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계의 살아있는 전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과 헤지펀드계의 전설 조지 소로스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연설을 통해 입장을 밝혔는데, 서로 다른 시각에 입각해 상반된 조언을 내놓았다.
1970년대 '핑퐁 외교'로 불리는 미중 냉전 화해의 설계자인 키신저 전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다보스 포럼에서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의 일부를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격변과 긴장이 조성되기 전, 앞으로 두달내 협상이 재개돼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경계선은 개전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상을 추구할 경우 러시아와 새로운 전쟁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쟁 전 상태는 러시아가 강제로 합병을 선언한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내 친러시아 지역인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러시아 지배를 인정하라는 의미다.
그는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수치스러운 패배를 추구해선 안 된다"며 이 경우 유럽의 장기적 안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해야할 일은 유럽의 국경이 아닌 중립적인 완충국가가 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미 보여준 영웅적 행동을 지혜와 결합하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경제계 거물인 소로스는 24일 다보스 포럼에서 반대로 "세계 문명을 보존하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빨리 패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로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제3차 대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며 "전쟁이 중단되더라고 상황은 결코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며,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 사이의 투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개방사회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소로스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친중.친러 기조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은 유럽에서 최고의 경제 성과를 거뒀지만 지금은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며 "독일 경제는 방향을 바꿔야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그 영토에 거주하는 수백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어쩌나"
한편, 현실주의에 입각해 영토 포기를 받아들어야 한다는 키신저의 제안에 우크라이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화상 연설에서 영토 포기 주문에 대해 "1938년 나치 독일을 회유하고자 했던 아이디어와 비슷하다"며 "마치 (1938년) 뮌헨 협정을 연상시킨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금은 1938년이 아니라 2022년"이라고 항변했다. 뮌헨협정은 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에 의해 체결된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중 독일인 인구가 많은 주데텐란트를 나치 독일에게 양도하는 내용이다. 나치 독일을 회유하려는 전략이었지만, 추후 폴란드 침공의 도화선이 되면서 2차 세계대전을 1년 늦춘 것일 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에 무언가를 주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위한 교환 대상이 돼버린 영토에 거주하는 수백만명의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을 결코 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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