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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률의 이 한 곡의 노래] '영랑과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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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률의 이 한 곡의 노래] '영랑과 강진'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가 시작됐을 때 가요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대상을 받았던 서울대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대중의 사랑을 받자 대학가에서 노래에 관심이 있거나 노래 동아리에 속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가요제를 참가하려고 준비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는 한대수, 김민기, 트윈 폴리오 그리고 양희은 등등, 서정성 있는 싱어송 라이터와 가수들도 있었지만 대세는 외국 팝송과 남진, 나훈아, 조용필 그리고 일부 트롯 가요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가요제는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대학생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대학가요제 노래를 좋아했고 많은 스타 가수들을 배출했다.

당시 mbc 대학가요제는 지역별 예선을 거쳐 대표 참가자를 선정했다. 광주 전남은 1회 때 소리모아 트리오가 참가하여 동상을 수상했고 2회에는 김정식의 약속으로 은상을 수상하는 등 다른 시 도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제3회 mbc 대학가요제 광주 전남 예선에서 ‘영랑과 강진’이라는 다소 생소한 노래 제목으로 대표로 선정된 나는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고심하였다. 예선에 참가할 때는 솔로로 노래했으나 당시 광주mbc 소수옥 국장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트리오로 재편했다.

당시 소 국장께서는 "솔로로 하니 외롭고 뭔가 부족하다. TV로 생중계 되는데 그림이 안나온다. 그리고 1~2회 때도 트리오로 나갔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라는 제안을 한다. 당시에 그 말을 100%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 실제 TV영상을 보니까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주 멜로디를 담당했고 정권수‧박미희 두 분이 화음과 시 낭송을 맡았다.

‘영랑과 강진’이란 제목 때문에 본선에 올라가자 미디어로 부터 많은 질문이 들어 왔다. 제목이 무슨 뜻이냐는 거였다. "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지은 시인 김윤식 선생이고 강진은 그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고 만든 저도 고향이 강진입니다"라고 설명하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본선 실황중계에 앞서 레코드를 발매키 위해 그리고 홍보를 위해 사전 녹음 작업과 기자 간담회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자들과 가요 전문가들로 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랑과 강진’이야말로 진정한 대학가요제 노래다. 이 노래가 대상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남으로 남으로 내려 가자

그 곳 모란이 활짝 핀 곳에 영랑이 숨쉬고 있네

남으로 남으로 내려 가자 그 곳 백제의 향기 서린 곳 영랑이 살았던 강진

음악이 흐르는 그의 글에

아 내 마음 담고 싶어라~

아, 영원히 남으리 영랑과 강진”

믿기지 않는 에피소드.

은상 수상을 하고 얼마 간은 방송에서 노래가 가끔 들렸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노래가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신청곡으로 요청을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라서 방송국에 중견 음악PD를 하던 선배께 물었다. 왜 곡이 나오지 않느냐고.

잠시 머뭇거리던 선배가 ‘영랑과 강진’은 방송국 자체에서 정하는 방송 부적절 곡이란다.. 그 이유는 한참 후에 들었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자’라는 가사가 북한의 남침을 연상함으로 방송 부적절 곡이란다.

허 참….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놀라운 사진 두 장을 공개한다. 위에서 말한 방송 부적절 곡에 대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자료이다. 최근 인터넷에 떠다니는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게 기막힌 사진이다. 아마 KBS창원 총국에서 나온 LP를 누군가 판매를 위해 사진 찍어 올렸는데 이게 내 눈에 들어 왔다.

LP판 앞장 뒷장 사진인데 관심이 없는 분들은 지나 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나에게는 뼈아프게 다가 왔다. 아래 첨부한 사진을 보시라.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고 해도 노래 가사에 나오는 서정적 표현을 북한군 남침으로 연상하는 웃 픈 당시를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고향 강진이 떠오른다.

은상을 수상하자 강진군에서 프랙카드도 붙이고 군민들 모두가 기뻐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노래는 강진군가 취급을 받는다.

43년 전 그 날을 생각하며 감회에 젖는다.

▲김종률 영랑과 강진 LP 뒷면. ⓒ김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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