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를 앞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극우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와의 격차를 가까스로 벌리고 있다.
19일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자료를 보면 18일(현지시간) 기준 중도를 표방하는 마크롱 대통령은 르펜과의 지지율 격차를 9%포인트로 벌렸다. 1차 투표에서 득표율 27.85%로 2위 르펜(23.15%)과 불과 4.7%포인트 차로 결선에 진출한 데다 1차 투표 직후인 11일 여론조사에서 결선 투표시 두 후보의 지지율 결차가 5%포인트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순항 중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르펜에 득표율 두 배 차로 승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딘 상승세다.
마크롱, 멜랑숑 표를 잡아라 vs 르펜, 집토끼 다지기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극좌 성향으로 분류되는 장 뤽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a France Insoumise) 후보가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1차 투표에서 21.95%를 득표해 르펜과 불과 1.2%포인트 차로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그를 지지한 이들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멜랑숑 지지자의 표를 흡수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것은 마크롱으로 보인다. 마크롱은 지난 주초 1차 투표에서 멜랑숑이 우세했던 지역인 동부 스트라스부르와 뮐루즈를 방문한 데 이어 16일엔 마르세유 방문 유세를 펼치며 화석연료에서 탈피하겠다는 생태 공약을 강조해 좌파 지지자 표를 흡수하려 애썼다.
멜랑숑이 1차 투표 뒤 그의 지지자들에게 르펜에게 표를 줘선 안 된다고 거듭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17일 설문 조사 결과 굴복하지않는프랑스 당원의 33%만이 마크롱을 지지하겠다고 답했고 나머지 66%는 기권하겠다고 답했다. 16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소프라 스테리아 조사 결과에서도 멜랑숑 지지자의 33%만이 마크롱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나머지 16%는 르펜에게 투표하겠다고 했고 50%는 답변을 거부했다.
마크롱은 멜랑숑 지지자 공략 뿐 아니라 1차 투표 다음 날 바로 르펜의 텃밭인 침체된 광산 지대 오드프랑스 지역 유세에 나서는 등 외연 넓히기에 힘쓰고 있다. 피에르 에마뉘엘 기고 파리-에스뜨 크레테유대 역사 강사는 <프랑스24>에 마크롱이 르펜 지지 지역으로 달려간 것은 자신이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줘 국민에 귀기울이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르펜은 남부 아비뇽과 같은 전통적 극우 지지 지역에 집중하며 집토끼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월 인종차별 발언으로 벌금형까지 받으며 르펜을 온건하게 보이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는 에릭 제무르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얻은 7%의 표를 더하면 르펜이 확보하고 있는 극우 지지표는 30% 가량으로 예상된다.
인구 9% 무슬림표도 변수…르펜, 반이슬람 공약 축소 시도
프랑스 인구의 9% 이르는 500만 무슬림표의 향방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주말 동안 마크롱과 르펜의 지지율 격차가 2%포인트나 벌어진 것이 르펜이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직을 역임하며 13만7000유로에 달하는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데 더해 르펜의 히잡 착용 금지 발언이 재조명 받은 탓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무슬림 유권자의 69%가 1차 투표 때 멜랑숑을 지지했다.
무슬림 유권자가 변수로 떠오르자 반이슬람·반이민 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르펜까지 자신의 공약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르펜은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용도로 착용하는 의복의 한 종류인 히잡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할 경우 벌금을 물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식재료를 고르고 음식을 조리하는 방식인 코셔 및 이슬람교의 율법에 따라 식재료를 가공한 할랄 방식의 도축 금지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2차 투표가 다가오며 르펜은 "할랄과 코셔 정육점을 없애지 않겠다", "수입을 허용하겠다" 등 보다 완화적인 발언을 하고 있고, 논란이 되고 있는 히잡 착용 금지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슬람 정책 전체에서 "시급한 요소"가 아니며 작은 부분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마크롱은 히잡 착용을 금지하겠다는 르펜의 공약을 집중 공략 중이다. 그는 지난주 스트라스부르 유세 때 히잡을 쓴 여성에게 "히잡이 선택이냐, 의무냐"고 물었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여성이 히잡은 "완전히 내 선택이다"라고 답하자 마크롱은 "이것이 헛소리(르펜의 히잡 착용 금지 공약)에 대한 최선의 대답"이라고 말했다. 서북부 르아브르 유세 때는 "세계에서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금지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히잡을 금지한) 최초의 국가가 되고 싶은가"라며 보다 직접적으로 르펜을 공격했다. 다만 마크롱 또한 재임 기간 동안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는다는 구실로 일부 이슬람 사원을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어 무슬림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고 있지는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년층 기권율 40%…대학생들 "마크롱도 르펜도 싫다" 시위
Ifop에 따르면 결선 투표에서 투표 의향은 74.5%에 불과하다. 낮은 투표율의 중심에는 청년층이 있다. 입소스가 지난 6~9일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1차 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25~34살 유권자는 46%, 18~24살 유권자는 42%에 달했다. 지난 14일에는 마크롱과 르펜 모두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파리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청년층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마크롱에게 더 절실할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차 투표에서 18~34살 청년층이 가장 많이 지지한 후보는 멜랑숑이고 그 다음은 르펜이다. 마크롱은 3위에 그쳤다. <가디언>은 "파리 학생 시위는 주류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극우에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는 세계대전에 대한 집단 기억에 영향을 받기에는 너무 어린 이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르펜 당선 땐 EU의 러시아 제재에 지장 전망
르펜 당선 때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항하는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균열이 일 수 있다. 르펜은 당장 유럽연합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탈퇴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도 내부에서 프랑스의 역할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르펜은 지난 주 유럽연합이 논의 중인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 금수 조치에 반대한다고 발언했으며 직접 무기 지원에도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18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 러시아와의 협력을 증진시켜 러시아와 중국의 동맹을 막겠다는 발언도 했다. 르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대해서는 국민투표에 의한 것이며 군사적 침공이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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