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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민은 나토 가입을 원하는가?

[기고]

푸틴의 이번 전쟁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침공 직전인 2.21. 대국민연설에서 푸틴은 ‘만일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해 당연한 수순으로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하리키우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모스크바에 도달하는데는 고작 7,8분이면 족하다’고 격분했다. ‘이런데도 이게 러시아에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니냐’는 항변인 셈이다. 그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러시아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라 표현한 이유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도 푸틴의 단골 레파토리다. 당시 소련이 미국 코 앞인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두려 하자 케네디가 3차대전 불사를 외치며 펄펄 뛰었고, 결국 소련이 포기했다. ‘너희 미국은 안되고 우리 러시아는 되냐’는 게 푸틴의 논리다.

우크라이나가 정권 차원에서 나토 가입 의사를 처음으로 천명한 것은 2002년 제2대 대통령인 레오니드 쿠치마에 의해서다. 이후 정권에 따른 부침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나토 가입이 추진되었다. 2008년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담 선언문 23조, 즉,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는 나토의 멤버가 될 것이다”는 이 여정의 결절점을 이룬다. 2014년 유로마이단의 경험, 특히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목도한 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나토 가입 노선의 입법화를 추진해 2019년 2월 나토 가입을 국가 전략목표로 아예 헌법에 새겨넣었다. 전쟁 발발 직후 평화협상 테이블에서 나토 의제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길어지는 전쟁만큼 우크라이나 정부의 태도도 강경해지는 듯하다. 얼마 전 마드리드 나토 서밋에서 젤렌스키는 ‘무엇이 얼마나 더 필요하냐’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승인을 절절히 호소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국민은 어떨까. 우크라이나 국민 역시 한목소리로 나토 가입을 원할까. 또 전쟁 전과 전쟁 후 국민 여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먼저 전쟁 전. 2021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의 대표여론조사기관 중 하나인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30년간 나토 가입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발표했다. 다음이 그 그래프다.

▲전쟁 전 여론조사 (2002-2021). 초록=나토 가입 찬성 / 보라=나토 가입 반대 / 노랑=대답 곤란

2002년 나토 가입 찬성과 반대 비율이 각 32%로 똑같이 출발했다면, 이후 상당 기간 가입 반대가 찬성을 큰 차이로 압도한 상태가 이어진다. 대략 60% vs 20%대의 차이다. 이 흐름이 뒤집힌 때가 바로 크림합병이 발생한 2014년이다. 이때 이후 나토 가입 찬성이 반대를 앞지르기 시작해, 전쟁 직전인 2021년 가입 찬성이 47.8%, 반대가 24.3%로 더블스코어를 이룬다.

그런데 예상보다는 찬성 비율이 높지 않은 느낌이다. 이 조사가 크림반도와 돈바스의 친러 분쟁지역을 제외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2021년 조사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은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얼마 전 목도하고, 8년째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 내전 중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나토 가입을 원하는 국민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대답 곤란이라고 밝힌 약 30%를 포함하면, 국민의 절반은 나토 가입을 반대하거나 결정을 유보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전쟁 후인 현재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의 여론조사다. 전쟁 3개월 후인 2022년 5월 13-18일 이뤄진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여론은 나토 가입 찬반이 팽팽히 맞선 상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 전과 달리 나토 가입 반대가 찬성을 약간 상회한다. 단지 이제는 가입 ‘반대’가 아닌 ‘포기’로 명명된다.

▲전쟁 후 여론조사.(2022.5.24.) 주황: (미영프독 등에 의해)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 파랑: 나토 가입만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기에 포기해서는 안된다. 노랑: 둘 다 아니다 / 회색: 대답 곤란.<출처: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 (https://www.kiis.com.ua/?lang=ukr&cat=reports&id=1110&page=1)>

그래픽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42%는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토 가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9%에 불과하다. 나토 가입 포기(반대)를 택한 국민이 전쟁 직전보다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양자 모두에 반대하거나 대답 곤란이라고 밝힌 19%를 합치면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 61%가 나토 가입에 회의적인 상황이다.

크림 합병이 우크라이나 여론을 나토 가입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려세웠다면, 전쟁은 국민의 생각을 다시 신중론으로 향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젤렌스키의 최근의 행보, 나토 가입을 향한 그의 절절한 호소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젤렌스키의 가장 중요한 선거 공약이 나토 가입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객관적인 통계는, 전쟁 전이나 전쟁 후나, 우크라이나 국민이 통치자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신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얼마 전 많은 한국 언론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82%가 평화협상을 위해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바로 위의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 설문조사와 같은 시기에 이뤄진 동일한 설문조사에 기반한 보도였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 어느 하나 나토 가입과 관련한 위 항목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가 영토주권 수호를 갈망하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수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자 한다. 진실은 둘 모두에 있고 해법은 사실에 기반해야 하기에 어느 하나가 가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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