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서른 번 넘게 외쳤다. 유별난 일이다. 국정 전반에 대한 포부와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자유'를 수십 번 외친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결심에서일 것이다.
부자의 '자유'와 빈자의 '자유'는 같은가
여기서 그가 외친 '자유'가 국민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같은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사회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계층과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는 국민들이다. 국민들은 경제 권력에서 부자와 빈자로 나뉘고, 사회 계급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뉜다. 또한 통치 권력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뉜다.
노동시장 측면에서 보자면 노동시장 상층부를 장악한 이들이 있고, 노동시장 하층부에 자리한 이들이 있다. 노사관계 측면에서 보자면 자기의 노동력을 팔아 노동을 통해 임금을 받는 개별적 혹은 집단적 노동자가 있고, 이들의 노동력을 구입해 일을 시켜 이윤을 획득하는 개별적 혹은 집단적 사용자가 있다.
이렇게 여러 갈래로 쪼개지고 나눠진 국민의 본질을 생각할 때, 국민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사회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자유'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이 그토록 외친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노동 문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가의 '자유'를 확장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의 '자유'를 확장하겠다는 것이지 별다른 설명이 없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부자의 '자유'를 확장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빈자의 '자유'를 확장하겠다는 것이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무지개 뜬 오월의 서울 하늘에다 대고 무작정 '자유'를 외쳐 댔던 것은 아닐까.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는 2019년 그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찾을 수 있다.
윤석열의 가치관과 밀턴 프리드먼
답변서에서 그는 "본인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0년에 밀턴 프리드먼과 로즈 프리드먼 부부가 함께 쓴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꼽았다. 10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방송국에서 만든 10개의 강의를 묶은 것이다.
이 책에서 프리드먼 부부는 "자유시장에서 사기업을 통한 경제활동이 정치적 자유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교육도 자유시장에서 사기업에 맡기면 되고, 빈곤 퇴치도 자유시장에서 사기업에 맡기면 된다. 차별 철폐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마찬가지로 정치도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인 "자발적 교환"을 통해 결정되는 게 최상이다. 정치 혹은 정부의 역할은 "사익을 촉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범위를 넘어선 안 된다. 큰 정부는 자유시장이 가져다준 번영과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기 마련이다.
영국 식민지 홍콩, 자유시장 국가의 모범
프리드먼 부부는 자유시장 국가의 모범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을 추켜세운다. 관세는 물론 국제무역에 제약을 가하는 어떠한 규제도 없다. 정부가 경제활동에 거의 개입하지 않으며 최저임금법도 없다. 가격 통제가 없으며 세금도 세계 최저 수준이다. 홍콩 식민지인들은 그들이 팔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팔고, 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산다.
프리드먼 부부는 대영제국의 관료들이 자신의 식민지인 홍콩에 관철시키는 "자유시장과 작은 정부"를 정작 영국 본토에서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투덜거린다. 참고로 프리드먼 부부가 이상향으로 추켜세운 홍콩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는 영국과 중국 간에 합의된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2047년까지 변함없이 지속된다.
복지 제도는 '악'
프리드먼 부부에게 복지국가와 사회복지 제도는 없애야 할 악이다. 세금을 통해 국가나 사회가 제공하는 공적 혜택은 최소화하고 개인이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세금에 의존하던 문제들을 개인의 창의와 평등한 인간들끼리의 자발적 교환에 의존하게 되니 국가에 세금 낼 필요가 없어진다.
사회보장이라는 미명 하에 보건, 교육, 복지에 천문학적인 돈을 낭비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인에게 유리하고 청년에게 불리하다. 왜냐하면 청년이 높은 세금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먼 부부에게 사회복지 제도는 시대에 뒤떨어진 "가부장적 보호라는 악"에 다름 아니다.
복지 제도란 가족을 해체하고, 개인들이 자유롭게 일하고 저축하고 혁신할 동기를 떨어뜨리며, 자본의 축적을 감소시켜 결국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회복지 제도는 철폐돼야 한다.
'신 앞의 평등'이면 족하다
프리드먼 부부는 "결과의 평등"이 자유와 충돌한다고 본다. 따라서 "모두가 동등한 생활 수준과 소득을 누리고 동등하게 결승선에 도착하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 기회의 평등은 "재능에 따른 경력(a career open to the talents)"이다. 인간은 서로 능력이 다르며 사람들 사이의 우열 관계는 필연적이다.
프리드먼 부부는 "민주주의가 과해지면 시민적 미덕이 훼손된다"는 토마스 제퍼슨(1743~1826, 미국 3대 대통령)과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 프랑스 정치철학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따라서 평등이란 "신 앞의 평등"이면 족하다.
부자 부모를 만나는 것도 능력
출생과 종교와 국적이 아닌 성과로만 평가되는 것이 진정한 평등, 즉 기회의 평등이다. 그리고 성과를 평가하는 최선의 방법은 "부의 축적" 수준을 살피는 것이다. 모두에게 공정하게 부가 나눠진다면 자유는 줄어든다고 믿는 프리드먼 부부는 더 과감한 주장으로 나아간다.
"부자 부모를 만나 재산을 상속받는 것과 음악적 능력과 수학적 천재성과 같은 재능을 상속(유전)받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재능의 상속에는 분개하지 않으면서 재산의 상속에는 분개한다. 삶은 공정하지 않다. 우리가 탄식하는 바로 그 불공정으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성과로 평가받는 '기회의 평등'만 추구해야
부부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체제"를 꿈꾼다. 이러한 "기회의 평등과 자유"가 헨리 포드를 낳았고 토마스 에디슨과 존 록펠러를 길러냈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강제력을 사용한다면 자유는 파괴된다." 따라서 평등은 자유의 부산물에 머물러야 한다.
프리드먼 부부에게 미국의 공립학교 제도는 사회보장 제도 만큼이나 자유시장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사회주의라는 섬"과 같은 것이다. 수준 낮은 공립학교의 질을 개선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립학교로 만들면 된다. 성과의 측면에서 볼 때 최악의 사적 시장이 최선의 공적 제도보다 낫다.
교육과 학교를 분리시켜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교육은 잘 받은 반면, 많은 사람들은 학교를 다녔지만 교육을 못 받았다." 따라서 세금이 들어가는 학교로부터 교육을 해방시켜 자유시장과 사기업에 맡겨야 한다.
광주항쟁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5.18 기념식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1980년 광주항쟁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항거"라면서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규정했다. 또한 "오월 정신이 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세계 속을 널리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의 오월 정신의 핵심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오월의 광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평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민중민주주와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반미주의 민족해방운동으로 확장시키는 전환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모두, '자유민주주의' 내걸어
이런 점에서 오월 광주는 이승만 독재 정권의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타도한 1960년 4월혁명과 궤를 같이한다. 1961년 5월 군부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파시즘체제로 치닫다가 1979년 10.26 사태로 막을 내렸다.
얼마 후 12.12 사태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도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1980년 오월의 봄을 짓밟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체제 세력을 완전하게 진압하기 위해 '화려한 휴가'의 광주학살을 저질렀다.
광주항쟁, '반미'를 향한 전환점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은 미국의 후원과 지지를 통해 유지되어온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벗긴 역사적 사건이었다. 광주항쟁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자유민주주의"의 실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던져졌고, 오월의 광주 덕분에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후원하던 미국의 실체가 드러났다.
광주항쟁을 통해 '반미'의 무풍지대였던 대한민국에 반미운동의 불씨가 당겨졌다.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후원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운동이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1980년대 들불처럼 일어났다.
특히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광주학살을 미국이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국익(national interest)을 위해서라면 인권도 평화도 시궁창에 내팽개치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위선과 양면성이 폭로되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적 순혈주의
1980년대 광주학살로 촉발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대한민국이 지향할 민주주의에 대해 다양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는 민중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산업민주주의로 나아갔고, 그 결과 19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그해 7월과 8월과 9월의 노동자대투쟁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동시에 친미사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독점했던 대한민국의 정치적 DNA를 다종다양하게 변화시켰다. 대한민국 역사 최초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렇듯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이념에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에 이식하려 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체제의 정치적 DNA만 앙상하게 박혀 있지 않다. 1980년 오월의 열사들이 꿈꾸었던, 그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를 친미사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낡디낡은 담론 너머로 넓혀 가려 했던 학생운동과 민족해방운동 그리고 노동운동의 DNA도 박혀 있다.
한마디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적 순혈주의를 폭력적으로 강제했던 지배세력과 이에 저항해 민중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와 민족해방운동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이념적 지평을 넓혀가려 했던 민중세력이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발전해온 역사다.
'자유' 프레임을 활용한 '역사적 광주'의 삭제
역사적 사실이 이러한 데도 오월 광주를 언급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유달리 강조하는 윤석열 정권의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역사적 광주"가 한국 사회에 제기한 문제의식인 친미사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반미운동,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지양하기 위한 다양한 이념의 민주주의 운동, 그리고 남북의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DNA들'을 지우려는 이념 공세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현실에서 프리드먼 류의 자유는 '신자유주의'로 현실화되면서 국가를 시장의 지배에 복속시켰다. 국가가 시장과 한 몸이 된 칠레의 군사 파시즘 체제가 대표적이다. 프리드먼 이데올로기의 열렬한 숭배자가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이었다. 프리드먼 교수도 '자유' 칠레에 애착을 가졌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시장과 국가의 분리 정립을 추구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에 대한 표현상의 저주와는 달리 시장과 국가의 일체화를 추구했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주의, 즉 파시즘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프리드먼 부부가 <선택할 자유>를 냈던 1980년은 광주항쟁이 일어난 해이기도 했다. 언론을 통해 광주항쟁을 접했을 프리드먼 부부는 북한의 침략 위협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 광주 시민을 학살하던 군부를 지지했을까, 아니면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민중을 학살하던 군부에 맞서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오월 광주를 지지했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와 시장의 일체화는 신자유주의적 파시즘을 불러왔다. '법을 이용한 법률가들의 지배(the rule of lawyers by law)'를 꿈꾸는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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