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민변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논리학의 오류에 '너도 역시(tu quoque)'라는 게 있다. 라틴어인데, 우리말로는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영어권에선 '왓어바우티즘(Whataboutism, 넌 어떤데?)'이 있다. 상대의 공세를 맞받아칠 때 '너 역시 그랬다'고 반박하는 것인데, 상대의 과거 행동이 나의 현재 행동을 정당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논리적 오류로 분류된다. 위키피디아에는 그 예시가 잘 소개돼 있다.
철수: 영희는 국어 숙제를 빼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영희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영희: 철수 너도 숙제 안했잖아?
'왓어바우티즘'은 냉전 시절에 소련이 미국을 향해 즐겨 쓰던 방식이다. 요즘엔 중국의 '선전 전략'으로 탁월하게 사용된다. 미국이 '중국엔 인권이 없다'고 비난하면 중국은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언급하며 '미국엔 인권이 없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미국이 중국에서 발생하는 의문사 건수를 지적하면 중국은 미국에서 범죄로 죽는 사람의 숫자를 들이민다. 그런데 이런 게 중국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지지자들의 화법을 보면 이런 경향성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김건희 여사를 비판하면 김정숙 여사를 소환하고, 대통령 사저 앞 시위를 비판하면 '박근혜에게 당신들은 어땠는데'라고 반박한다. 이런 방식의 반박은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의 '아빠 찬스'나 김건희 여사의 집무실 사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욕설 시위에 대한 비판적 지적을 희석해주는 것도 아니고, 현 정부 들어 불거지고 있는 다수의 문제점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내로남불'을 변칙적으로 활용한 공격이다. 물론 문재인 정권과 '운동권 정치'의 '내로남불' 공격을 주요 선거 전략으로 삼아 왔으니, 집권을 한 후에도 그 연장선에서 사고가 머물러 있을만도 하다.
지금은 다르다. '내로남불'로 국정을 이끌어갈 순 없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내로남불' 비판 이상의 것을 보여줄 일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인사 도배'를 비판하는 데 대한 반박이 '과거 민변 출신들 도배' 수준이라는 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중 '도배 발언'만 떼고 보면 왜곡이 발생할 수 있으니, '검찰 공화국 비판 여론'에 대한 그의 출근길 발언 전문을 살펴보자.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뭐 선진국에서도, 특히 미국 같은 나라보면 거버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습니까?"
'검찰 편중 인사'는 과거에도 '민변 편중 인사'가 있었으니 특이할 만한 게 아니고, 검찰 출신의 적극 기용은 '거버먼트 어토니'의 정관계 진출과 같은 것이니 문제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편중 인사는 '너도(tu quoque)'의 오류라고 앞서 설명했다. 그런데 뒤에 나오는 '거버먼트 어토니' 발언도 사실관계가 뒤틀려 있다.
검사='거버먼트 어토니(정부 법률 대리인)' 등식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검찰은 권력 기관이자 '국가의 합법적 폭력 수단'인 기소권을 사실상 독점하는 '스테이트 프로시큐터(state prosecutor)'다. 즉 '특정직 공무원'인 검찰의 역할은 '수사'와 '기소'에 국한해 정부를 대리하는 것으로 한정돼 있다. 반면 시민사회단체인 민변은 그 역할이 '변호'에 한정돼 있지도 않는다. 단체 이름 자체에 '민주사회를 위한'이라는 폭넓은 수사가 붙어 있으며, 다양한 봉사, 정책 개발 및 제언, 심지어 언론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 권력기관과 시민단체를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문제지만, 윤 대통령이 만약 검찰 조직의 활동 범위를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범위에까지 등치시킨 것이라면, 이건 보통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이 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간여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 '뉘앙스'도 지적해야겠다. 과거 정부가 민변 출신으로 도배했다는 게 잘 한 것이어서, 나도 검사 출신들로 따라 도배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민변 출신들이 도배한 게 잘못된 것이었다는 말인가. 그때도 잘못한 것이니, 지금도 잘못해도 된다는 것인가. '내로남불'은 야당의 언어다. 야당의 언어를 가지고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민주당이 나중에 다시 집권했을 때, 민변 출신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면서 '과거엔 검찰 출신들로 도배했다'고 한다면 대체 뭐라고 할 것인가.
'도배' 발언에는 '인사 철학'도, '정책 철학'도 없다. '내로남불' 전략이 국정 운영 기조가 될 수 없고, 정부 부처 인사 컨셉이 될 수 없다. '과거에 우리 반대파가 이렇게 했으니 우리도 이렇게 하겠다'는 것은 국정 철학이 아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도배 인사'는 특히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과거 감찰 징계 대리인 이완규 전 검사가 법제처장에 올라서고,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의혹 사건 변호인 조상준 전 검사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올라섰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말한 '거버먼트 어토니'인가? 아니면 '프라이빗 어토니(private attorney)'인가. 검찰 출신 변호사가 김건희 여사를 변호할 수 있다는 건, 검사라는 직업이 옷만 벗으면 언제라도 '공공'이 아닌 '사적' 이익에 봉사할 수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어디 '거버먼트'가 있는가.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임명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자타공인 그의 측근이고, 공직자 인사 검증 시스템까지 가져갔다. 그가 취임한 직후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사정의 핵심 기관인 서울중앙지검은 '특수부 검사'로 이뤄진 '윤석열 사단'이 대거 승진해 전진배치됐다.
이쯤되면 '검수완도(검찰·수사관 출신으로 완전 도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 정권 수사) 해야죠"라고 말한 게 논란이 되자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을 강조해왔다"며 "저 역시도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대해선 법과 원칙,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 처리돼야 한다는 말씀을 드려왔다"고 했다. 그런데 '검수완도' 인사를 한 뒤 향후 벌어질 사정정국에서 '수사의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시민들이 믿을까. 본인만 공정하다는 착각은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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