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문을 열어 주시오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에 부쳐
골짜기마다 버려진 동굴마다
여기 기나긴 어둠 속에 묻혀
푸른 영혼들이 울고 있습니다
누가 이들을 울게 했습니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밑으로 떨어지고
덜 죽은 사람들은 기어 나오려다
그대로 묻혀 화석이 되었습니다
누가 이들을 화석이 되게 했습니까
수백 수천의 몸들
피가 튀고 살과 뼈가 발려져,
70년 넘게 녹아내렸습니다
검붉게 쌓이고 쌓인 저 진흙더미가
우리의 아버지이고 마을 사람들이고
이 땅의 사람들입니다
누가 이들의 목숨을
썩은 진흙더미가 되게 했습니까
죄 많은 나라여 들으시오
일천간장 아뜩아뜩
삼혼칠백의 통곡과 아비규환을,
가혹한 나라여 보시오
이 억울한 주검과 피눈물의 잔해를,
부끄러운 나라여 말하시오
이토록 무겁고 어둡고 차가운
어둠의 문을 어서 활짝 열어주겠다고,
고단하고 야윈 영혼들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디 마디 흩어진 그들의 손을 잡아 주겠다고,
진실로 따스하게 그 이름들을 불러 주시오
기다립니다
우리는 70년 넘게 기다렸고,
사시사철 눈보라치고 비바람 불어도
천지에 찔레꽃 피어나는 오월처럼
기다렸습니다
이토록 깊고 길고 서러운
어둠의 문 안에서, 문 밖에서
그 문이 환히 열릴 때까지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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