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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는 '부동산 원귀(寃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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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헬조선'에는 '부동산 원귀(寃鬼)'가 산다

[함께 사는 길] '귀신 들린 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시사하는 것

"난 퇴마를 하면 원귀 기억 일부가 들어와. 죽는 순간까지 놓지 못한 원망, 집착 같은 게…."

2021년 4월 16부작으로 방송된 KBS 수목드라마 <대박부동산>은 '해 질 때부터 해뜨기 전까지 영업'을 내세우는 퇴마 전문 공인중개사가 등장한다. 이곳 사장 홍지아(장나라)는 지박령, 부유령 때문에 팔리지 않거나 임대가 안 되는 건물에서 원귀 퇴마 후 제값을 받게 하는, 그래서 이쪽 판에서 이름난 퇴마사다. 그의 집안은 조선시대부터 이 일을 해왔다. 귀신을 보고 이를 물리칠 수 있는 영력은 오로지 딸에게만 이어진다. 홍지아의 엄마는 구천을 헤매는 원귀 상태를 "한겨울 눈보라 칠 때 속옷만 입고 밖에 있는 것과 똑같다."라고 표현한다. 또 "퇴마라는 건 원혼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라며 자신들이 퇴마하는 이유를 말하곤 했다.

홍지아의 퇴마법은 독특하다. 보통 영통한 무당이 굿을 해서 원귀를 달래거나 쫓아내는데, 홍지아는 엄마에게서 배운 귀침을 이용해 신속, 정확하게 해결한다. 회화나무 열매로 노랗게 물들인 괴황지에 붉은 경면주사로 원귀의 이름을 적어 귀침에 넣고 정갈한 순백의 소금으로 사방에 결계를 쳐 원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이어 원귀 소환 향을 피우면 준비가 끝난다. 영매도 있어야 한다. 퇴마사가 영매 노릇도 할 순 있지만, 퇴마 후 영력이 흐트러져 정신착란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별도의 영매를 꼭 써야 하는데, 빙의 빨 좋은 영매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한 번 퇴마에 100만 원 주는 고액 아르바이트이지만 간단한 영매 시험도 통과하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일단 원귀가 영매에게 빙의하면 귀침을 영매 심장에 찌르는데, 이때 원귀의 한 맺힌 기억 일부와 생전 습성이 퇴마사에게 들어온다. 또 퇴마 때마다 심한 한기가 올라와 저체온증으로 죽을 고비가 여러 번이었다.

<대박부동산> 남자주인공 오인범(정용화)은 사기꾼이다. 그것도 스탠퍼드 대학 심령학 박사를 내세워 가짜 귀신 퇴치기를 수천만 원에 파는 '귀신 사기꾼'이다. 그는 내일을 준비할 생각이 없다. 사기 친 돈으로 고급호텔 스위트룸과 스포츠카를 빌려 흥청망청 쓰고 나면 또 다른 사기 대상을 찾으면 그뿐이다. 이번에 그는 건축업자 도산으로 두 명이 죽은 신축 오피스텔을 노리고 있다. 홀로그램 등을 이용해 가짜 귀신을 만들어서 준비 중인데, 여기에 진짜 퇴마사 홍지아가 나타났다. 퇴마 과정에서 오인범은 자신의 엄청난 빙의 능력을 알게 된다. 다른 영매와 달리 원귀의 기억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도. 또 홍지아의 심각한 저체온증을 막아주는 능력도 있다. 이렇게 진짜 퇴마사와 귀신 사기꾼이 한 팀이 되고, 원귀의 기억이 들어온 오인범은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자 한다. 원귀의 한을 애써 외면했었던 홍지아는 좌충우돌 초짜 영매 오인범과 함께 망자의 한까지 해결해 나간다.

▲ KBS 드라마 <대박부동산>은 공인중개사인 퇴마사가 귀신이 들려 흉가가 된 부동산에서 원귀나 지박령을 퇴치하고 이들의 기구한 사연을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4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16부작으로 방영됐다. ⓒKBS

귀신에게 투영된 인간사

두 사람은 환상의 궁합을 보이는 듯했다. 어릴 적 악연이 드러나기 전까지. 20년 전 오인범 가족은 판자촌에 살았다. 악질 재개발업자 도학성(안강길)은 이곳에 아파트를 짓고자 "우리도 사람이야"라는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권력과 유착해 온갖 폭력을 저지른다. 그래도 속도가 나지 않자 도학성은 오인범 삼촌에게 재개발 후 아파트를 준다고 꼬드겨 판자촌에 불을 지르게 했다. 이 때문에 7명이 죽었고, 죽은 이들의 원한은 한데 뭉쳐서 달걀귀가 돼 오인범에게 빙의한다. 빙의된 오인범은 홍지아 엄마에게 오게 되는데, 눈, 코, 입 없는 달걀귀는 그 한이 다 풀릴 때까지 사람을 죽이는 '악귀 중 악귀'였다. 달걀귀는 빙의된 영매까지 죽이는 방법밖에 없었고, 홍지아 엄마는 그 과정에서 달걀귀가 빙의돼 죽게 된다. 그렇게 엄마는 원귀로 대박부동산을 떠나지 못하고, 홍지아는 그런 엄마를 하늘로 보내려 하지만 영빨 좋은 퇴마사였던 탓에 웬만한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홍지아는 모든 불행의 시작을 오인범으로 생각하고 그를 원망한다. 그러다 오인범 삼촌의 기억을 통해 모든 일의 원흉이 도학성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때 도학성이 지은 건물에서 화재로 사람들이 죽게 되고, 이 때문에 달걀귀가 또 오인범에게 빙의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홍지아는 달걀귀만 소멸시키고 오인범을 구해낼 수 있을까? 또 홍지아는 엄마를 천도시킬 수 있을까?

드라마 <대박부동산>은 최고 시청률 6.9%를 기록했다. 0%대 드라마가 즐비하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이고, 시즌 2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박부동산>처럼 퇴마 또는 귀신 한풀이를 다룬 작품은 공포부터 코믹, 에로물까지 다양하다. <대박부동산>은 코믹 호러 장르지만, 코믹 요소가 더 강조됐다. 원혼과 부동산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2018년 일본 카타기리 켄지 감독의 <마음세탁소(Room Laundering)>가 조금 유사하다고 할까. <마음세탁소>에서 귀신을 볼 수 있는 여주인공 미코는 '주택 세탁'을 한다. 주택 세탁이란 살인 사건, 자살 등이 일어난 집에서 한동안 사는 일이다. 그래야 흉흉한 소문을 지우고 집을 제값에 팔 수 있으니. <대박부동산>, <마음세탁소>는 근본적으로 부동산 관련 인간의 욕망과 한을 귀신에게 투영한다. 귀신 이야기지만, 사실은 인간사다. 그리고 대부분 귀신보다 더 악독한 인간이 등장하는데, 드라마 <대박부동산>에서 돈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도학성은 '살아 있는 달걀귀'로 통한다. 현실에선 귀신이 아니라 돈독 오른, 그것도 권력을 등에 업은 인간이 공포를 만들어낸다고 할까.

원귀 또는 귀신은 공포물의 대명사였다. 1990년대까지 한국 공포영화 또는 드라마에선 언제나 '여귀(女鬼)', 즉 여자 귀신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초 공포영화로 꼽히는 1924년 김영환 감독의 <장화홍련전>, 공포영화 장르를 한국 영화사에 정착시킨 1967년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 그리고 한국 고전 공포영화의 또 다른 걸작으로 평가받는 1986년 작 <여곡성> 등은 한 번쯤 들어봤던 영화들이다. 독립영화 감독이자 영화 연구가인 오세섭은 <공포영화, 한국 사회의 거울>(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에서 이전 시대 한국 공포영화의 특징을 "죽는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모두 여자"라고 지적했다. 사건의 원인은 남성이 만들지만, 이들은 징벌받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 때문에 오세섭은 "남성이 잘못을 빌었을 때 여성(원귀)이 용서해 준다는 설정은 남성 중심적 사고이자 일종의 판타지"라며 "한국 공포영화는 기형적인 인과응보를 갖게 됐다"라고 꼬집었다.

지대불로소득이 만든 원귀

연세대 국문과 교수 백문임은 <월하의 여곡성>(책세상 펴냄)에서 한국 문화사에서 귀신도 위계가 있음을 말한다. 그는 "원시종교에서부터 귀신은 숭배 대상이었지만, 인귀(人鬼)는 선한 귀신인 조상신과 악한 귀신인 사귀(邪鬼)로 구분되었고 그중에서도 여자 귀신은 가장 사악한 귀신으로 간주하였다."라고 분석했다. 귀신 위계화는 성리학 도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성리학 관점에서 특히 혼인하지 못한 '처녀 귀신'은 귀신 위계의 최하위였다. 백문임은 "이러한 관념은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 질서의 변화에 따라 변주되면서도 반복 재생산했고, 공포영화와 같은 하위문화는 그것이 노골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장이 되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세섭은 "공포영화의 특성은 우리 사회와 닮았다."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처음 정착하던 때는 국가 주도 개발독재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던 시기였고, 박기형 감독의 1998년 <여고괴담>으로 상징하는 1990년대 말 2차 공포영화 시대는 IMF 체제의 사회 변화를 반영했다는 것이 백문임의 평가였다.

2020년대 현재는 어떨까? 드라마 <대박부동산>에 등장하는 원귀들은 우리 시대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영끌, 빚투,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신축 오피스텔에 투기했던 청년 원귀들은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 신화'의 민낯을 보여준다. 만삭의 딸 내외와 같이 살려고 대출 껴서 집을 샀다가 사기당한 할머니는 집 없는 서민의 고통을 말해준다. '옥상빵'이라는 브랜드로 지역 상권을 살렸지만, 고스란히 건물주에게 빼앗긴 젊은 여성 원귀는 청년세대 불안을 대변한다. 아파트 단지 내 분양동, 임대동을 경계 짓는 철조망 때문에 죽은 아이는 어른의 돈 욕심에 희생당하는 미래 세대를 대변한다. 이전 한국 공포영화와 달리 드라마 <대박부동산>엔 남녀노소 원귀가 등장한다. 그러나 원귀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가부장제에서 억압받는 여성을 원귀화 했던 앞선 시대와 연결돼 있다.

시민운동가 하승수는 <배를 돌려라 : 대한민국 대전환>(한티재 펴냄)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자본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지대추구경제'가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표현이다"라고 밝혔다. 지대추구경제는 지대불로소득이 넘쳐난다는 말이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뛰어넘는 이익, 특권·특혜를 통해 얻은 이익"이 바로 지대불로소득이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50억 원 퇴직금 등은 대표적인 지대불로소득에 해당한다. 하승수는 "(지대불로소득을) 누리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소수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기득권층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경쟁과 효율을 강요한다. 정말 괴물 같은 시스템이다."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지대불로소득의 원천이 바로 부동산이다. 드라마 <대박부동산>에서 등장한 원귀는 결국 이 지대불로소득이 만들어 낸 결과로 봐야 한다.

사실 '부동산 전문 퇴마사'라는 설정 자체가 우리 시대 또 다른 단면을 보게 한다. 원귀(寃鬼)는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악령(惡靈)을 뜻하는데, 드라마에서 정작 사악한 악령은 몇 되지 않는다. 그냥 대부분 억울함 많은 원혼(寃魂)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소이기에 강제로라도 퇴마해야 하는 존재다.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야생동물과 같은 자연도 이분법적 원귀화 시켜 퇴마 대상으로 만드는 세상이다. 전북대 교수 강준만은 지금의 현실을 "부동산 약탈국가"라고 표현한다. 약탈국가 체제에서 공정과 정의, 환경과 생명의 가치는 빛을 잃어간다. 억울함은 인귀만의 것이 아니다. 부동산 약탈국가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인간 언어를 쓸 수 없는 자연의 생명들이다. 정치를 전환해야 한다. 하승수가 지적하듯이 그러기 위해선 지대불로소득을 없앨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 미래 세대, 비인간 존재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하나뿐인 지구에서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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