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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공장 청소노동자의 죽음…산재 역학조사에는 참여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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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공장 청소노동자의 죽음…산재 역학조사에는 참여도 못했다

[암에 걸린 반도체‧디스플레이 청소노동자] ⑤ 반도체공장 청소노동자의 죽음

"존경하는 사람이었죠. 결혼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에요. 고민이 있을 때는 항상 물어도 보고. 아이들한테나 저한테나 그런 존재였는데 이렇게 가버리고 나니까 많이 힘들죠 지금."

지난 2월 18일, 김문정(가명, 53) 씨가 사망했다. 김 씨는 2014년 9월부터 4년 11개월 동안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클린룸(공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으로 반도체 제품이 만들어지는 곳)을 청소한 청소노동자였다.

김 씨는 19년 7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 후 2년 6개월을 버텼다. 항암치료만 50번을 넘게 받았다. 다행히 항암제가 잘 맞아서 당초 예상보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날벼락같이 찾아온 질병이었다. '건강염려증'이라 불릴만큼 매일 운동을 하고 냉동식품이나 탄산음료 같은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의무로 받는 건강검진뿐만 아니라 스스로 병원에 찾아가 검진을 받았다. 검진을 해도 별다른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췌장암을 진단 받기 4개월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대형 병원에서 다시 정밀검사를 받았고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근무하던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을 떠올렸다. 클린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압과 냄새, 알 수 없는 성분의 물질, 냄새가 질병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을 만났다. 김 씨 말고도 질병에 걸린 반도체 청소노동자들이 있었다. 반올림에 제보가 들어온 청소노동자만 14명이다. (관련 기사☞ 암에 걸린 반도체‧디스플레이 청소노동자)

<프레시안>은 4월 28일 삼성 반도체 청소노동자 고 김문정 씨의 남편 이진수(52,가명) 씨를 경기도 수원 자택에서 만났다. 이 씨는 아내의 죽음과 업무의 관련성 여부를 950일이 넘게 기다리고 있다. 

▲고 김문정 씨는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17라인 클린룸에서 2014년 9월부터 4년 11개월 동안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다 지난 2월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김 씨와 유족은 산재 신청을 했으나 죽음 이후에도 산재 판정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삼성

헬멧 쓰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알 수 없는 물질을 닦고, 털었다

김 씨는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17라인이 처음 설치(셋업)되던 시기부터 근무에 투입됐다. 생산설비가 있는 팹(FAB, fabrication facility)층과 하부층인 CSF(Clean Sub Fab), FSF(Facility Sub Fab)층을 돌아다니며 청소했다. 방진복, 마스크, 장갑이 기본으로 지급되었고 하부층에 들어갈 때는 헬멧, 고글이 추가로 지급됐다. 팹층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알 수 없는 성분의 물질들이 하부층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내가 일할 때 헬멧을 쓰고 일한다고 했어요. 하부층을 청소하고 있으면 위에서 볼트나 가루 같은 게 밑으로 떨어졌다고 했어요. 가끔은 약품이 담긴 통이 들어오는데 냄새도 나고, 그게 뭔지도 모르니까 무섭다고도 말했고요. 바닥에 떨어진 액체나 가루를 면포로 닦고 그걸 또 털었다고 했어요. 그걸 왜 터냐고 물어보니까 회사에서 털라고 했대요. 아내가 췌장암 진단 받고 나서 그게 문제였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었어요."

김 씨를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이 맞닥뜨리는 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삼성이 공정에 쓰이는 물질 자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오퍼레이터들은 들어갈 일이 거의 없는 하부층의 경우에는 위험성이 더 크다. 하부층에 있는 '스크러버'를 통해서 화학물질이 처리되고 배기관을 통해서 산, 염기, 가스 등 물질들이 옮겨지지만 상부층에 비해 관리는 부족하다.

"하부층에 들어가서 근무하는 게 무섭다는 말도 했었어요. 약품 통이 들어오고 냄새 같은 것도 막 나니까 다들 무서워했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서 그 층은 순환해서 근무하도록 했나 봐요. 다들 찝찝했겠죠. 무슨 약품인지도 모르겠고 알려주지도 않아서 다들 안 들어가려고 했다고요."

청소노동자들의 광범위한 근무 장소도 문제다. 고정된 자리에서 근무하는 오퍼레이터와 달리 청소노동자들은 공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소한다. 김 씨의 경우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6~9층, 1~3층 모두를 돌아다니며 청소했다. 전 공정을 돌아다니다 보니 공장 내 장비에서 나오는 다양한 전리방사선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 다양한 유해 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서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커지는 것이다. 반올림에 제보된 청소노동자의 질병은 유방암, 백혈병, 림프종 등 그동안 알려진 '반도체 직업병'이었다. 

알 수 없는 성분의 물질을 닦은 면포를 털어내는 것도 청소노동자의 업무였다. 보통은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면포다. 그러나 면포가 부족할 때는 털어서 세탁업체에 보내곤 했다. 김 씨는 산재 신청 당시 반올림에 보낸 자필 문서에서 청소 작업의 불안함을 토로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난 걸레를 털 때마다 약품이랑 먼지가 내 입으로 들어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었다. 제일 무섭고 두려웠던 곳은 슬러리라는 곳인데 가면 드럼통 안에 알 수 없는 약품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곳에서 일한 걸레는 버리라고는 했지만 면포가 모자랄 때는 거기서 닦은 면포도 털어서 묶어 내곤 했다."

▲알 수 없는 성분의 물질을 닦은 면포를 털어내는 것도 청소노동자의 업무였다. 보통은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면포다. 그러나 면포가 부족할 때는 털어서 세탁업체에 보내곤 했다. ⓒ반올림

12년 동안 전자산업 종사해온 노동자...첨단산업분야 노동자의 드러나지 않은 위험성

김 씨는 육아하던 시기를 제외하고 계속 일했다. 삼성 반도체공장 외에도 다양한 직장에서 종사했다. 특히 전자산업과 관련된 업종이 많았다. 인쇄회로기판(PCB)에서 5년 4개월, 모니터 압착 공정에서 1년 6개월을 종사했다. 모두 동네 근처에 있는 회사에 친구들과 함께 근무했다.

"여기 수원이나 화성이나 주위에 공장들이 많잖아요. 친구들 따라서 같이 다녔어요. 아무래도 대부분 최저임금이 많았고, 계약직이 대부분이니까 임금은 최저임금 인상될 때만 올랐죠."

전자산업과 같은 첨단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 질병의 경우 현대 의학 수준에서 질병과 근무 환경의 관계가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산재가 인정될 수 있다. 김 씨가 근무했던 PCB 공정의 경우에도 난소암에 걸린 삼성전자 노동자의 질병이 산재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김 씨의 산재 신청 대리를 맡은 반올림 조승규 노무사는 질병판정위원회에 제출한 재해경위서에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는 반도체, LCD 공장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외의 공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라며 "(김 씨가 근무했던) 전자산업은 반도체공장과 비슷한 위험성을 갖고 있으므로 재해자는 전자산업 근무기간 12년 동안 유사한 상황에 노출되었다고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산재 신청 후 2년 7개월...노동자는 죽었지만 역학조사는 시작도 안 했다.

"아내가 건강검진을 정말 주기적으로 많이 했거든요. 만약에 원래 아픈 거였다면 진작에 나왔어야죠. 집하고 회사밖에 안 다녔던 사람이고, 가족력도 없잖아요. 삼성 반도체 공장 직업병 문제가 있었으니까 이건 일하다 걸린 질병이라고 생각했어요."

췌장암 진단을 받고 두 달 후, 김 씨는 반올림의 도움을 받아 유방암 등 암에 걸린 다른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김 씨에게 발병한 췌장암의 경우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 위원회'의 지원보상 대상 질병 중 하나다.

정부는 2018년 8월부터 '추정의 원칙'을 도입해 반도체 공장의 오퍼레이터와 엔지니어 질병 산재 판정 과정에서 업무 관련성이 인정된 질병에 대해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동일·유사 공정 종사 여부만 판단한 뒤 빠르게 산재 여부를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는 산재에서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김 씨의 산재 판정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2022년 5월 기준 산재 신청 후 950일을 넘겼다. 근로복지공단 화성지사는 김 씨의 산재 신청 이후 9개월이 지난 2020년 6월 중순에 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역학조사 운영지침에 따르면 6개월 내 역학조사 결과를 심의와 의결을 해야 하지만 김 씨의 경우 의뢰 이후 1년 11개월이 지난 상황이다. 역학조사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재해자 면담, 현장조사는 진행조차 안 됐다. 김 씨는 결국 역학조사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관계자는 유족인 이 씨와의 통화에서 "재해자(김 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라며 "역학조사 의뢰가 들어온 순서대로 진행하다 보니 역학조사가 늦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역학조사가 시작조차 되지 않는 동안 김 씨가 근무하던 작업환경도 변했다. 이 씨는 "이제 청소노동자가 면포를 터는 작업은 사라졌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생산라인이 교체되는 반도체 공장 특성상 김 씨가 근무하던 시기 공정에 사용하던 물질도 바뀌었을 확률이 높다.

노동자가 사망할 때까지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통계 등으로 질병과 업무 간 관련성이 인정되면, 산재를 인정하는 '추정의 원칙'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이유다. 유방암에 걸린 청소노동자 산재를 대리했던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 김민호 노무사는 <프레시안>과의 지난 인터뷰에서 "일정 기간 석면에 노출되었거나, 탄광 노동자가 폐병에 걸렸다면 역학조사 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라며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청소노동자들도 통계를 만들어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에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프레시안

"삼성은 그렇게 보호해 주면서 왜 일하는 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하나"

김 씨와 남편 이 씨는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접고 살았다. 다른 청소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기대감은 더 사라졌다. 그러나 이 씨가 아내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비급여 항목으로 나가는 진료비에 부담은 더욱 커졌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 위원회에 신청해 받은 지원금도 병원비와 생활비로 소진한 지 오래다.

"암 치료에 비급여 항목도 너무 많고, 투병 기간이 길어지니까 보험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또 간병 때문에 일을 쉬는 동안 너무 돈도 많이 들어가니까 산재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일하다 걸린 질병이잖아요. 기업과 국가가 적어도 기초 생활만큼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반도체공장 청소노동자들의 산재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보의 부족으로 애초에 산재를 신청하는 이도 적다. 산재를 신청한 청소노동자들은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없다며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반올림과 함께 산재를 신청한 5명의 청소노동자 중 오직 1명만이 산재를 승인받았다.

이 씨는 국가가 삼성을 생각해주는 만큼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도 평등하게 대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1일 국회는 '반도체특별법'이라고 불리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다. 반도체 산업은 국가핵심기술이 되고, 기업은 합법적으로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첨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건강과 질병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공간은 더 작아졌다.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보호를 해주려는거고. 그렇게 보호를 정부가 나서서 해줄 거면 거기서 일하는 분들도 보장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국민이잖아요. 일하다 병에 걸리면 치료해주고, 기초 생활을 해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씨가 사망하고 치러진 장례식장에는 같이 근무했던 청소노동자 동료들도 빈소를 찾아왔다. 이 씨는 아내가 워낙 열심히 일한 덕에 인간관계가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아내의 발병 이후 수면제와 술에 기대며 잠을 자고 있다. 그럼에도 아내의 죽음을 알리지 않으면 다른 청소노동자들도 일하다 걸린 질병을 인정받기 까지 길고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안 하면 다른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때 또 2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잖아요. 한 번에 바뀌지 않고,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계속 가보고 싶어요."

※ 반올림과 프레시안은 디스플레이반도체 공정에서 일한 청소노동자들의 직업성 질병 피해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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