서 출마했소, 그때 나는 정말 소박한 공약을 내걸었소. 3.15 부정선거 주모자를 엄중 처벌하고, 이승만과 그 일당이 도둑질한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 노동자·농민 생활 향상에 쓰고, 거창사건 등 양민을 학살한 사건을 조사하고 피해 가족에 보상하라. 또 김구·여운형·조봉암 등 정치 살해사건의 주모자를 엄중히 처단하라.

그러나 나는 낙선했소이다. 낙선의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진보세력이 여러 정당으로 분열한 그것과 혁신정당을 공산당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소. 나는 이 두 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치적 활로는 물론, 조국의 장래도 어둡다는 결론을 얻었소이다. 고민 끝에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 언론 사업이라 결론을 내렸소이다. 그래서 진보적 일간 신문 <민족일보>를 창간하기로 결심한 것이오. 다행히 같은 생각의 동지들이 많아 신문 창간 작업은 일사천리로 나갔소이다. <민족일보> 사장으로 취임하고 창간호를 발행했을 때 나는 이리 말했소이다.

"분열된 우리 민족은 상호 간의 적시와 골육상쟁에 뒤이어 심각한 빈곤만을 경험해 왔습니다. 또한 민족의 긍지를 저버리고 외세에 의존하여 15년간의 세월을 헛되게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우리 <민족일보>는 이러한 민족의 분열과 비원을 영속화하는 일부의 작용에 대하여 온갖 정력을 기울여 싸울 것이며, 특히 적극적으로 남북 간 민족의식의 추진과 생활 공동체적 연대를 추구하는 데 있는 지면을 과감하게 제공하는 것을 중요한 임무라 생각합니다."

바로 이 대목이 내가 <민족일보>를 만든 생각이외다. 분단된 조국을 극복하자는 것, 바로 그것이요.

▲ <민족일보> 사시(社是). ⓒ민족일보기념사업회

2.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뤄낸 군정 종식

나 조용수가 한편으로 민간통일운동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민주자주통일협의회(민자통)에 참여하며 혁신 세력 통합작업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였소. 혁신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은 바로 평화통일이었기 때문이오. 하지만 원로들은 서로의 작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분열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소. 진보의 분열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르겠소. 기존 것을 지키는 것은 단순하지만, 더 나은 세계로 변하자는 것에는 여러 방법론이 있으니 말이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우리 모두 더불어 잘 살자'라는 것이오. 힘들게 일하는 비정규직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농민은 물론 북쪽 우리 동포까지 모두 더불어 잘살자는 것이오. 그러기 위해선 이들 비정규직노동자, 농민을 보듬는 정치 결사체, 즉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창한 것이요. 쓸데없는 국력 낭비, 우리의 경제적 어려움이 분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민족적 자존심의 발로인 것이오.

하지만 내가 조총련 자금으로 신문을 만들어 북을 이롭게 했다는 말도 안 되는 혐의로 죽임을 당하고 60년이 지났소이다. 5·16 쿠데타는 우리 현대사에 친일 세력과 분단 세력에 군부 세력이 가세하는 결과를 만들었소. 쿠데타 정권은 18년이나 지속된 끝에 '내부 암살'로 끝나는가 싶더니, 다시 군인이 등장해 군부정권은 결국 1987년에야 종식됐소. 오랜 군부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특혜를 통한 재벌 세력을 키웠소. 결국 친일-분단-냉전-재벌은 거대한 카르텔을 만들어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소이다.

군부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나를 비롯한 인혁당 사건, 통혁당 사건,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등 많은 간첩 사건을 조작했소. 군부정권에 항의하며 많은 사람이 죽었소. 그들은 학생 열사, 청년 열사, 통일 열사, 노동 열사, 농민 열사 등으로 무려 육백 명이 넘소. 이들이 흘린 피 덕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야 나 조용수와 <민족일보>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소. 후배 기자에 의해 나의 평전이 쓰이고, 진상규명 요구가 일기 시작했소. 1998년 <민족일보> 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져 꾸준한 노력 끝에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명예 회복 및 재심 권고 조치를 받았고, 2008년 1월 드디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가 회복됐소. 지난해에는 <민족일보> 영인본을 e북으로 만들어 전국 공공·대학 도서관에 배포하는 등 뿌듯한 사업도 이뤄냈소이다.

하지만 나 조용수가 그토록 원했던 진보정치의 단합과 평화통일의 길은 진전은커녕 오히려 멀어지는 느낌이외다. 1997년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 민주노총이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2000년 자주적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을 건설했소. 그리고 2011년 통합진보당을 통해 원내 13석의 제3당으로까지 비약했소. 비록 진보정치 세력이 독자적으로 정권을 잡지는 못했어도, 정치권에서 선지자 혹은 소금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소이다.

그러나 흙탕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때문에 진보정치 세력은 분열하다 급기야 박근혜 정권에서는 정당해산이라는 탄압을 받았소. 독일 나치 시대에나 있을 법한 법리에 전두환도 검토하다 그만둔 정당해산을 마구 자행한 것이외다. 한 마디로 박근혜의 등장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였소. 그것은 진보정치 세력, 진보언론이 그만큼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오. 진보정치 분열과 역사 퇴행은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오.

3. 역사의 반동을 바로잡은 촛불혁명

하늘님이 도우셨는지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를 끌어내렸소. 이는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친일을 미화하려는 역사 퇴행과 정당을 해산하는 반민주성,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쉬운 해고를 도입하고, 전교조를 불법화하는 등의 반노동,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에 신음했던 농민들이 들고 일어선 민중혁명이었소. 여기에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시민,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숨어서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은 것에 대한 민족적 자존심이 가세한 것이 바로 촛불혁명이란 말이오. 어떤 이는 촛불혁명이 피를 흘리지 않은 명예혁명이라 하는데, 이는 잘못이오. 박근혜의 반(反)역사, 반(反)민주, 반(反)민족적 처사에 항의하다 분신한 사람만 여럿이요.

하지만 진보정치 세력은 촛불혁명을 시작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소. 정권을 잡은 보수개혁세력은 진보세력과 정치적 연대를 외면했소. 게다가 보수개혁 세력은 스스로 오만했을 뿐 아니라 표리부동하고, 무기력했소.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젊은 진보를 꿰뚫지 못했소. 진보정치 세력도 철저히 과학적이어야 함에도 감에 의존하려는 구태의연함을 보였소. 결국 민족문제에 대한 치열함이 사라지고, 젊은 세대를 공감시키지 못했소.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럿이지만 나는 언론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보는 사람이오. <민족일보>를 만들었던 60년 전과 비슷하게 절감하고 있소이다. 요즘 언론은 사회의 목탁(木鐸)이니, 공기(公器)니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요. 내 죽고 10년 후인 1971년 3월, 서울대 학생들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민중의 소리 외면한 죄 어떻게 갚을 텐가'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언론 화형식을 가졌소. 그러자 4월 기자들이 '자유언론 수호 선언'을, 1974년에는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했소. 이에 사주는 대규모 기자 해직으로 맞섰지만, 그래도 이때까지 기자들의 기개는 살아 있었소.

요즘에도 <동아>·<조선> 앞에는 폐간 시위가 이어지고 있소. 국민은 언론적폐라 하고, 기자를 '기레기'라 부르는 것을 대법원이 인정하는 판결까지 내렸소. 물론 독자가 줄고, 광고 수입이 주는 언론사의 심각한 경영 문제, 여기에 실시간 기사를 전송해야 하는 기자들의 힘든 속보 경쟁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것은 너무 심하오. 요즘 언론은 진실을 찾기보다 그냥 진영논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양새요. 

4. 통일언론은 당장 생존의 문제 

특히 우리 <민족일보>가 취했던 통일언론의 문제는 너무 고질적이오. 무턱대고 북을 증오하는 보도, 냉전에 찌든 이런 보도는 민족문제 해결은 물론, 우리 목전에도 하등의 이익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소. 리영희 기자가 '우리 언론의 평화 기피증과 통일 공포증'이라 불렀는데, 바로 그거요. 논리도 없고, 과학도 없이 무턱대고 북을 비난하는 언론의 속성에는 보수나 진보언론도 따로 없소. 그것이 외세에 이용당하면서, 남북을 영원히 결별하게 만드는 무섭고도 반민족적인 행태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언론의 색깔 논쟁은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기 위해 대한제국을 강제해 1907년 만든 보안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다시 말하면 지금 국가보안법은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말하고 생각할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됐던 일제 잔재란 말이요. 조선일보는 이 일제 정책을 충실히 따라 민족진영 윤봉길 의거를 빨갱이 소행으로 모는 일제 강점기부터 색깔 논쟁 보도를 했소. <민족일보>가 남북을 이간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보도를 배격했던 이유가 비로 그것이오. 일제 잔재로부터 이어진 더러운 DNA에 순치된 우리 젊은 기자들이 분단을 가슴 아파하지 않고, 통일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외다.

남북이 증오심을 떨치고 화해와 평화통일로 가는 것이 편협한 민족주의고, 과거사라고 헛된 소리 하지 마소. 이것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바로 우리의 생존 문제요. 얼마 전 보브 우드워드라는 유명한 미국 기자가 <격노>라는 책을 썼소. 거기에는 2017년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한반도에서 핵무기 80개를 동원한 전쟁 논의가 미국 백악관에서 진지하게 논의됐다는 것이 드러났소. 그러나 한 언론은 거꾸로 북이 미국을 공격한다고 보도하고, 대부분 언론은 영문법 운운하며 번역 논란에 매달리는 한심한 태도를 보였소.

​누가 어떻게 시작하든 한반도에서 핵무기 80개가 동원되는 전쟁은 우리 민족의 공멸임을 왜 모른단 말이오. 남북화해와 평화공존, 그리고 평화통일이 바로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고, 현실적 생존의 문제이고, 민족 최고의 국가이익이란 말이오. 그래서 남북 간 증오심을 조장하는 언론, 군사적 긴장을 이용하려는 정치세력, 통일이 불필요하다고 억지 부리는 무식한 학자. 이 모두 민족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오. 언론은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하오. 이게 바로 나 조용수가 죽은 지 60년 만에 돌아와 마이크를 잡고 호소하는 결론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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