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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쌀 두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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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쌀 두 되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진주지역 민간인 학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보리쌀 두 되

김성홍 강증남 부부는 일본 오사카 기와 굽는 공장에서 일하다 해방을 맞았다. B29 미군 폭격기가 오사카 하늘에 포탄을 쏟아냈다. 다섯 살 아들 상길은 이미 그때 일본에서 전쟁을 보았다. 이들 가족은 나가사키 항구에서 연락선을 타고 고향 산청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산과 들은 헐벗은 그대로 맞이했다. 아직 전쟁의 기미가 없는 마을에는 한여름 뙤약볕이 자글거렸다. 부부는 부모를 따라 마른 흙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땀 흘리면 늘어날 논밭이 어른거려 오사카의 폭격을 잊었다. 그러나 흙 묻은 손발에 익숙해져 갈 때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전쟁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아랑곳없이 진양군 사봉면 부계리에 독립하여 농사를 이었다. 아들 상길은 어느새 훌쩍 커서 국민학교 2학년이 되었다. 전쟁은 어느새 남쪽까지 들이닥쳤다. 처음 보는 인민군이 들어왔고 상길의 아버지는 마을 이장이 입회한 가운데 보리쌀 두 되를 건넸다. 그러나 상길이 다니는 학교의 하늘에 오사카에서 보았던 B29 폭격기가 다시 나타났다. 산청경찰서 사찰계는 상길의 아버지에게 보리쌀 두 되의 기록을 내밀며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이라는 중죄를 씌웠다. 보리쌀 두 되였다. B29기로 학교를 때려 부순 미군들이 밀가루 사료를 풀었다. 상길은 밀가루 사료에 우유를 섞어 끓인 죽을 받아먹으며 교실도 없이 풀밭에서 책 보따리를 풀었다. 상길의 아버지는 보리쌀 두 되 때문에 1년 징역을 살고 나와 다시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느새 이름도 낯선 좌익이 되어 보도연맹에 등재되었다. 사봉 지서는 사봉국민학교 6학년 학생들을 시켜 호출 영장을 보냈다. 아버지는 다시 진주 형무소로 끌려갔다. 총살하라! 보리쌀 두 되가 총살감이다! B29 폭격기가 진주 남강철교를 끊었다. 진주 형무소에서 어디로 분산해서 죽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사카까지 돈 벌러 갔다 돌아와서 농사만 짓던 아버지는 보리쌀 두 되와 서른여섯의 젊은 생을 바꿔야 했다. 올해 80세인 김상길 씨는 아직 아버지의 유골도 수습하지 못했다. 보리쌀 두 되! 김상길 씨는 평생 보리쌀 두 되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아버지를 수습하지 못한 지금, 보리쌀 두 되는 보리밥도 되지 못하고 썩지도 않고 여전히 자루 속에 담겨있다.

* 1950년 7월 중하순 일어난 진주지역 민간인 학살. 진주지역 민간인 학살 추정지 24곳 중 10번째로 지난 2일 경남 진주 집현면 봉강리 산 83-7번지에서 발굴작업이 시작됐다. 진주형무소에서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희생자는 70명(1200명 추정)으로 확인됐다.

▲ 2022년 6월 9일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작업현장. 진주 형무소에 수감 되었던 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들로 추정하고 있다. ⓒ김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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