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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등을 찍은 독일의 러시아 경제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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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등을 찍은 독일의 러시아 경제 제재

[해외 시각] 러시아의 입장 "독일 경제 위기는 자해의 전형적 사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그 전쟁을 대하는 서방의 태도는 이번 전쟁을 '국제 질서 패러다임 시프트'로 이끌고 있다. '자유 언론'의 기치를 내건 서방의 '러시아-우크라 전쟁' 보도는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외면하고 '선과 악의 구도'를 공고히 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악 구도'에서는 이성적 판단이 들어설 공간이 좁아진다. 과거 미국이 9.11테러 이후 '로그 네이션(불량국가)'나 '악의 축'을 내걸고 국제 정치를 선악 구도로 재단했다 실패한 것처럼. 

이번 전쟁 이후 세계 외교가에선 '가치 외교'라는 말이 떠돈다. 한국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가치 외교(value diplomacy)는 미국·서방이든 중·러든 자신들의 '가치'를 상대에게 투영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진영화를 불러오고 대결 구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나 '가치'도 중요하지만 '현실 정치'도 무시해선 안된다. 우리는 반드시 냉정한 '계산서' 앞에 서야 한다.

이번 '해외 시각'에서는 이번 전쟁이 촉발한 서방의 '대러 제재'와 관련한 러시아 측의 시각을 살펴본다. 러시아의 현실 판단 기류를 정확히 알고 나서야, 향후 이 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있다는 취지다. 다음은 글렌 디젠 노르웨이 사우스이스턴대학 교수('Russia in Global Affairs' 편집인)의 글이다. '독일의 경제 위기는 자해의 전형적 사례(Germany's developing economic crisis is a fascinating study in self harm)'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러시아 입장을 대변하는 러시아투데이(rt.com) 7월 9일자에 실렸다.편집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6월 독일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독일 노동조합총연맹의 수장은 에너지 부족과 높은 가격으로 인해 독일의 핵심 산업이 영원히 붕괴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 경제의 기관차였던 독일 경제의 황금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난 30년간 독일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은 값싼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한 덕택이었다. 또한 유럽 최대의 국가인 러시아는 독일 기술과 공산품의 핵심 수출 시장이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핵심 주제 중 하나는 독일의 생산력과 러시아의 거대한 자원이 결합해 유럽 대륙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 만들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 설정은 언제나 딜레마였다. 두 강대국이 협력한다면 영국과 미국 같은 다른 강대국에 강력한 도전이 되는 반면, 독일과 러시아의 갈등은 중유럽과 동유럽의 대결로 확대돼 영국 지리학자 제임스 페어그리브가 지적한 것처럼 이 지역을 "쑥대밭(crush zone)"으로 만들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토와 러시아의 대리전은 19세기, 20세기의 이러한 딜레마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의 주요한 차이는 더 이상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독일의 협력을 통해 포용적 대유럽(Greater Europe)을 건설하려 했으나 이는 실패했고, 이제 러시아-중국의 협력으로 대유라시아(Greater Euasia)를 이룩하려 한다. 지금까지 서방으로 향했던 러시아의 에너지와 자원은 동방으로 방향을 돌렸으며, 러시아는 갈수록 더 많은 기술과 공산품을 동방으로부터 들여오고 있다.

경제적 자해(self-harm)의 전형적 사례

현재 독일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경제적 자해의 전형적 사례다. 1990년대 초 모스크바가 독일의 통일을 기꺼이 용인한 반면 독일은 이에 보답하지 않았다. 1990년 11월 러시아와 함께 '새로운 유럽을 위한 파리 헌장'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 헌장은 1975년 출범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정신에 따라 냉전 종식 이후 "주권의 동등함"과 "안보의 불가분성(유럽의 안보는 지역 내 모든 나라의 안보가 보장될 때 완성된다, 즉 한 나라라도 안보 불안에 처해서는 안 된다"에 바탕을 둔 범유럽 안보 체제 구축을 지향했다.

그러나 독일은 이 헌장의 이행을 추구하는 대신 나토의 동진을 지지함으로써 유럽의 안보 체제에서 러시아를 제외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을 추종했다.

그 결과 수 세기에 걸친 중유럽과 동유럽의 역사적 갈등이 독일/나토 대 러시아 간의 대결로 재연됐고, 이에 따라 유럽에 새로운 분단선이 그어지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서방이 지난 2004년 오렌지혁명과 2014년의 마이단 쿠데타를 지원해 우크라이나에 친서방/반러시아 정부가 들어선 뒤, 전통적으로 러시아 에너지의 수송로였던 우크라이나는 더 이상 그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에너지 수송로를 다양화하려 했으나 독일은 이러한 시도에 반대함으로써 스스로의 에너지 안보를 약화시켰다. 베를린은 번번이 러시아 에너지 수입의 중단을 위협했고, 결국 러시아는 동방에서 대체 수출 시장을 찾아야만 했다.

2015년 2월의 민스크2 협정은 2014년 서방이 지원한 마이단 쿠데타의 여파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 자신이 이 협상의 타결을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7년간 독일은 협정 이행을 방해하거나 "재협상"하려는 미국을 추종했다. 최근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가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나토는 이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및 훈련 등을 통해 러시아와의 무력 대결을 준비했다.

이에 대해 모스크바가 지난 2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독일은 새로 건설된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을 취소했고, 독일 내 가즈프롬 자회사들을 압류했으며,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지난 수년간 러시아가 독일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에너지를 무기화 할 것"이란 추측이 있었다. 그런데 독일이 먼저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중단함으로써 자국 경제에 중대한 피해를 입힌 셈이다.

다극 시대의 갈등 확대 통제

갈등 확대 통제(Escalation control)란 적대 국가와의 갈등을 해당 국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해당 국가의 양보를 강제로 얻어내는 전략이다. 단 하나의 중심 권력이 있었던 단극 시대에 미국 주도의 서방은 이러한 갈등 확대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 적대 국가가 굴복할 때까지 마음껏 갈등을 확대시킬 역량이 있었던 것이다. 나토의 확대, 미사일 방어망 구축, 경제력의 압도적 우위 등을 갖춘 서방은 러시아와의 갈등 확대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다극적) 세계 질서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당초 목표인) 모스크바의 굴복을 끌어내기는커녕 러시아라는 거대 수출 시장을 중국, 인도 등에게 몰아주는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독일이 값싼 러시아 에너지를 대체할 값비싼 에너지 수입선을 찾아 헤매는 동안, 모스크바는 중국과 인도 등에 할인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대유럽 대신 대유라시아 건설에 나서고 있다.

결과적으로 독일 산업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을 다변화하는 동안, 서방은 단극시대에 남발했던 경제 제재의 결과로 에너지 수입의 다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유국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에 대한 제재로 서방은 절실하게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리비아 가다피의 제거와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 나이지리아의 혼란 등으로 아프리카에서도 석유를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한편 미국은 현재 시리아의 석유를 뺏어가고 있는데, 만일 미국이 지금처럼 시리아 영토를 불법 점령하지 않았다면 시리아의 석유 수출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실패를 더욱 확대하기

현재 서방은 경제적 재앙에 직면해 있다. 감당 불가능한 부채, 폭등하는 인플레이션, 산업 경쟁력의 저하, 그리고 악화되고 있는 에너지 위기 등이 그 원인이다. 갈등의 확대가 러시아보다는 독일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은 (미국 중심의) 단극 시대 초기(1990년대 초) 형성된 범유럽 안보질서(러시아를 제외시킨)를 포기함으로써 갈등을 축소하는 선택을 재고하는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잃어버리고 이데올로기적 열기에 휩싸인 독일 지도자들은 실패한 정책들을 더욱 밀어붙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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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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