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스스로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코로나19가 북한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 북한은 4월 말부터 5월 15일까지 누적 발열자가 약 121만 명에 달하고 사망자도 50명이라고 발표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속도와 북한의 부실한 방역 및 보건의료 체계를 고려할 때, 대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속한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힌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북한도 이에 호응하길 간절히 바란다. 동시에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인도적 협력의 절박함이 2019년 이후 누적되어온 정치군사적 갈등을 우회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불길한 징후는 이미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1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3대 의제 가운데 하나로 '북한 도발 대응'을 뽑았다. 15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양국 정상이) 북한 도발에 대한 한미 양국 대응 전략과 상황 관리 방안에 관해 얘기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한미연합훈련 강화와 미국의 전락자산 전개 등이 논의되고 발표될 공산이 크다.
북한이 올해 들어서만 16차례의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핵실험 징후까지 포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또 인도적 사안과 정치군사적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가 처한 냉엄한 현실은 이 두 가지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북한은 정권은 문재인 정부 시절 인도적 협력 제안을 "비본질적 문제"라며 한미연합훈련과 남한의 첨단 무기 도입과 같은 "근본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었다.
일각에선 북한이 코로나 대유행에 접어든 만큼, 이전과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내놓는다. 필자 역시 그러기를 바라지만, 이는 '우리가 원하는 북한'이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은 아니라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 없다.
오히려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군사적 대응 의지가 피력되면 북한도 '강 대 강'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한반도 주민들의 인도적 위기도 커지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21일 한미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정상이 불필요하고도 과도한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고 인도적 협력 의지를 피력하면 '선순환'을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선택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8월로 예정된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는 데에 있다.
기실 군비증강과 코로나19에 따른 인도적 위기의 악순환은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음에도 미국의 국방비는 매년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한국은 이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하지만 천문학적인 국방비 증액과 민생 악화가 결코 동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정세를 보이던 미국은 오미크론 하위변이가 퍼지면서 재유행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도 진정세가 확연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하반기에는 한국과 미국 등에서 또다시 대유행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미동맹이 한미연합훈련 유예 선언 등 군사적 자제를 선택하는 것이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한미 주민들도 이롭게 한다는 점은 이러한 현실에 근거한 것이다.
대규모 훈련 자제는 대면 접촉을 줄여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을 준다. 군비증강 자제를 통해 절약한 자원은 민생 증진에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야말로 인도적 협력 제안에 대한 북한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모쪼록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군사적 갈등과 인도적 위기 사이의 악순환을 끊고 군사적 긴장 완화와 인도적 협력 간의 선순환을 도모하는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란다. "전쟁 억제력" 확보에 몰두해온 김정은 정권 역시 건국 이래 최악의 보건 위기를 거치면서 진짜 위협과 위험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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