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위키리크스 창시자 줄리안 어산지의 미국 송환 결정과 관련해 뉴욕타임스 등 서방의 이른바 권위 있는 언론 매체들의 위선적 행태를 비판하는 영국 언론인 패트릭 콕번의 글이다. 콕번은 어산지의 취재보도 행위가 다른 언론인과 똑같은 정당한 진실 추구였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위키리크스의 비밀 외교문서 대량 공개를 앞 다투어 보도했던 서방 매체들이 그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부당한 박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면서, 이로써 서방이 그토록 강조해온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고발한다.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한 서방언론의 보도를 과연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를 상기하면서 그의 글을 소개한다. 원 제목은 "줄리안 어산지를 상찬했던 언론들, 이제 두려움에 떨며 그의 변호를 포기하다(The Media Celebrated Julian Assange and is Now Too Afraid to Defend Him)"로 <카운터펀치> 6월 27일자에 실려 있다. 편집자
지난 달 이후 각국의 정부들이 언론인들을 살해하거나 감옥에 가두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정부가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 진실을 폭로하려는 언론인들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에서 드러난 가장 사악한 측면은 이러한 공격에 직면한 바로 그 언론 매체들이 저항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점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기밀 해제된 비밀서류들을 검토한 결과, 2018년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일어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MBS)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바이든은 MBS를 국제사회의 망나니로 취급했다. 그러나 사우디에 대한 미국의 강경 정책이 다음 달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을 앞두고 뒤집히고 있다. 러시아 석유 금수 조치로 급상승한 국제 유가를 내리기 위해 사우디에게 석유 증산을 간청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카슈끄지의 살해범은 면죄부를 받았고, 앞으로 사우디의 어떠한 비판적 언론인도 정부의 보복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면죄부는 지난 주 MBS가 방문한 터키 정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우디 정부와 새롭게 동맹 관계를 맺은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슈끄지의 살해 용의자 26명을 이미 앙카라에서 리야드로 이송한 것이다.
치욕적 굴복
이는 바이든 행정부에게는 치욕적 굴복이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정책 순위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명분이야 어찌 됐든 미국의 새로운 외교 노선은 독재 정부에 대해 독재에 반대하다 해외로 망명한 언론인들을 추적, 살해할 수 있는 허가증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재량권을 독재자들에게 허용한 것은 추악한 정치적 기회주의에 물든 정부들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전문가들도 (서방이) 러시아와 중국에 대향하기 위해서는 독재 국가들을 회유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각각 자국 내 종교적, 인종적 소수파인 시아파와 쿠르드족을 잔인하게 탄압하고 있는 사우디와 터키 등도 서방이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소수파의 고난은 그저 "우연한 사고" 아니면 "인권 침해" 정도로 치부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러한 독재 국가들의 악행을 묵인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 MBS와 에르도안 등 독재자들을 자유의 대의에 동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충격적이다. 하지만 바이든이라는 정치가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입장을 바꿔온 기회주의적 인물이란 점에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미국의 역대 외교정책 담당자들은, 걸프지역의 절대왕정 국가들이 어떠한 악행을 저지르든, 이들과의 오랜 동맹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사우디와 터키, 이집트 등도 어떤 경우에든 미국이 싫어한다고 해서 자신들의 고문실과 감옥을 없앨 것 같지 않다.
집요한 박해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카슈끄지의 사례보다도 더 큰 민주적 자유에 대한 위협이 있으니 그것은 (위키리크스 운영자) 줄리안 어산지의 3년에 이르는 영국에서의 투옥과 임박한 미국에로의 송환이다. 왜냐하면 어산지는 언론인이라면 누구라도 시도했을 취재 보도 행위를 이유로 미국 정부에 의해 간첩 죄인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어산지가 미국으로 송환돼 간첩죄로 재판을 받을 경우 최장 17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가 지난 2010년 막대한 양의 미국 비밀 외교문서를 공개함으로써 이후 서방 국가들의 집요한 박해를 받은 것은, 간단히 말해 그의 취재 보도 행위가 다른 언론인들보다 훨씬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언론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실을 추적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무장관 프리티 파텔은 최근 어산지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고, 그가 송환명령서에 서명을 할 당시 어산지가 갇혀 있던 벨마시 교도소의 간수들은 그를 발가벗겨 독방에 쳐 넣었다. 자살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어산지의 부인 스텔라의 전언).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이 도움에 나선, 어산지에 대한 집요한 박해는, (위키리크스와 같은) 세계적 특종을 위해 분투하는 전 세계 언론인들을 위협하기 위한 조치임이 분명하다. 어산지를 음해하고, 그의 신뢰도를 깎아 내리며, 언론인으로서의 그의 위상을 부정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시도들이 지속되어 왔다.
진실에 대한 용감무쌍한 무시
어산지에 대한 음해 중 이미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된 혐의들이 아직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문서 때문에 미국 비밀 요원 및 정보제공자의 신원이 탄로나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이 그렇다. 이러한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미 국방부는 120명의 방첩 전문가들로 '정보 검토 태스크 포스(Intelligence Review Task Force)'를 구성해 진위를 확인했다.
오랜 조사 끝에, 태스크 포스 단장인 로버트 카 준장은 2013년 법정 진술을 통해 폭로된 수 십 만 건의 정부 문서들을 검토한 결과 위키리크스의 보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례를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탈레반이 위키리크스 보도를 근거로 미군 정보제공자 1명을 살해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곧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죽였다는 사람의 이름이 "위키리크스 문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카 준장의 이 증언만으로도 어산지에 대한 음해는 중단됐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비난과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진실에 대한 용감무쌍한 무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아무도 이러한 종류의 무책임한 비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2010년 스웨덴에서 제기된 어산지의 강간 혐의가 그렇다. 이 강간 혐의에 대한 스웨덴 검찰의 수사는 세 번이나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등 자그마치 10년이나 계속됐고, 결국 2019년에야 무혐의로 결론 났다.
'쫄지 마!'
2019년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에 대한 유엔 특별조사위원 닐스 멜처는 어산지 수사와 관련해 스웨덴 정부에 19쪽 분량의 서한을 보냈는데, 그 결론 부분에서 "2010년 이후 스웨덴 검찰 당국은 '(어산지가) 강간 용의자’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어떤 혐의도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서한에는 스웨덴 검사들과 영국 검찰 간에 오고간 이메일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한때 스웨덴 측이 수사를 중단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영국 검찰은 스웨덴 검찰총장에게 "쫄지 마!"라는 응원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어산지에 제기된 혐의들에 대한 모든 정보가 이미 오래 전에 일반에 공개됐기 때문에 이를 새삼 반박하거나 해명할 필요도 없는 게 마땅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보들이 주요 언론 매체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거나 아예 완전히 무시됐다는 점이다. 어산지에 대한 음해 공작은 그가 자신의 입장에 대해, 또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말할 기회를 원천봉쇄 했다는 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공격은 조직적인 인격 살해와 함께 진행됐다. 그를 "나르시시스트" 또는 "못된 놈"으로, 나아가 그의 투옥과 미국 송환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비난이든 아무런 근거 제시도 없이 자행한 것이다.
그러나 어산지 사건과 관련해 내가 가장 불길하게 느끼는 것은 주요 매체들의 의도적인 무시이다. 당초 위키리크스가 엄청난 양의 문서를 공개했을 때,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슈피겔, 르몽드, 엘파이스 등 이른바 서방의 주요 매체들은 모두 앞 다투어 그 내용을 요약 보도했다. 그러나 지금 이들 매체들 중 어느 하나도 어산지의 자유를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있다.
기자들을 비롯한 독립 언론인들은 어산지의 운명에서 자신의, 그리고 자신의 직업의 끔찍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앤드류 닐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언론 자유의 미래, 권력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탐사 보도의 지속 여부가 여기에 걸려 있다. 영국 정부의 어산지 송환 결정은 모든 민주주의의 본질인 이러한 자유들의 핵심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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