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TV 뉴스 등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어 중에 ‘영끌러’라는 말이다. 어제 쉰 다섯 살 된 후배에게 이 말을 했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소리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이었다. 필자는 며칠 전 뉴스에서 본 글이라 ‘영끌(영혼까지 끌어 대출하는 것)’이라는 용어에 관해 토론을 하고 싶었는데, 전혀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처음부터 대화가 될 수 없었다.
언어의 세계에서 축약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이다. 영어에서도 ‘NASA’라는 말이 하나의 단어처럼 쓰이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stration(미국 항공 우주국)’이라고 하면 오히려 촌스러울 지경이다. 우리말도 이에 질세라 축약어를 많이 양산해 내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문장을 줄여서 앞 단어만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하였다. ‘생파’라고 하면 60대는 ‘날(익히지 않은) 파’를 생각하지만, 중고생들은 ‘생일 파티’를 생각하고 있다. 언어는 언중들이 사용하는 빈도에 따라 언어로서의 생명력을 갖기도 하고 사장되기도 한다. 다만 그 시대에 대중들이 이해하고 충분히 대화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 때 기관에서 표준어로 등재하고 단어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때의 유행으로 즐기는 축약어와 표준어로 등재되는 축약어는 다르다.
오늘의 제목으로 쓰고 있는 ‘영끌러’라는 용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단어다. 전혀 국적이 없는 말인데, TV나 신문지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표제글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1)꼭지잡은 영끌러
2)부동산 영끌러, 코인러 구제한다고?
3)영끌러 왜 도와줘?
4)영끌러 구제책, 안심전환대출 둘러싼 형평성 논란
1)과 2)는 블로그에서 가지고 온 것이고 3)과 4)는 많이 알려진 신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요즘 빚을 내서 투자하는 ‘빚투족(?)’이 꽤 많은 모양이다. 정부에서 구제해야 한다고 해서 설왕설래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용어의 선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말(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말도 아니다. 축약한 용어일 뿐)에 영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er을 붙여서 만든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가끔 장난삼아 ‘영끌족’이라는 용어를 쓴 적은 있다. ‘악플족’이라는 용어도 어쩌다 사용해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끌러’나 ‘악플러’ 등의 용어는 뭔가 모르게 가슴이 용납하지 않는다. 굳이 ‘영혼을 끌어다 빚을 내어 투자한 사람’이라는 말을 줄여서 쓰고 싶으면 ‘영끌이’는 어떨까 한다. 우리말에도 사람을 뜻하는 글자가 있는데, 어쩌자고 영어를 우리말에 붙여 국적없는 단어를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 수업시간에 계집과 여자(女子), 늙은이와 노인(老人) 등의 단어를 놓고 학생들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사실 노인과 늙은이는 동일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늙은이보다는 노인을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늙은(老)+이(人)”와 같은 합성어는 우리말에 많다. 어린이, 젊은이 등과 같이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로 ‘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영끌러’보다는 ‘영끌이’가 그나마 우리말에 가깝다. 한자로 족(族)을 붙여도 무리는 없다. 우리말과 한자어가 합성된 단어는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한자와 한글은 동일한 언어처럼 쓰였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은데, 한글과 영어의 결합은 뭔가 모르게 어색하다. 젊은이들은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언어는 순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영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가슴이 쓰리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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