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제주 4.3 항쟁, 4.16 세월호 참사, 4.19 혁명일이 있는 달이다. 가수 양희은은 자신의 노래 <4월>에서, 4월을 꽃잎은 날고 봄비가 내리지만, 내 몸은 녹아내리는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4월은 국가의 폭력과 책무성 부재, 독재와 같은 단어들이,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인권과 공공성, 민주주의의 교훈이 꽃비와 함께 머리와 가슴에 내려앉는 달이다.
하지만 제주 4.3 항쟁이 발생한 지 32년 후 국가 권력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4.19 혁명을 통해서 독재 정권을 몰아낸 이듬 해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은 다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군부 독재를 공고히 하였다.
2016년, 4.16 세월호 참사 후, 한 환경운동가는 "1995년도 씨프린스로부터 교훈을 제대로 못 얻어서 2007년도에 이 사고(태안 기름 유출)가 난 것이고, 그 때의 우리가 제대로 각성을 못해서 세월호가 터진 거예요"라고 이야기했다.
역사 속에서 아픔과 교훈은 반복되지만 그 교훈이 더 나은 세상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보건의료도 예외는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를 들여다보자.
정부는 메르스라는 아픔을 겪고 나서 그 교훈에 기반하여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수립하고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보건의료 확충방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고통의 와중에서 우리는 메르스 때와 똑같이 의료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든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 동안의 교훈을 제도에 반영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10%의 공공병상을 가지고 부족한 공공보건의료인력들이 전체 확진자의 80%를 도맡았는데도 공공병원의 양적 확충은 여전히 불명확하고 인력 확충에 대한 논의는 의사단체의 저항 이후 아예 실종되었다.
정부가 2018년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매년 굵직굵직한 공공보건의료정책을 발표하였으니 이 정도 되면 '문서 정치'의 극단을 보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메르스 유행 당시 제기되었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역시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반복적으로 대두되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사적 성격을 다룬 어느 책에서는 "이 땅에 근대 자본주의가 성립된 이후, 의료는 한 번도 상품이 아닌 적이 없었다. (중략) 한국 의료가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를 충실하게 밟아왔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면서 병원과 기술, 자본집약적인 생산방식을 특성으로 하는 한국의 의료는 '상품화'의 동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하여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과 '한국판 뉴딜 2.0'에서는 디지털 기반 스마트 병원 확충, 원격의료 확충을 통한 비대면 산업 성장, 의료 데이터 수집·활용 확대, AI를 활용한 의료영상 판독 및 정밀의료 활성화, 웨어러블 기기 보급을 통한 만성질환 관리를 보건의료의 주요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건의료는 한국판 뉴딜의 주요 축 중의 하나인 디지털 뉴딜의 핵심 영역이 되었고 이제 보건의료는 사회구성원들의 생명, 건강, 안전, 삶의 질을 보장하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경제성장 및 자본축적전략의 중요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그 어디에서도 의료의 공공성 강화와 공공보건의료 확충,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감염병 대응체계는 찾아볼 수 없다.
다시 4월의 아픔을 들여다 보자. 그 본질은 국가권력이 보장해야 할 인권, 공공성, 민주주의를 국가권력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훼손한 것이다. 왜 아픔으로부터 얻은 교훈이 더 나은 세상을 보장하지 못하는가? 한 줌의 권력자들이 그 교훈을 외면하고 짓밟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에 기대지 말자. 인권, 공공성, 민주주의는 사회공동체가 보편적으로 지향하고 목적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들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사회권력이 확보하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다.
4월의 아픔과 교훈이 더 나은 공동체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가 모두가 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새로 출범할 정부가 인권, 공공성,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참여와 힘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정부와 기업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지, 즉 시민사회의 권력의지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저절로 더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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