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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우영우'와 '전장연 박경석'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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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변호사 우영우'와 '전장연 박경석'은 무엇이 다른가?

[인터뷰]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백세희 변호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 사회에 문제를 냈다. 장애인을 묘사하는 미디어 재현 윤리에 관한 문제다.

작가 문지원 씨의 치밀한 각본과 배우 박은빈 씨의 탁월한 연기는 이른바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장애인 캐릭터 우영우를 성공적으로 구현해 냈다. 여기에 지금까지는 쉬이 볼 수 없었던 에이블리즘(ableism, 비장애인 중심주의)에 대한 작품적 고민이 겹치면서, <우영우>는 단숨에 대중성과 다양성을 겸비한 수작의 반열에 올라섰다.

동시에, 일각에선 '우영우 너머의' 상상이 촉진되기 시작한다.

올해 5~6월 동안만 발달·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의 비극적 선택으로 6명이 세상을 떠난 현실의 한국사회에서, <우영우>는 "반갑지만은 않은 존재"라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우영우> 같지는 않은 장애인 당사자의 사연이 언론 지면에 오르내리는 사이, 평론가들은 다소 신중한 태도로 <우영우>의 진보와 한계를 동시에 거론한다.

이 공론의 장 또한 작품의 성과라고 상찬할 수는 있다. 다만 그 상찬이 유의미한 성과로 남기 위해 대중문화는 <우영우>를 넘어서야 한다. 무해한 장애인 캐릭터 변호사 우영우가 부조리에 맞설 때는 박수를 받지만, 현실의 장애인 활동가 전장연 박경석이 부조리에 맞설 때는 조롱을 받는다면, <우영우>로 느낀다는 '힐링'은 기만이다.

우리는 <우영우>에 나타난 미디어 재현 윤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관해,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의 저자 백세희 변호사와 책임 편집인 박정오 호밀밭 편집팀장이 지난 18일 대화를 나눴다. 지난 6월 발간된 책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은 미디어 속 소수자 이야기를 변호사의 시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백 변호사는 책에서 문지원 작가의 전작 <증인> 등을 미디어 재현 윤리의 측면에서 분석한 바 있다.

책을 펴내면서 <우영우> 담론을 미리 경험한 두 사람의 대화를 <프레시안>이 편집해 옮긴다. "영우처럼 무해하지도 않고, 제 역할을 다해내지도 못하는 장애인도 사회로부터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편집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ENA 제공 포스터

박정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늘 지워지기만 하던 장애인이 드라마 혹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과거와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백세희 : 처음 드라마의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는 "아, 또 자폐 천재야?" 하고 실소가 터졌습니다. 책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에도 '발달장애인을 묘사하는 미디어의 뻔한 방식'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실었는데요. 해당 글의 제목이 '순수한 동네 바보 형일까, 하늘이 내린 천재일까'였습니다. <우영우>의 주인공 영우도 어려서부터 법전을 달달 외는 천재 아닙니까? 지겨운 자폐 천재 클리셰의 재탕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다만 막상 콘텐츠를 직접 보니 달랐습니다. 제작진이 여러 면에서 고민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에피소드마다 법리와 의학 정보를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판타지'로서요. '자폐와 대형 로펌 변호사에 대한 판타지를 상업적으로 재밌고 귀엽게 풀어나갔다. 소수자 이슈를 다루면서도 우리가 기꺼이 보고 싶은 이야기를 잘 찾아냈다.' 저는 작품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백 변호사는 대중문화 콘텐츠 안에서 소수자가 적은 비율로 다뤄지는, 즉 콘텐츠 안에서 그 존재가 삭제되는 경향을 가리켜 그들이 '투명한 존재'가 된 것이라 설명한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소수자의 다양한 정체성이 '바보 형'과 '천재' 등 한정적인 모습으로만 다뤄지는 경향성을 가리켜서는 그들이 '납작한 존재'가 된 것이라 설명한다. (편집자 주.)

박정오 : 장애를 다룬 이전의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 <우영우>는 자폐성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차별과 편견,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하시는지, 그리고 이 작품을 '장애인의 존재를 지우거나 납작한 존재로 묘사하는' 과거 작품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백세희 : 장애인이 주인공인 대중문화 콘텐츠는 수적인 측면에서 확연히 적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에서 장애인은 투명한 존재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진짜'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매우 신선합니다.

자폐 스펙트럼이 작품 내에 종종 등장하기는 했어도 이른바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죠. 책에서 소개한 영화 <증인>도 정우성이라는 주연 배우가 따로 존재합니다. 반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영우가 서브 여주인공에 머무르지 않고 극의 전부를 지배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점이 기존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등장시키던 콘텐츠와의 가장 크고 긍정적인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영우>의 장애인 묘사에 대한 긍정적 평이 수적으로 많고, 저도 그런 평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도 있습니다. 제가 발달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긴 합니다. 다만 '과연 이 드라마의 묘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한 의견 중 하나로, 실제로 자폐성 장애인을 가르치는 제 지인과 나눈 이야기를 잠깐 소개합니다.

보호자 없이 매일매일 무탈하게 혼자 통근하고, 기계적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비장애인과의 교류도 비교적 원활한 영우를 본 지인은 "에이, 저러면 저건 자폐가 아니지"라고 표현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모습이 실제 다수 당사자들의 삶과는 무척 다를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물론 드라마는 이에 관해서도 설명합니다. <우영우> 3화에선 중증 자폐 장애인이 피고인으로 등장하죠. 해당 캐릭터를 통해 드라마는 "자폐 장애는 중증도부터 경증도까지 '스펙트럼'을 띄고 있으므로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어필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수많은 자폐성 장애인을 접하는 이들이 "우영우는 자폐가 아니다"라고 거칠게 반응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작품이 스스로 설명한 것처럼, 스펙트럼의 경증도부터 순위를 매긴다면 영우는 자폐성 장애인 중 1등 아닐까요? 이 '사실상 예외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1등을 묘사하는 드라마에서 (혹은 이 드라마를 통해서) 계속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개념 전체가 강조되고 있으니까요.

백 변호사는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의 128쪽 '대중문화가 주목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서도 이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책에서 그는 "발달 장애인은 한 덩어리로 묶일 수 있는 균질한 집단이 아니"며 "착한 동네 바보 형과 하늘이 내려준 천재의 전후좌우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을 콘텐츠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편집자 주.)

▲박경석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 중 모습. 박 대표는 지난 4월 열차 운행 방해 등을 이유로 입건된 상태다.  ⓒ연합뉴스

박정오 : 단순히 실제 장애인의 모습과 다르게 설정했다는 걸 넘어선 비판 지점도 존재합니다. 가령 장애인을 '귀엽고 무해한' 캐릭터로 만들어 소비하는 점의 경우,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에서 다룬 내용과 연계해서,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또 소비자의 입장에선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백세희 : 이 드라마는 "우리는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나아가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특별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장애인이 '무해한 존재'라는 사실, 또한 이를 넘어 '제도권 내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지 못하면? 그때에도 대중이 따뜻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스스로가 민망해서 웬만해서는 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요, 이 드라마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우영우가 너무나 선량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점이, 미디어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 노인 혐오를 다룬 글 '노인 : 우스꽝스럽거나 꼰대거나 귀엽거나'에서도 언급한 내용인데요, 소수자를 무해하고 귀여운 틀로 고정해 놓고 이를 소비하는 일도 전형적인 혐오의 방식에 포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 변호사는 이에 대해 "대상을 특정한 속성으로 환원해 열광하면서 그 기준을 벗어난 모습을 용인하지 못하는 게 바로 혐오의 전형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혐오의 작동 방식을 장애인 재현 방식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최근 발달 장애인에 대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시선은 '순수함', ‘무해함’ 등의 이미지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백 변호사는 영화 <말아톤>(2005), <7번방의 선물>(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 등을 그 예로 든다. 이때 역설적으로, 순수하고 무해한 장애인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장애인들은 사회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조현병 환자는 위험한 존재라는 식의 편견이나, 장애인 이동권 투쟁 활동가들에 대한 일부 정치권 및 대중의 공격적 여론 등이 그 예다.(편집자 주.)

백세희 : 그렇다고 제가 <우영우>를 장애인 혐오 콘텐츠로 분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상업 콘텐츠가 현실에 치이고 좌절하는 장애인의 모습만을 그려낼 수는 없죠. 그리고 모든 장애인이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우영우라는 존재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 '반전의 반전', 뭐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드라마에 굳이 '자폐성 장애 타이틀'을 전면에 갖다 붙이면서 콘텐츠를 홍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일부 의견에 눈길이 갔습니다.

박정오 : 마지막으로, <우영우>를 보며 더 생각해 볼 지점이 있을까요?

백세희 : 장애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에 관한 이야기도 해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도 '소수자 배역을 주류에 속하는 배우가 맡았을 때의 문제점'을 살펴봤었는데요, 책에서는 시스젠더 배우가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는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장애인 캐릭터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문제의식을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영우> 전엔, <우리들의 블루스>(2022)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배우 정은혜 씨가 출연하면서 화제가 됐었죠. 당사자 배우인 정은혜 씨의 출연과 비장애인 연기자 박은빈 씨의 연기가 동시에 화제가 되고 호평을 얻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자기 나름의 분석을 해보는 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희와 <우영우>의 영우는 제도적으로는 발달 장애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지만, 엄밀히는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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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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