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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없는 일터에서, 우리는 이렇게 어딘가 주눅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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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없는 일터에서, 우리는 이렇게 어딘가 주눅들어 있다

[우리는 싸운다 – 쿠팡을 바꾸기 위한 쿠팡물류센터노동자 투쟁이야기] ① 내가 노동조합을 하는 이유

사람이 아닌 물건만을 위해 설계된 쿠팡물류센터에는 냉난방 설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마땅한 휴게시간도, 휴게공간도 없이 로켓배송을 위해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녀야 하는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등에는 날마다 소금꽃이 한가마니씩 피어납니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쓰러져 죽어간 노동자만 2020년 이래 10명.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쿠팡에 노동자를 존중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할 것을 요구해 왔지만 쿠팡은 묵묵부답. 그리고 돌아온 것은 조합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간부들에 대한 잇다른 해고였습니다. 결국 쿠팡 대표이사를 직접 만나기 위해 노동자들은 본사 로비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폭염에 맞선 '에어컨 설치투쟁'을 하기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존중이 없는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본 적 있나. 그들은 어딘가 주눅 들어 있다. 고된 일도 힘들지만 무시는 더욱 견디기가 힘들다. 최근 어떤 동료가 한 현장관리자로부터 폭력적인 행동을 당했다. 마감을 못 맞춘다고 본인의 노트북을 집어던지고 상품이 들어있는 도트를 발로 차 넘어뜨리며 '언제까지 시키는 일만 할거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동료들은 무서워서 항의할 생각조차 못했다. 일하는 내내 얼마나 긴장을 했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 우리는 무서워 죽지는 않는다. 다만 자존감이 팍 떨어질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어딘가 주눅들어 있다.

노동강도는 나날이 세져서 감당할 수 없는 노동을 시킨다. 산재로 4개월을 쉬고 나오신 동료분이 출근을 하니 기존에 시키지 않던 21kg 얼음박스를 수시로 들어야 해서 완쾌됐던 팔이 다시 아파 팔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이를 악물고 일한다고 한다. 팔이 아파서 죽지는 않는다. 다만, 이렇게 계속 일하다가는 팔을 영영 못쓰게 되는건 아닌지 불안해 할 뿐이다. 100세 시대라는데…

일도 힘든데 휴게시간, 식사시간도 제때에 주어지지 않았다. 오후 5시 근무를 시작하면 다음날 새벽 2시에 끝나는 근무조였는데, 출근하자마자 한 시간 일하고 나면 밥을 먹으러 가라고 했다. 지금은 한 시간 늦추어서 저녁 7시에 밥을 먹으러 간다. 부천센터 사원들을 위해 바꾼 식사시간은 아니다. 웰스토리라는 식당업체와의 계약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일찍 식사를 해버리고 나면 그 후 퇴근할 때까지 너무너무 힘들다. 왜냐하면 고된 일을 하면 너무 배가 고프니까. 식사 시간 외에는 마땅히 쉬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연장이 있으면 새벽 4시까지 쉬지 않고 6~8시간 일하면 사람이 어찌될까? 죽지는 않는다. 다만 죽을 것처럼 힘들다.

나는 그동안 봐왔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칠곡에서 나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 동탄에서 나와 체중과 나이가 같던 여성 동료분이 과로로 사망했다. 남겨진 청년의 부모님을 봤을 때, 사망한 여성동료분의 미성년 자녀를 보았을 때 나와 나의 가족의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일하는 일터이다. 노조를 시작한 이유와 노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동료분들은 나와 같이 힘들고 부당한 쿠팡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면 된다는 가능성도 보았다.

▲서울 시내 물류센터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들. 연합뉴스

허허벌판 쿠팡 물류센터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나

"그만 두시면 안돼요!"

"짤린 줄 알았어요!"

"걱정했어요, 회사가 고소했다고 해서 경찰서에 붙잡혀 간줄 알았어요!"

부천 쿠팡 물류센터, 내가 다니는 일터에서 잘 알지 못했던 동료들도 오랜만에 내게 걱정어린 인사말을 건넸다. 본사 로비농성으로 물류센터에 출근을 못했더니 다들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나보다. 이럴 땐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노조를 하면서 항상 허허벌판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 동료분들이 옆에 있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참 좋다.

부천 쿠팡 물류센터 노조 대표가 돼서 우황청심환을 먹고 노조 조끼를 입던 날이 생각난다. 떨리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무서웠다. 마음이 진정되질 않고 심장에서 쿵쾅쿵쾅 소리가 났다. 우황청심환을 전날 먹었어야 했는데 당일에 먹다보니 효과가 늦게 나타나서 조끼 입을 때 어찌나 떨리던지…

나는 조합비만 내면 내 일터의 말도 안 되는 현장상황을 노조에서 알아서 바꿔주는 줄 알았던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나 스스로가 노동조합이고 나의 일터도 내 스스로 바꿔야 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과정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워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15분의 휴게시간도 주지 않는 쿠팡

지난해 11월 어느 날 회사는 우리에게 15분의 유급휴게시간을 부여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잠깐의 쉴 틈도 없이 일하는 우리에게 15분은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자를 보낸 회사는 해가 바뀌어도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

애타게 기다린 휴게시간을 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부천센터 동료들과 나는 휴게시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600여명의 서명을 받아 회사에 전달하였으나 회사는 우리의 요구에 '무시' 로 답변했다. 포기할 수 없었던 우리는 '휴게시간 쟁취!' 라는 요구를 담은 노란리본 달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과연 사람들이 달고 다녀 줄까 조마조마 했으나, 리본달기 캠페인은 부천센터 동료들의 용기로 한달여 간 2000여개가 달렸고, 현장은 리본물결이었다. 리본을 달고 작업장으로 들어가며 나와 맞절을 하시던 부천센터 동료분들의 그 절제된 멋짐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부천센터 노동자들이 노란리본 달기 캠페인을 통해 달았던 노란리본 ⓒ김은희 쿠팡물류센터지회 부천센터 분회장
▲농성장에서 휴게시간 쟁취를  위해 농성하는 모습 ⓒ김은희 쿠팡물류센터지회 부천센터 분회장

7월 13일인 오늘까지도 쿠팡은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천센터 동료분들은 여전히 노란리본으로 당당한 멋짐을 뽐내며 현장으로 나와 맞절을 하시며 들어가신다. 회사는 이런 우리의 메시지에 지금도 '무시'로 일관한다. 다만 노랑리본의 물결이 어디로 번져갈지를 두려워 할뿐이다. (참고로 다른 물류센터는 특염주의보에는 10분, 특염특보에는 10분의 휴게시간을 부여한다고 한다.)

나는 상식을 잘 지키며 거짓말 하지 않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우리의 권리를 누리며 일하고 싶다. 기간제법에 따라 당연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줘야 하는데 권력을 가진 회사 맘대로 사원들을 해고하고, 유급 휴게시간을 부여한다고 생색은 다 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 회사, 휴게시간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서명운동과 리본달기, 등자보달기 등 노동자의 간절한 요구에도 꿈쩍도 않는 나쁜 회사, 기본권리인 통신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고 핸드폰을 뺏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회사. 조퇴하려면 24시간 이전에 허락 받으라는 회사.

이렇게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회사, 우리가 사람이 아닌 기계인 것처럼 노동을 시키는 회사, 여기가 내가 일하는 일터이고 바꿔야 하는 일터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일터로 돌아가 노동조합이 하는 정당한 일들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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