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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잃은 가장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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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잃은 가장 중요한 것

[기고] 전쟁 '선전전'의 승자는 미국과 서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1991년 소련 해체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2022년 초반부터 위기의 조짐이 역력했지만 '설마 전쟁까지야'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014년 크림반도 합병으로 강제 봉합된 제1차 우크라이나 사태를 돌이켜보면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고르바초프는 “지금 세계는 새로운 냉전의 위험에 놓여 있으며, 신냉전의 새로운 장벽은 바로 우크라이나에 세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신냉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음을 알렸다.

러시아는 이 전쟁으로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국제사회의 비난,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제재, 전쟁을 둘러싼 국론 분열...하지만 러시아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잃었다. 그간 우크라이나 위기를 둘러싼 러시아의 문제제기에는 경청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다. 침공 직전 푸틴은 한밤중 무려 1시간에 걸친 대국민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특수군사작전'(러시아에서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지 못한다)의 정당성에 대해 역설했다. 핵심은 1) 미국과 나토의 팽창주의, 2) 러-우크라이나 관계의 특수성, 3)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동포 보호가 그것이다.

1)의 경우, 1949년 설립된 나토가 소련을 겨냥한 집단안보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카운터파트였던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소련 해체와 동시에 사라졌다.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고르바초프에게 '나토는 독일에서 1인치도 동으로 이동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 유명한 '1인치' 발언이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0년 푸틴은 빌 클린턴에게 나토의 러시아 포함 여부를 직접 타진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소였다. 나토는 5차례에 걸쳐 동유럽 국가(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와 구소련구성공화국(발트3국)까지 확대되었고,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나토 사이에 남은 마지막 완충지대다. 우크라이나까지 나토국이 되면, 푸틴 표현 그대로 '나토가 러시아의 목구멍에 칼을 들이미는 형국'이 된다.

나토의 팽창주의에 대한 비판은 러시아만의 것이 아니었다. 조지 케넌, 존 미어샤이머 등 미국의 대표적 현실주의자도 그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유럽도 냉전 종식 후 유럽안보질서가 미국 중심의 나토로 재구축되는 것, 나토 팽창이 함축하는 외교의 군사화, 군사의 외교화 문제에 주목해왔다. 전쟁 전 마크롱이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러시아를 설득하려 애썼던 것, 독일이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 미국과 다른 스탠스를 취했던 것은 단지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비판의 최전선에 섰던 러시아가 최소한의 정당성마저 상실함으로써 나토 팽창, 군비 확대 등을 둘러싼 성찰도 일순 정지되었다. 3차대전 방지를 위해 미국와 유럽국가들은 우크라이나 국민 손에 무기를 대신 들려주며 결전을 독려한다. 독일은 전후(戰後) 지켜온 원칙을 전격 폐기하고 전쟁국 무기 지원과 대규모 국방비 편성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유럽 좌파의 목소리에는 더이상 힘이 실리지 않는다. 일본의 재무장을 목도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2)의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고대사를 공유하는 같은 동슬라브 민족으로, 수 세기 동안 제정 러시아의 '같은 신민'으로, 같은 '소비에트 인민'으로 살았다. 물론 이 제국의 신민들, 소비에트 인민들이 평등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이 공유역사는 상처와 트라우마의 기억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공존의 세월로 양국은 미우나 고우나 서로가 서로를 품은 존재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크림반도. 988년 고대 러시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일 때 러시아 공후 블라디미르가 최초의 세례를 받은 곳이 바로 크림이다. 이후 크림은 제정러시아 시기부터 200여 년 간 러시아 영토였고, 우크라이나 땅이 된 것은 1954년 흐루시초프가 양국 간 우애를 기념해 선물한 결과다. 어차피 소련으로 묶여 있으니 어느 나라 땅이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2014년 합병 당시, 크림 인구의 60%가 러시아계였고, 97%는 러시아어를 상용어로 사용했으며, 당시 러시아로의 귀속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크림인의 97%가 찬성표를 던졌다. 러시아의 강압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최소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크림인의) '자결'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가 처음도 아니다. 1991년 소련 해체 무렵 크림인의 93%가 러시아로의 재귀속을 원했다. 이번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된 돈바스의 두 개의 친러 분리공화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두 공화국이 분리독립을 선언할 당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러시아계 비율은 약 40%, 러시아어 사용률은 각각 93%, 89%였다. 이는 3)의 문제와 직결된다.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이 무너진 후 새로 등장한 친서구 정부가 한 최초의 조치는 러시아어의 공용어 지위 박탈이었다. 이 조치가 크림과 돈바스 국민에게 어떤 공포였을지는 바로 이어진 크림의 러시아 귀속 결정과 돈바스 공화국의 분리 선언이 잘 보여준다. 크림과 돈바스가 아니더라도,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의 약 20%가 러시아계였다. 그들도 우크라이나 국민이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기 안의 러시아'를 품었어야 했다. 한국만큼이나 균형외교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련으로부터 독립 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러, 친서구로의 극단적 스윙 외교를 펼쳤고, 양쪽 다 무능하고 부패했다.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이 살해의 위협을 무릅쓰고 키이우에 남아 항전을 주도하고 있지만, 유능한 지도자라면 전쟁부터 막았어야 했다. '정치는 도덕적인가'라는 니버의 질문은 정치의 가치가 명분과 결기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해준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계 국민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내전을 종식시킨 2015년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 분리공화국의 자치권 보장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내전 당시 폭력사태의 주범 중 하나였던 친나치 성향의 아조프 부대가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정식 편입되었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돈바스 포격이 잇달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푸틴의 '탈나치화' 발언이나, '돈바스 내 동포 보호'가 뜬금없는 주장인 것은 아니다. 나토는 내전국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스크 협정에도 불구하고 돈바스를 공격해 분쟁을 끝장내고자 한 가장 큰 이유다. 자국 안보를 위한 나토 가입의 염원이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이 전쟁의 끝이 무엇이든, 현재 세계인의 관심에서 완전히 기각된 우크라이나 내 수많은 러시아계 국민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하지만 전쟁 앞에서 이 모든 정황, 모든 우려는 의미를 잃었다. 푸틴 주장대로 형제국가니 더더욱 그렇다. 더구나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대, 적어도 선전전의 승자는 미국과 서방인 듯하다. 한국 언론의 경우 압도적으로 그렇다. 러시아의 침공과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을 겹쳐 떠올리는 순간, 우크라이나 난민을 향한 유럽의 압도적 환대와 바로 몇 년 전 해변에서 애처로운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의 세살배기 쿠르디를 겹쳐 떠올리는 순간, '그래서 러시아가 잘했다는 말이냐'는 날선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현재 러시아 내 반전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결코 주류라 할 수 없을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고통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도, 제재로 인한 경제적 곤궁도 아니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먼저 솟구쳐오르는 '거대한 수치'와 마주하는 일이다. 모스크바를 활활 태워 나폴레옹의 세계정복을 좌절시키고, 무려 900일의 레닌그라드 봉쇄를 견디며 히틀러의 진격에 종지부를 찍었던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명예와 자존은 간단치 않은 현대사의 굴곡 속에 러시아인을 지탱해온 힘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푸틴이 잔인하게 날려버린 가장 소중한 것이 그것이다.

▲로이드 오스틴(왼쪽) 미국 국방장관과 옌스 스톨텐베르그(오른쪽)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사무총장 ⓒ나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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