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산후조리하던 여자의 죽음
추색이 만연한 시절에 내리는 비야
너는 참혹함을 기억하느냐
젖은 잎들아 너는 보았느냐
눈뜬 사람들이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하여 등을 돌리던 현장을 보았느냐
세상 모르던 어린 소녀의 귀를 찢고
가슴을 찧고 마침내
두 눈에 핏물로 가득 채워
나는 그날 이후
밝은 것을 잃었노라
명랑함을 강탈당했노라
내 어미가 끌려나가
총알에 가슴 찢기고 돌아오지 못했을 때
할머니가 쓰러지고
나의 어린 하늘도 무너져 내렸노라
인민군이 지나가는 길목에
강화도가 있었고
강화 촌에서 목숨 부지한 게 죄였다
갓난 애기와 77세 할머니와
어린 동생과 오빠를 데리고
해산한 지 얼마 안 되어
피난 갈 수도 없는 몸으로
강화도에 머문 것이 죄였다
산후통으로 퉁퉁 부은 몸을 끌고
어린 것을 업고 끌고
할머니를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 못 간 것이 죄였다
강화 촌에서
산후 조리한 것이 죄였다
부실한 몸으로 어린 것 앞세워
떠나지 못한 것이 진정
죄란 말인가
인민군이 지나가는 길에 살았다는 이유로
인민군에 부역을 했다고 의심당해
1950년 12월 말, 쇠약한 몸으로
8개월 된 아기를 업고 끌려간 어머니.
그녀에게 총구를 들이댄 자는
어머니의 나라 경찰이 아니던가!
피난 못 간 서러움을 죽음으로 갚아야 했던
어머니는 대한의 국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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