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전쟁 초기에는 여러 차례 협상을 통해 휴전이나 종전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와중에 나온 미국의 행보는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낸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제재의 목표가 "러시아의 약화"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 목표는 여러 가지 우려를 수반하고 있다.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남부 장악 시도 및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 의지와 맞물려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우크라이나의 희생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석유·가스 가격 폭등과 식량 수급의 불안정 가중으로 지구촌 곳곳의 민생고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확전의 위험도 커질 수 있다. 나토 동진을 목도해온 러시아는 미국 및 나토의 의도가 러시아를 약화·봉쇄하는 데 있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했다. 이것이 침공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런데 미국이 러시아의 약화를 공식적인 목표로 제시하면서 러시아는 '우리 생각이 옳았다'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미국 및 나토와 벌이는 '대리전쟁터'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을 향해 대리전을 중단하지 않으면, 핵 전쟁과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 약화 시도를 확전 위협으로 응수하고 있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미국 내에서 고립주의가 다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년 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을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 주류의 "세계경찰론"에 대한 반작용의 산물이었다. 이를 목도한 미국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대선 및 정권 초기에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보다는 미국인, 특히 중산층의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국제질서를 성급하게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경쟁"으로 규정하고 말았다. 이것이 자충수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 안팎으로 급락한 상황이고 11월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과 미국인들의 민생고 사이에 '엇박자'가 커질수록 '트럼프 현상'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들이 타당성을 갖는다면, 미국도 조속한 휴전이나 종전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무기 지원과 러시아를 겨냥한 강력한 경제제재가 미국이 공언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러시아의 약화"를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무기 지원과 경제제재를 전쟁 종식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라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만큼, 이를 기반으로 삼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을 중재하고 타결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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