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KBS)가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서 선거분석 코너의 패널 성비를 1:1로 맞추는 등 '성평등 개표방송'에 대한 약속을 이행했다.
지난 1일 오후부터 2일 오전까지 KBS1 채널에서 방영된 <2022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선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방영된 개표방송에 비해 패널 성비 불균형 등 선거방송 내의 성 불평등 문제가 대폭 완화된 모습이 확인됐다.
이는 지난 대선 이후 4개 방송사(KBS·SBS·MBC·JTBC)에 성차별적 선거방송 문제를 제기했던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측의 의견을 KBS가 적극 수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KBS는 지난 4월 26일 여세연 측과 '선거 방송 출연진 성비 불균형 개선 방안 모색 라운드테이블'을 공동 개최하고 해당 "라운드 테이블을 계기로 새로운 여성 패널을 발굴하는 등 선거방송에서의 불균형을 점차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KBS 측이 방영한 <2022 지방선거 개표방송>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대선 개표방송 당시에 핵심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낮은 여성 패널 비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1~2일 양일간 KBS 노들 특설 세트장에서 총 3부로 나누어 진행된 개표현황 분석 코너엔 11명의 전문가 패널이 초청됐고, 그 중 6명이 여성으로 구성됐다. 초청된 여성 패널은 이승원 정치평론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이혜정 교육과혁신 연구소 소장 등이다.
남성 패널 중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가 2부와 3부에 중복 참여하면서, 각 회차의 남녀 비율은 1부 3:1, 2부 1:3, 3부 2:2로 구성돼 전체적으로 봤을 때 1:1 성비가 맞춰졌다. 지난 3월 KBS 대선 개표방송 당시엔 분석 코너 'K큐브'에 초대된 5명의 패널이 모두 남성으로 구성됐고, 이 중 3명(유시민, 전원책, 박성민)이 1부부터 4부까지 중복 출연하며 여세연 측으로부터 "여성 패널 발굴 의지 부족"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개표방송의 각 코너를 진행하는 기자, 아나운서의 경우 KBS는 대선 당시에도 50% 이상을 여성으로 구성하며 타 방송사보다 나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다만 KBS는 이번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선 분석 방송인 'K터치', '듀얼 K월' 등의 코너도 여성 진행자 1인에게 일임하며 이른바 남중여경(남성은 중요의제 여성은 가벼운 의제) 문제를 추가적으로 완화하기도 했다.
황연주 여세연 사무국장은 2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지난번 대선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나아졌다"며 KBS의 이번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그는 "단순 성비뿐만이 아니라 남오여삼(남성은 50대 여성은 30대), 남선여후(남성이 먼저 말하고 여성이 후에 발언), 남중여경 등의 성차별적 방송 관행을 타파하려는 시도들이 보였다"는 점을 유의미한 변화 사례로 꼽았다.
다만 황 사무국장은 "하나 아쉬운 것은 1부, 2부로 나눠 여성 패널을 한 코너에 몰아서 배치하는 게 아니라, 각 코너에서의 비율을 (1:1 정도로) 맞췄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개표방송이 저녁 시간대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만큼, "특정 시간대만 볼 수 있는 시청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어떤 시간대를 보더라도' 다양한 패널을 볼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편견의 재생산" 때문이다. 여세연은 지난 4월 진행된 라운드테이블에서 "중년 남성들만 모아놓고 정치를 노하고 평하는" 미디어의 이미지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정치는 남성만의 것이라는 편견, 성역할의 고정관념" 등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황 사무국장은 "대선 과정에선 여가부 폐지 공약이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되는 등 (정치권이) 여성 유권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현상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개표방송에서마저 정치와 관련한 인물들은 전부 중년 남성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꼈었다"라며 지난 대선 당시 선거방송 내 성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여성 후보 비율 등 비슷한 (정치권 내 성 불평등) 문제를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가 재현하는 '정치의 얼굴'이 중년 남성에만 한정되는 것은 굉장히 문제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