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은 '어린이날 100주년'이었다. 한국의 어린이날 선포 등 소년운동이 국제연맹의 '아동인권선언' 등보다도 더 앞서는 선구적인 운동이었음을 부각시키며 100주년을 기념하는 목소리는 많았다.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행사들이 여러 곳에서 열렸고 각종 기념 상품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과연 100년 전에 이야기했던 문제의식을 한국 사회가 현재의 과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100년 전 어린이날엔 무엇을 이야기했나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에 의해 시작된 어린이날 운동은 어린이를 존중하며 억압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이때 어린이란 '어른'과 대비되는 미성년자, 아동 전반을 가리킨다). 1년 뒤인 1923년 5월 1일에는 여러 소년운동단체들이 연합하여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고 한층 더 크게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한 번 더 열었다. 어린이날 행사에서는 서울 거리에 "어린이해방" 깃발을 걸고, 선언문을 배포하며 종로 일대에서 가두 행진을 했다. 당시 언론에서도 '마침내 어린이를 인간답게 대우하고 존중하자는 날이 왔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날의 의미는 그저 '어린이를 아끼고 사랑하자', '어린이날엔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고 잘 놀아주자' 정도에 머물러 있는 듯싶다. 올해도 100년 전 어린이날의 주장을 돌아보는 언론 기사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는 데 그쳤지, 지금의 적극적 사회 의제로 공론화되지는 못했다. 100년 전 어린이날에는 이런 것도 주장했다고 소개하기만 하고 '어린이날의 주장이 2022년에는 잘 실현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논의와 실천에는 큰 관심이 없다.
1922년 어린이날에 발표된 선언문과 1923년 어린이날에 발표된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은 모두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라." 여기에서 재래의 윤리적 압박이란 다름 아니라 '어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규범, 장유유서(長幼有序) 등의 나이주의적 차별을 가리키는 것이다. 100년 전의 어린이날에는 나이에 따른 권력관계와 수직적 문화를 없애고 어린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라는 것을 제1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또한 1923년 어린이날에 발표한 '어른에게 드리는 글'에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라는 말이 앞부분에 올라있다. 나이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지 말 것, 존댓말을 사용할 것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 역시 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하라는 선언이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1923년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에게 당부하는 글 중에도 "어른들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라는 내용이 있어서 어린이·청소년 사이에서의 나이주의적 위계도 없애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어린이 존중 요구는 거부하는 현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2022년 요즈음도 어린이·청소년이나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하대를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어린이과학동아'가 2022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어린이날 선언 7개 조항 중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고 부드럽게 대해 주세요"가 잘 지켜진다는 응답이 50.1%에 그쳐 가장 잘 안 지켜지는 조항으로 꼽혔다. 100년 전 어린이날의 요구 중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역시 어린이·청소년들의 세계적으로 긴 학습시간과 짧은 수면시간 앞에서 무색하다.
모두가 어린이들을 위하고 아껴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표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어린이·청소년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라는 말에는 반감을 보인다. 어린이·청소년이 부모나 교사, 어른을 공경하고 어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등 '재래의 윤리적 압박'을 재생산하는 주장은 아직도 잘못된 구습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체벌 금지 등 어린이·청소년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나 정책이 사회질서를 무너뜨린다고 믿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 이번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 중에는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정책을 폐지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린이·청소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활하는 학교에서도,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경어 쓰기 등 인격적 예우 요구는 끊임없이 반대에 가로막히고 있다. 2003년 MBC '느낌표'에서 수업 시간에 경어를 사용하는 교사를 소개했지만 언론과 교사단체 등으로부터 '교권 추락'이라며 반발을 샀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수업 시간 다수 학생을 상대할 때만이라도 교사가 경어를 쓰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은 더 널리 퍼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당연한 윤리라기보다는 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다. 더구나 수업 중이 아닐 때, 교사와 학생이 일대일로 대화할 때도 경어를 쓰는 예는 더욱 줄어든다.
2021년 6월, 전교조 여성위원회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 일상 언어 속 나이 차별 개선 캠페인'을 소개하며 전교조 내에서 함께 실천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이 캠페인은 100년 전 어린이날의 주장을 이어받아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 하대를 하지 마십시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이 어린 사람을 부를 때, 존칭(OO님, OO씨 등)을 사용하십시오", "어린이·청소년의 몸이나 물건 등에 함부로 손대지 마시고 존중하십시오" 등의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자 조선일보, 국민일보 등의 언론에선 '전교조가 학생에게 존칭을 쓰자고 한다'라며 부정적 논조의 보도를 내놓았다. 학생에게 경어나 존칭을 쓰자는 것이 지나치고 부자연스럽다는 부정적 반응들 위주로 소개하며 교육 현장에 혼란을 불러올 거라고 평가한 것이다. 100년 전 어린이날의 요구조차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사회와 언론의 수준이 드러난 셈이다.
경어와 존칭 쓰기부터 시작하자
어린이날을 기념하고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어린이·청소년에게 존댓말을 쓰고 '○○님'이라고 존칭으로 부르는 것은 거부감이 들고 지나치다고 반응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가 가진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어린이날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어린이를 귀여워하고 예뻐하자는 날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쓰고 예의를 갖추는 게 인격 존중이라고 느끼면서, 나이 어린 사람,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일방적으로 반말을 쓰고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차별이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캠페인을 통해, 이러한 어린이·청소년에게 나이 차별적인 언어 문화를 지적하고,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혐오나 편견이 담긴 말을 비판하는 소책자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https://tumblbug.com/100th0505)을 하고 있다. 1922년 어린이날에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라"라고 요구했던 것이 2022년 오늘날의 문제의식으로 계승, 발전된 것이 바로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라는 표어이다.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지도 100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어린이·청소년을 어른과 다른 아랫사람, 반말을 하고 하대를 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기는 문화가 차별적인 악습임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게 되기를 바란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어린이·청소년에게도 경어와 존칭 쓰기'부터 공식 사회 의제화하고 실천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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