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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줄 알아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다

[기고] 기후위기, 인간은 스스로 멸망을 재촉한다

올 여름 우리 모두는 전례 없는 폭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만이 아니다. 올 여름의 폭염은 세계 도처에서 기상관측사상 최고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에서는 2050년에나 올 것이라던 폭염이 이미 내습하였다.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기후위기의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당장 5년 그리고 10년 뒤 과연 우리는 어떠한 수준의 폭염으로 고통받게 될 것인가? 문제는 폭염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대형 산불과 홍수, 가뭄은 물론 식량위기 그리고 전염병은 또 어찌할 것인가? 과연 우리 인류는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멸종으로 가는 열차에 타고 있다

지금 우리는 멸종으로 치닫는 열차에 탑승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무한대적 이윤추구와 욕망의 극대화를 특징으로 한다. 대자본은 인간의 말초적 욕망을 극대화하고 허구적인 미적 가치를 증폭시킴으로써 대중들을 과잉소비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국가는 개발지상주의와 성장 제일주의로 일로매진함으로써 이 과정을 완성시켜왔다. 결국 이는 자연과 지구에 대한 파괴 그 자체였다.

오늘날의 이 심각한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래 지하자원과 화석연료를 무제한적으로 남용한 직접적 후과이다. 탐욕의 자본주의에 의하여 지구와 자연환경은 가장 극적으로 치명타를 입고 파괴되었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자연이 ‘파괴자’를 정리하는, 아니 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파괴’하는 과정이다.

기후위기, 자연이 ‘파괴자’를 ‘파괴’하는 과정이다

오늘의 이 심각한 기후위기는 과연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인가? 오늘 기후위기 극복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노력해야 할 가장 절박한 임무가 아닐 수 없다. 자본에 의해 포획되어진 과잉소비의 사슬로부터 탈출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극복에서 정부와 관료 그리고 정치인들의 임무는 가장 막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지켜보노라면 그저 한숨만 나오는 실정이다. 문제 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으며, 위기의식 또한 철저히 부재하다. 오직 지치지 않는 권력욕과 관성적인 구두선의 사탕발림일 뿐이고, 탄소배출 기업을 통제하기는커녕 그들의 이익을 온전히 지켜주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한다. 각종 욕망이 집합적으로 표출되어 권력욕과 결합되는 선거는 반드시 필수적 공약으로 등장하는 성장론이나 가덕도공항 건설 등의 수많은 개발 공약에서 명징하게 입증되듯, 도리어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로 작동되고 있다.

지구상 최대 석유소비 기관, 미국방부

기후문제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군사 분야이다. 가령 미국은 2001년 이래 지속적으로 전쟁상태에 있거나 혹은 군사작전을 실행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야말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오염자이다. 세계 최대 석유연료 소비기관이며, 기후위기의 핵심 기여자이다. 미국 국방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은 북유럽의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이나 남미 칠레의 각 나라가 배출하는 양보다 많다. 한편 영국 국방부는 아이슬란드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미국은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부문을 예외로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이는 관철되어 이후 파리기후협정 역시 군사부문은 논외의 대상이다.

그러나 인류가 멸종 위기인 심각한 상황에 국가안보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의 강변에 불과하다.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기후위기 극복보다 중요한 ‘안보’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스스로 멸종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기후위기에 성실히 대응하고 있다는 각국 정부가 그 말에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먼저 자국의 군사훈련부터 대폭 감축시켜 나가야 한다.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동서고금의 모든 위대한 사상가와 성인들은 탐욕을 버리고 절제해야 함을 가르쳤다. 그리스의 위대한 사상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절제를 강조하면서 절제가 올바른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 덕목임을 주창하였다. 또 절제의 철학자 칸트는 “젊은이여! 유흥이나 사치 등의 온갖 욕망의 만족을 멀리하라. 그러한 관능의 향락을 절제하고 미룸으로써, 네 즐거움은 더욱더 풍성해진다”고 설파하였다.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공자, 노자 등 동양의 대사상가들 역시 절제된 삶을 역설하였다.

금욕과 절제 그리고 해탈을 근본 철학으로 하는 불교는 물론 그리스도교 역시 절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한다.

일찍이 노자는 말했다. 지지불태(知止不殆),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과연 우리는 멈출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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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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