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환보유액이 한 달 사이 100억 달러 가까이 감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원자재값 급등으로 인해 한국 경제 성적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무역 수지가 적자를 보이면서 한국 경제 위기 신호가 더 뚜렷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자료를 보면, 지난달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8000만 달러였다. 이는 전월 말 4477억1000만 달러 대비 94억3000만 달러 감소한 수치다.
이 같은 감소폭은 2008년 11월의 117억5000만 달러 감소 이후 13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감소의 원인으로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화 환산액 및 금융기관의 예수금이 감소"했고 "외환시장의 변동성 완화 조치" 영향이 있었다고 풀이했다.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조치'란 한은이 지난달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행위를 뜻한다.
최근 들어 지속된 달러화 가치 급등으로 인해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하자, 한은이 원화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바 있다.
올해 들어 외환보유액은 2월 반짝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감소했다. 3월(39억6000만 달러)과 4월(85억1000만 달러), 5월(15억9000만 달러), 6월(94억3000만 달러) 등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임에 따라 올해 들어 반년 사이에만 248억4000만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급감했다.
그 결과 한국의 외환보유액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려 9위가 됐다.
문제는 앞으로도 원화 가치 폭락세(환율 급등)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인해 달러화 가치 폭등세가 이어지고, 그에 따라 원화 약세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수입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경향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큰 데다, 세계적 유동성 흡수와 물가 급등세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가 이어지는 결과 한국의 수출 잠재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일 한국의 상반기 수출이 작년보다 15.6% 증가한 3503억 달러에 달했으나 수입이 26.2% 늘어난 3606억 달러에 이르러 무역수지 103억 달러의 적자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적자폭은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이는 결국 외환보유액 감소 추세를 더 자극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외신인도 하락, 외국인 투자자의 추가 이탈 등 금융시장 위기를 자극하고, 실물 위기와 맞물려 한국 경제의 뚜렷한 위기 신호로 해석될 조짐이 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일 금융시장 전문가들과 간담회에서 "미증유의 퍼펙트스톰이 어쩌면 이미 시작됐을 지 모른다"고 말했다. 가능성에 관한 언급이 아닌, 사실에 관한 진단이었을지를 확인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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