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장 안에 스스로 들어가 31일간 갇혀있던 조선업 노동자가 밖으로 나왔다.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을 입에 담는 가운데 노사합의가 이루어져 폭력적인 진압은 피했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임금은 이전에 비해 삭감된 상태고, 이후 사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비롯해 아직 확실치 않은 것들이 남아있다. 더군다나 많은 전문가와 정치인이 지적한 다단계 원하청 구조 역시 그대로다. 하청업체는 권한과 자원이 없다 하고, 원청은 책임이 없다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위험과 불이익이 전가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파업이 마무리 되었어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은 위태로워 보인다. 이 위태로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바로 가기 : 시민건강연구소 7월 22일 자 연구소 발간 자료 '거제, 2017') 2010년대 들어 찾아온 조선업 불황, 경영진의 오판과 회계를 조작하는 범죄 등은 노동자들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나 2016년 대대적인 해고, 그리고 임금삭감과 노동조건 악화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건강과 삶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단적으로 조선업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거제시의 자살률이 2016년 크게 치솟았고, 이후로도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가기 : 통계청 사망원인통계)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시민건강연구소에서는 거제시 조선업 노동자 및 주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높은 자살률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람도 나처럼 힘들었을 테니, 자살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는 분위기다. 삶의 훼손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자살 이외에도 조선업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전방위적이었다. 소득과 자산이 감소하면서 부모님께 드리던 용돈을 못 드리게 되고, 자녀들 학원을 줄였다. 심각한 것이 아니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도 미뤘다. 사회생활도 영향을 받아 인간관계는 축소되고, 가족관계도 악화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자존감이 무너지고, 절망감과 불안감, 적대감이 커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은 이러한 고통이 쌓이고 쌓여 내몰린 결과다. 단지 통장에 입금되는 액수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삶의 존엄과 자긍심,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노동에 대한 절박한 요구다.
그동안 국가권력은 무엇을 했나. 노사 중재는커녕 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이번 정부만 일컫는 게 아니다. 지난 수년간 조선업 위기라며 기업과 경제 살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지, 사람을 살리는 데는 무심했다. 사실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장기적 안목으로 숙련노동자들을 육성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기업과 경제 살리기도 제대로 못한 셈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파업은 끝났지만, 문제의 해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는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법과 원칙에 따라 기업과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고,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자를 지원하고,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구조, 불안정한 노동을 양산하는 구조를 철폐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대로 살 순 없어서 거리에 나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언제까지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삶을 걸고서 거리로 나오게 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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