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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기후위기'를 시장에 맡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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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윤석열 정부, '기후위기'를 시장에 맡기다

[함께 사는 길] 윤석열 정부 기후·에너지 정책의 반지성주의

새로운 정권이 늘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생태위기의 시대, 생명의 현장은 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며 스스로 움터왔다. 그러니 우선은 새 정부 출범을 응원하는 것이 '국민 된 도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윤석열 정부'에게선 어떤 생명의 새뜻함도 찾을 수 없다. '110대 국정과제'라고 내놓은 것을 살펴보면 참담할 지경이다. 단 한마디로 설명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인식하는 스스로의 시대적 소명 안에 기후위기 극복은 없고, 경제 성장의 이데올로기, '원전 만능' 구호만 답습하고 있다. 역시 '새 정부'는 '새 시대'는 아니다.

권력을 시장에 넘기셨나요

윤석열 정부는 16번째 약속으로 '탄소중립 실현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110대 정책 과제 중 86번에서 89번까지가 '과학적 탄소중립 이행방안과 녹색경제' 및 '생태계 조성', '푸른 하늘', '재활용 순환 경제' 관련 내용이다. 애석하게도 이것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가 했던 약속이었다. 이렇듯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말이라면, 더 과감한 목표나 구체적 이행계획을 제시함으로써 새 정부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그러기보다는 도리어 후퇴해 버리는 선택을 했다.

탄소 중립 정책과 관련하여 윤석열 정부는 대체로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방향성을 계승한다. 즉, 탄소 예산에 입각한 적극적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감축을 유도하는 기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친기업적·반환경적 태도는 문재인 정부보다 강화되었다. 가령 NDC(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그대로 준수하되, '부문별로 현실적 감축 수단'은 새로 마련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속뜻은 산업부문의 감축량을 줄여주겠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실제로 그런 발언을 했었다. "산업계와의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이는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이었다. NDC를 의결한 탄소중립위원회에는 철강협회, 시멘트협회, 현대자동차, SK E&S 등의 산업계 인사가 다수 위원으로 참여해 있었다. 게다가 산업부문은 원래도 14.5%의 감축량을 할당받아 전환·수송·농축산 부문 등이 30~40%씩 감축해야 하는 데 비해 매우 관대한 처우를 받은 터였다.

윤석열 정부는 부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반적인 국정 기조가 그렇듯 기후·환경 분야에서도 다배출 기업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만한 규제수단을 제시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목놓아 외치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기여가 실제 자본 권력을 통해 이루어져 왔는지, 가능한 얘기인지 의심스럽다. 이미 화석연료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친환경 기업인 양 모든 전파를 동원해 광고를 내보내는 그린워싱 천국에서 '규제 혁파'라는 기치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한다.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을 선제적으로 규제하고 관리하지 않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국가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말장난

여하간, 부문별 감축 수단 현실화와 '원전' 관련 내용을 제외하면 거의 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되었거나 검토되었던 내용인 까닭에 윤석열 정부는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 마련을 약속했다. 이전 정부의 목표를 계승하면서 이행방안을 과학적으로 마련하겠다는 말은 기실 이전 정부는 비과학적이었다는 비난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문재인 정부의 태도가 비과학적이었다는 규정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그걸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과학적인 탄소중립'이란, 기후위기로 인한 생명의 파괴와 그로 인해 우리가 당면하게 될 파국적 상황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의 임계치를 측정하고 국내의 생명다양성, 농·어업, 사회적 계층의 변화와 피해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후과학에 근거한 탄소 중립 실현은, 인류 혹은 우리나라에 남은 탄소 예산이 어느 만큼인지 계산하고 그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 사회 안전망을 직조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과학적 접근은 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맹신하는 과학과 기술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 '독자 SMR 노형 개발 및 제4세대 원자로, 핵융합, 원전연계 수소생산 등 미래 원전기술'(『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탈원전 정책 폐기,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 25p.)

- '주력산업의 탄소중립 한계기술 돌파를 위한 전용 R&D사업 신설, R&D·시설투자 세액공제 대상 확대'(『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제조업 등 주력산업 고도화로 일자리 창출 기반 마련」, 55p.)

- '완전자율주행('27), UAM('25) 상용화를 위한 인프라, 법제도, 실증기반 마련*, 전기·수소차 클러스터, 인증검사정비체계 구축'(『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모빌리티 시대 본격 개막 및 국토교통산업의 미래 전략산업화」, 60p.)

즉, 윤석열 정부가 과학과 기술을 인식하고 활용하는 관점은 현재 우리가 당면한 기후·환경·경제 위기를 모두 미래 기술과 과학으로 돌파해내겠다는 것으로 규정컨대, '요청적인 과학관'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과 과학의 진보가 환경과 인류 삶의 질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과제에 대해 미래에 기술이 개발될 것이란 말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은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다.

▲ 전국에서 모인 환경연합 활동가들이 지난 5월 12일 부산역광장에서 고리2호기 수명연장 저지를 위한 투쟁선포식을 열고, '다이-인(die-in) ' 퍼포먼스를 했다. ⓒ환경운동연합

원전 최강국, 안전 최악국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를 110개 국정과제 중 세 번째로 꼽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맞수였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솔직하게 정의했다. 이재명 전 지사의 말마따나 문재인 정부의 그것은 잘 쳐줘야 '감원전 정책' 수준이었다.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고 수명이 만료된 원전을 폐쇄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 기조였다. 그나마도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승인했고, 문재인 정부 임기 중 원전의 발전량 비중은 오히려 높아졌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수명이 다 된 원전의 계속 운영을 허가하는 걸 '상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국제적으로 재생에너지 시장의 규모가 원전 시장의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어 원전 산업이 사양산업의 추세에 있음이 분명함에도 어째서인지 '원전 생태계·경쟁력'을 강화하고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수출하겠다고 공언한다. 어디에 수출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또 한편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사태로 에너지 안보의 취약점이 드러났음을 인식하고 이를 주요하게 다룬다. 원전 활용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라늄도 다 수입해 오는 것인데 어떤 연유로 원전이 에너지 안보 강화의 특효약인 건지도 설명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윤 정부는 우크라-러시아 사태로 체르노빌에서 빚어지고 있는 핵 위협은 인식하지 못하는 단견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원전 관련 산업이 부흥기를 맞이하거나, 원전 수출을 윤석열 정부가 목표한 대로 달성함으로써 원전 최강국이 되더라도 원전 마피아들의 살림살이 말고는 나아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모든 시민의 안전이 최악의 위협에 놓이고 한국은 그 위험을 수출하는 나라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처럼 대형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국내 원전에서도 끊임없이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비 계획적 정지, 비 계획적 누출, 시설 및 설비 결함 발견 등은 1년에도 수십 건씩 일어난다. 태풍이나 산불 같은 기후위기 시대 대형화되는 재난의 새로운 얼굴 앞에서 이전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에 원전이 노출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나마 원전 안전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전문성·독립성 확보'라는 뜬금없는 것이거나 '인허가 단계별 안전성 철저히 확인'이라는 하나 마나 한 얘기뿐이었다. 전자는 원전 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특정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원자력계가 원전 안전에 관한 정보와 결정권을 독점할 우려가 있는 것이며, 후자는 설계·시공·운영 등에 관한 기준 강화가 없는 한 무의미한 말이다.

원전 최강국을 외치는 윤석열 정부는 반지성적 무책임함까지 보인다. 68번째 국정 과제로 '안심 먹거리'가 있지만,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른 해양 오염과 수산물 안전성을 지킬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 침묵의 의미가 원전 최강국의 국민이라면 기꺼이 방사능에 노출된 식품도 먹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당장 수명 다된 원전의 가동 연장까지 과감하게 언급하면서도, 포화된 핵폐기물 관련해서는 '전담 조직 신설'이나 '한미 공동 연구'와 같은 공허한 말만 되풀이하는 걸 보면, 윤석열 정부는 '대책'이나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야당 시절의 관성 그대로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에 반기로서 대책 없이 원전 위험을 키워놓고는, 미래 기술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태도야말로 반지성주의다. 다각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민주주의, 전환의 책임자는 시민

윤석열 정부는 이제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청년 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위기 대응을 시대적 소명으로 인식해야 한다. 국민의 미래와 안전을 담보로 한 기술 만능주의, 원전 만능주의적 태도의 무책임함 역시 수정할 기회가 얼마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대자본이 자발적으로 기후와 환경에 진정성 있게 희생하지 않을 것임을 우리가 귀납적으로 아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의 그런 선회도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 민주주의 사회로의 전환을, 5년 단임 정부를 넘어 시대의 소명으로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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