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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불타는 것도 시간문제다"

[3등이 이긴다. 한국정치 3분지계] ②

한국이 불타는 것도 시간문제다

유럽 전역이 불타고 있다. 50도를 육박하는 폭염과 산불로 이미 수천명이 죽었다. 영국의 수은주는 최초로 40도 이상의 고온을 기록했다. 1억명 가량의 인구가 폭염 주의보와 경보 아래 놓여 있는 미국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8일 기후위기와 관련해 "인류가 집단행동이냐 집단자살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기후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지났다.

그럼에도 미국은 최첨단 무기 시험장이 된 우크라이나를 희생양으로 러시아와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투기와 전함, 탱크와 폭탄 등 전투 현장에서 대규모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는 측정조차 되고 있지 않다.

전쟁으로 연료난에 직면한 유럽은 오히려 석탄발전소를 부활시키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전쟁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유럽의 RE100(100% 재생에너지 전환)은 한 순간에 주춤거리고 있다. 탄소마피아 카르텔인 미국의 군산복합체, 석유와 가스, 석탄 메이저업체들의 돈벌이 전쟁에 전 세계가 제 손으로 눈가리개와 귀마개를 쓰고는 속수무책으로 집단 자살의 독가스장으로 향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후재난은 먼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조만간 한반도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결코 겪어보지 못한 극한의 폭염과 폭우가 들이 닥칠 것이다. 이미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어민들과 해녀들은 최근 2~3년 사이에 급격한 바닷물 수온상승과 사막화로 인한 바다 생태계 파괴 현장을 놀란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제주도 연근해의 1/3은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바다사막으로 변했다.

무엇보다도 극심한 기후변화는 극심한 식량 위기를 초래한다. 식량자급율 40%대, 곡물자급율 20% 이하인 한국의 앞날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한강의 기적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 광주 북구 상시선별진료소 의료진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7월 초 야외 냉방기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우물 안 뛰쳐나오기

대선 내내 시끄러웠던 대장동 사태는 정치인-관료-언론인-법조인 등 한국의 기득권 금수저 계급이 벌이는 돈과 권력의 투전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흙수저 계급이 오징어게임의 주식투자를 멈추고 이들 금수저 계급과 전방위에 걸쳐 상하 뒤집기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기후위기도 불평등도 해결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사회성 동물인 호포 사피엔스는 언어를 통해 소통하는 사회와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면 세계를 인식할 수도 없고 세상을 살아갈 능력도 상실한다. 1920년 인도에서 발견된 늑대 소녀 자매의 예가 극명하게 보여주듯 사람은 유아기에 늑대 사회에서 양육되면 늑대로 성장한다.

사람은 자신의 눈귀코입살갗으로 인식하는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내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산다. 지구상의 인간이 인식하는 세상은 78억 개가 넘는다.(☞ 관련 기사 : 백낙청, 기후재난 시대 '진리에 근거한 새문명'을 꺼내들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 78억 개의 세상을 제각각 칸막이 감옥에 가두고 인간과 자연을 착취해 왔다. 그 결과가 기후위기와 자본가 자신을 포함한 인간 세상의 종말이다.

이 감옥을 깨고 다시 78억개의 세상을 공존과 공유의 세상으로 바꿔야 그나마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칸막이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뛰쳐 나와야 비로소 기득권들이 만들어 놓은 지옥같은 감옥이 생생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개줄처럼 우리 목에 채워진 서구의 이원론과 극단의 개인주의 세계관을 과감하게 우물에 버리는 일이다. 성찰과 반성을 통해 자신의 우물안 세계관을 뿌리까지 내버리는 대전환의 실천이다. 서구 이원론과 극단의 개인주의가 세계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지 않으면 개인도 해방될 수 없고 사회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을 바꾸는 대전환의 기후정치 시작은 탈출과 해방이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의 급속한 확대와 함께 가짜뉴스와 알고리즘에 의해 고착되는 밀폐된 세계관의 범람은 확장된 극단의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 운동이 필요한 까닭이다.

자연발생의 민란 폭발은 수많은 인민의 희생만을 낳고 재난국가와 사회 체제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오직 먼저 각성한 소수가 조직화되고 그 소수가 다수가 되어 수많은 투쟁을 통해 체제 전환을 이룩해야만 인민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기후정치세력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개발과 성장 경제체제를 순환과 공유경제 체제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탄소체제를 햇빛체제로 빠르게 혁명하지 못하면 수천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기후학살을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세력 조직화를 꾀하는 주체들, 사회체제 전환의 촉진자-연결자를 자임하는 사람들의 과제일 것이다.

도원결의와 무지개 연합군이 세상을 바꾼다

날마다 '까꿍' 소리를 내며 기후위기에 대한 새로운 소식과 정보가 도착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인민들은 기후위기가 임계점에 이르렀거나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인식은 하고 있으면서도 행동하는 사람들은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정보만으로는 소수가 다수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네트워크 이론의 발전은 사회성동물인 호모 사피엔스의 집단행동에 대해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그 중에서 소수가 다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법칙이 있다. 도원결의와 던바의 수, 그리고 3.5%의 법칙이 그것이다.

어떤 사회운동과 체제전환 혁명도 초동주체가 있어야 한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는 예수의 12제자, 붓다의 초전법륜 제자 5명과 같은 맥락에서 모든 사회운동과 전환혁명의 출발점이다.

한 사람이 터놓고 신뢰하는 사람의 숫자는 150명 안팎이다.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무수한 역사 사실과 국가, 그리고 최근의 트위터 등 SNS까지 조사 연구한 뒤 인류가 출현한 이래 이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뇌가 그 이상은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로빈 던바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적정 수로 150명을 꼽으며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이름 붙였다.)

실제로 아마존 원시부족 공동체의 평균 구성원도 약 150여 명이다. 구성원 수가 200명을 넘어서면 공동체의 일부가 따로 다른 지역으로 떨어져 나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고어텍스를 비롯한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들도 사업부를 150여명으로 구성한다.

이것이 던바의 수다. 인류의 전쟁사를 살펴보아도 전우애로 똘똘 뭉친 전투 핵심부대는 150명 안팎의 중대 단위다.

사람의 감각 가운데 촉각은 친밀감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감각이다. 단 한 번의 접촉이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디지털미디어의 얕고 약한 네트워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이런 접촉의 친밀감을 통한 강한 결속이다.

어떤 사회운동이든지 그 이름이 활동가든 촉진자든 전위든 그 무엇이든 150여명의 핵심 부대원을 결집시켜야 활동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핵심 부대 내의 연결자-촉진자들이 다시 다단계 방식으로 핵심 부대와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

에리카 체노웨스는 국제 비폭력 갈등 센터(ICNC)의 연구원 마리아 스테판과 함께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총 323개의 전 세계 인민 저항행동 사례를 문헌 조사를 통해 분석했다. 그리고 국가 차원이건 단체 차원이건 구성원 가운데 3.5%가 행동에 나서면 그 행동은 성공한다는 공식을 발표했다. 2016/2017 촛불시위가 대표 사례다. 체노웨스의 3.5% 법칙은 사회성 동물인 인간이 지역공동체와 사회, 국가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6공화국 체제가 성립하면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의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냈다. 그리고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요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거대 조직으로 성장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들은 21세기에 20세기의 관료주의 운동방식과 회원-활동가의 대의정 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그 영향력 또한 급속히 약화되는 중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느슨한 네트워크 또는 강한 소수 정예부대로 다양하게 활성화되고 있는 여성, 청년, 장애인, 소수자, 보건, 복지 등 부문별 사회운동도 조각조각 분산되어 있는 상태로 각개약진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진보정당을 비롯한 소수정당도 풀뿌리 지역 주민운동도 마찬가지다. 

생협을 비롯한 협동조합 운동은 사람이 주인인 생명살림의 대안 경제공동체이자 직접 민주주의의 학교로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름만 다른 유통회사, 서비스 회사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협동조합의 주춧돌인 조합원의 정치경제 체제 전환을 향한 강한 정치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이같은 느슨하고 약화된 사회운동의 분절 상황은 역으로 기후정치 세력화를 강력하게 추동할 수 있는 핵심 동인이 될 수 있다. 한 분야만 쏠 수 있는 화살 하나하나를 튼튼한 연대연합의 동아줄로 묶으면 그 누구도 부러뜨릴 수 없는 괴력의 무지개 연대 화살연합이 될 수 있다.

진보정치와 녹색정치에 없었던 것

1898년 창당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19년의 활동 끝에 1917년 혁명을 성공시키고 집권에 성공했다. 1921년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28년만인 1949년 집권에 성공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물론 이들은 인민이 고루 평등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 이상사회를 공약했지만, 수천만의 인민을 학살하고 굶겨 죽이는 악몽과도 같은 독재정치를 펼치고 말았다.

1990년 민중당이 출범한 지 30여년이 지났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진보정당이 금수저 계급과 관료주의를 허물고 대한민국을 흙수저 계급이 주인되는 직접 민주주의의 사회와 국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민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진보정당이 집권의 희망이 있는 정당이라고 보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지도 의심스럽다. 녹색당은 이같은 진보정당만큼의 무게감조차도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한국의 녹색정치 실험은 2004년 6월 10일 "풀뿌리의 생명력과 연대로 시민사회의 대안적인 가치를 실현하자"는 선언과 함께 출범한 초록정치연대가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록정치연대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2명의 기초의원 당선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올리면서 2008년 자진해산하고 말았다.

2012년 4.13 총선을 앞두고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을 표방한 녹색당이 창당되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 준 충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녹색당의 창당 방식은 겉으로 내세운 표방과는 달리 이른바 기존의 여의도 정당정치 문법인 하향식 중앙정치 방식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풀뿌리 시군구 녹색당원들을 기반으로 한 상향식 정당 창당 방식이 전혀 아니었다. 이것은 총선 날짜에 맞춘 역산의 창당이라는 불가피한 현실과는 관계가 없는 문제였다. 4.13 총선의 실패 이후 정당이 해산되고 녹색당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정당활동을 하면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녹색당은 녹색가치와 대의만 있었지 권력을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녹색사회와 녹색국가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 곧 치열하고 구체화된 실천 전략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색당에는 풀뿌리 조직화 전략이 없었다. '반정당의 정당'을 기치로 내건 녹색당이 기득권 정당 정치에 반기를 들고 대항하는 저항세력으로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풀뿌리 시군구 지역에서 주민들을 조직하는 일상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 활성화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직된 주민들의 '쪽수' 밖에 없었다. 창당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녹색당에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시군구의 일상 정치 활동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진보정당과 녹색당에는 시군구 주민 조직화 전략이 없었다. 주민 조직화 전략이 없는 정당이란 판매전략이 백지인 상태에서 제품을 출시한 기업과 똑같다. 집권 전략과 청사진이 없는 정당을 체제를 전환시킬 수 있는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글은 웹진 <나비>의 '기후@나비'에 동시 게재됩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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