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군사 분야가 기후위기 대처의 '거대한 구멍'이라며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국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간 회의에선 이를 외면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도 있었다.
미국의 넨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주재하는 세션에서 한 기자는 펜타곤이 세계 최대의 탄소 배출 기관인데, 펜타곤의 군사비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자 펠로시는 미국의 국방비는 적정 규모로 책정되어 있다고 반박했다. 펠로시가 적정 규모라고 강조한 2022회계연도의 국방예산은 7450억 달러로, 세계 총 국방비의 40%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의회는 이마저도 적다며 250억 달러를 증액했다. 기후변화가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군사 분야는 여전히 예외가 되고 있는 현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지구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협약 체결이 목표였다. 이에 앞서 딕 체니를 비롯한 전직 국방장관들과 여러 정치인들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교토 의정서가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군사 작전을 방해할 것"이라며, 미국이 이 의정서 가입을 거부하거나 군사 분야는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클린턴에게 서한을 보낸 사람들의 상당수가 군수 산업체나 석유 회사의 임원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했다. 펜타곤은 교토 회의에 앞서 이 협약이 군사 훈련, 작전, 연료 사용 등에 차질을 빚어 "군사적 준비태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도 펜타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동맹국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토 회의 대표단의 일부는 미국이 군사 예외주의를 고집할 경우 협약 체결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파였다. 결국 미국의 협상팀은 협상 막바지에 군사 분야를 제외할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이를 두고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미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처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고 비판했다. 반면 클린턴 행정부는 "중대한 승리"라고 자평했고, 존 케리 당시 상원의원은 미국 협상팀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격찬했다. 참고로 케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후 변화 특사를 맡고 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퇴임사에서 경고한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이 기후 변화 협상장에도 깊숙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지구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기후 위기 대처에 탄력을 받는 듯했다.
그는 특히 기후 변화가 난민, 자연재해, 부족해지는 식량과 물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심각한 국가안보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교토의정서에서 '국가안보 예외'를 관철시켰다면, 오바마는 기후변화 자체를 국가안보의 위기로 봤던 것이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협상이 다가오면서 환경과 평화 단체들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처에 군사 분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파리 회의에서도 군사 분야 문제가 다뤄졌다. 하지만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 보고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자발적인 보고" 수준에서 절충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협약 당사국들은 또 다시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 보고 의무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
자발적 보고를 하더라도 누락되거나 불분명·불완전한 경우도 다반사이다.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을 선택적으로 보고하거나 다른 범주와 합쳐서 보고함으로써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 현황 파악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발적 보고 국가들은 대부분 보고 대상을 육·해·공의 운송 수단과 기지 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무기·장비 획득 과정 및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은 보고 대상에서 누락되고 있다.
미국의 예만 높고 보더라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해외에 750개의 군사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시설에서 내뿜는 탄소량은 자발적 보고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미 해군이 국제 수역에서 벌이는 작전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무기와 장비를 만드는 미국의 방위 산업체 및 이와 연관된 공급망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예외 지대로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브라운 대학의 네타 크로포드(Neta Crawford) 교수는 주요 군수산업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펜타곤이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하자마자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했던 기후변화 협약에 재가입했을 정도로 기후변화 대처를 핵심적인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큰 구멍은 발견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2월 초에 대통령 행정명령을 내렸다. 모든 정부 기관들은 2030년까지 100% 클린 전기 사용을, 2050년까지는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라는 것이었다.
예외는 있다. 바로 군사 작전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에도 군사 작전을 예외로 두면서 비판을 받았었는데, 바이든 행정부도 이 문제를 시정하지 않은 것이다.
'군사 예외주의'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펜타곤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23%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8년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기 때문에, 이들 전쟁을 종결하면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또 이 수치에는 함정, 군용기, 전투 차량 등 주요 탄소 배출 원인이 포함되지 않았고 방위 산업체 및 이와 연관된 공급망에서 배출하는 탄소량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구적 책임성을 위한 과학자 모임'의 스튜어트 파킨슨(Stuart Parkinson) 집행위원장은 "군사 분야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구멍이 되고 있기 때문에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군비 지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다른 부문의 탄소 배출이 줄어들더라도 이 구멍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61년 1월 퇴임사에서 "거대한 군사 집단과 대규모 무기 산업이 결탁하여 행사하는 영향력은 미국의 새로운 경험"이라며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정부 각 위원회에서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은 기후위기 대처 노력에도 깊숙이 뻗치고 있다. 이 검은 손을 물리치지 않으면 기후위기 대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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