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홈페이지 공약자료실에서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게시판'으로 접근하면, '윤석열의 공약위키'라는 배너가 보인다. 국민 여러분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쌍방향 디지털 플랫폼"이라고 명시된 배너를 클릭하면, 화면은 검정색으로 가득하고, 오직 한 줄의 흰색 문장만이 남아 있다.
번역하면, '당신의 지불 상태를 확인하라(Please check your payment status)'는 메시지가 전부다. 공약을 보려면 돈을 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대선이 끝났으니 이제 볼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게시판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검은 화면속 오류메시지 'your payment status'가 궁금해졌다. 내 지불 상태를 확인하라니…. 커피를 사마실 때나 물건을 결제할 때 주로 카드를 사용하지만 가끔은 충전해놓은 '○○페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휴대폰 소액결제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 부분과 관련된 국민의힘 대선공약이 궁금해졌다.
정당의 홈페이지에도 없으면 어디서 공약을 볼 수 있을까? 대선 당시 국민의힘 정책본부장이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이제는 장관의 업무 내용으로 블로그가 개편되었을 줄 알았는데,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없고, 지난 대선 당시 발표한 40개의 '석열씨의 심쿵 약속'만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다. 대선이 끝난 후, 정당의 홈페이지는 정책기능을 상실했고, 장관의 블로그는 아직도 대선에 머물러 있다.
원희룡 장관의 블로그를 보면서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35번째 심쿵 약속에서 드디어 관련 공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에 불합리한 수수료율 부담, 이제 그만! 간편결제(페이) 수수료 체계화!'였다. 전문을 옮기자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약은 어떻게 후퇴하고 있는가?
심쿵공약 40개를 다 살펴보았지만, 35번 공약이 서민들의 실생활과 밀착되어 있고, 영세상인들을 위해 핵심을 정확히 간파하고, 명확한 대안을 제시한 공약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힘이라고 재벌 편에 선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이 공약이야말로 보수의 품격을 보여준 것이었다.
핵심은 평범한 듯 보이는 문구에 있다. 밑에서 7번째 문단을 살펴보면, '간편결제(페이) 수수료에 대해서도 신용카드 등과 같이 준수해야 할 사항을 정해'라는 표현이 있다. 더구나, 앞선 문단에서는 빅테크 금융업 규율에 대한 '동일기능 동일규제 적용'의 기본원칙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국민의힘이 어떻게 입을 닦았는지는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심쿵약속 35번과 관련한 조항은 74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는데 37번 '금융소비자 보호 및 권익향상' 부분에 단 한 줄로 나와 있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애초에 심쿵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빡치기 시작했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과 빅테크가 제멋대로 수수료를 책정하고 공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일기능 동일규제라는 원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상인들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뜯어내는 빅테크 기업, 이들을 규제하지 못하는 것이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작년,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 실적은 일평균 60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 3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중 간편결제·간편송금 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실적은 일평균 1981만 건, 6065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각각 36.3%, 35% 증가했다. 즉, 간편결제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빅테크의 이익은 늘어나는 반면, 영세상인들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빅테크가 카드사와 달리 가맹점 수수료율을 자체적으로 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게 심쿵공약이었다. 신용카드사들이 영세상인들에게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하듯, 빅테크 기업의 수수료 책정도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것이 바로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이었는데 이를 파기한 것이었다.
빅테크에 포섭된 윤석열 정부, '심쿵공약'을 내주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자유인가? 자유롭게 빅테크가 수수료를 책정하고 공시하면 시장이 알아서 조정될 것이라는 믿음이…. 지난 5월 19일 금융감독원이 개최한 '전자금융업자 결제수수료율 공시제도 관련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의 구성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기업은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토스, NHN페이코, KG이니시스, SSG닷컴, G마켓, 11번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등 핀테크사와 전자결제대행업체(PG), 오픈마켓 업체 등 12개 업체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고작 공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이 태스크포스에는 왜 영세상인들의 목소리, 소비자들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는 것인가? 제멋대로 수수료를 책정하고 정부에서 규제하지 않다보니, 카드수수료의 몇 배에 달하는 폭거를 취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부가 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한가지 뿐이다. 국민의힘 홈페이지의 오류메시지 'Please check your payment status'를 인용해 부탁드린다. 무엇이든 결제하기 전에 당신의 지불 상태를 확인하시라. 어떤 결제수단이 영세상인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지를…. 빅테크의 자유를 규제하지 않으면 결국 그들에게 예속된다. 누군가의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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