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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법이 되려면: 국가보훈기본법과 국민은 어떤 관계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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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법이 되려면: 국가보훈기본법과 국민은 어떤 관계에 있나

[보훈문화의 표층과 심층]

“한국의 역사에서 보훈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그것이 파생시키는 의미들의 층위는 다양하고 스펙트럼도 넓다. 전 국민을 하나의 기준에 따라 획일적으로 ‘동화’시키려는 행위는 도리어 충돌의 가능성을 키운다. 통합을 전 국민의 애국주의적 일치나 동화로 이해하려는 순간 보훈의 이념과 이름으로 서로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충돌의 가능성을 사전에 해소해야 한다.”(이찬수, “보훈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과제”, <보훈학개론>, 모시는사람들, 29)

국민의 협조라는 애매한 말

국가보훈기본법(이하 기본법)에서는 ‘보훈’을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이바지”하는 행위(제1조). 그러면서 보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이고(제5조), 국민은 그에 적극 협조해야 할 책무를 지니며(제6조), 희생·공헌자와 유가족 등 관계자는 국민의 귀감이 되도록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제7조)고 규정한다. ‘책무’(責務,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국가와 국민의 의무를 강조한다.

그런데 보훈이 국가의 의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협조 대상이기도 하다는 규정에 대해서는 좀 더 해설이 필요하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국가가 보답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국가가 국민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보훈에 국민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국민이 ‘협조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는 문장은 어색하다. ‘협조’는 자율적 행위인데 반해 ‘책무’는 강제 규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일종의 ‘강제적 협조’는 형용모순이다. 이 어색한 조합에 대한 좀 더 설득력 있는 해명과 논리가 필요하다.

협조하면 어떤 결과로 나타나나

가령 노동, 납세, 국방, 교육의 의무 등 그동안 알려져 온 국민의 의무는, 그에 따르면 어떤 식으로는 대가가 돌아오거나 비교적 가시적인 효과로 나타난다. 노동을 하면 보수가 따르고, 세금을 내야 국가가 운영될 뿐더러 납세자에게 복지 혜택으로 돌아오며, 병역을 이행해야 국가가 혹시 모를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해지고, 교육을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성숙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 이런 사실과 원리를 국민이 직감적으로 안다. 최근 강조되고 있는 환경보전의 의무도 환경파괴로 인한 막대한 폐해를 대다수 국민이 실감하며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국가의 보훈 정책에 국민이 적극 협조하면, 국민에게는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고,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국민은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 것일까. 그 혜택이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과정은 워낙 길고 효과도 포괄적이어서 어쩐지 직감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어떤 이가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심각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그에게 무슨 불이익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극단적 가정이기는 해도, 일제강점기에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많았지만, 운동과 무관하게 살던 대로 그냥 살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이는 지금도 특별한 협조 없이 그냥 살던 대로 살 가능성이 크다.

국가의 보훈정책에 대한 협조가 국민의 ‘책·무’라고 법률로 규정하려면, 그 책무를 다 했을 때 어떤 효과로 돌아오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법적 규정과 개인이 느끼는 효과 및 혜택 사이의 논리적 공백과 심정적 거리를 메우면서 국민에게 공감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만일 개인이 직접 느낄 수 있는 구체적 효과를 직접 제시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그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다져야 한다. 이때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법률’이라는 용어이다.

‘법’과 ‘율’의 먼 거리

한자어 ‘법률’은 법(法)과 율(律)의 합성어이다. 이때 ‘법’이 추상적 원칙이나 의무와 같다면, ‘율’은 인간에 의해 실행되어야 할 구체적 의무이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구체적으로, 특히 자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법률’은 ‘법’이라는 큰 틀의 도리가 ‘율’이라는 자율적 실천으로 뒷받침될 때 완성되는 어떤 원칙이다. 법률이 법률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일방적 강제성에 의존하기보다는 인간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때 ‘율’이 자발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그렇게 움직이도록 하는 일종의 동기와 동력이 필요하다. 내가 그에 따랐을 때 따라올 효과 혹은 발전적 미래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법의 취지가 국민에게 공감되어야 한다. 기본법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이 법에 의하면 보훈의 목적은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있다.(제2조) 이런 법적 목적이 효과적이려면, 협조의 대가로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이 확보된다는 것을 국민이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설령 당장 구체적인 효과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나 유관순 열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훈대상자에게서 무언가 국민적 귀감이 될 수 있을 품위가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보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태도가 높거나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 국민이 모든 국가 유공자를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유가족 등 보훈대상자를 존경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 기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법적 요구와 국민적 기대치 사이에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생겼다.

간극을 어떻게 메울까

기본법에서는 대한민국 보훈의 가치를 ‘독립’, ‘호국’, ‘민주’ 및 ‘사회공헌’ 등에서 찾지만,(제3조) 현실에서 이들 가치가 동일하게 작동하거나 국민통합에 기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독립’의 강조가 무조건적 ‘반일(反日)’로 연결되어 여전히 한일관계를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이어지거나, ‘호국’의 강조가 북한에 대한 적대성을 강화해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유지시키는 사례를 들 수 있다. ‘호국’과 ‘민주’ 원칙적으로는 보훈의 주요 가치이지만, 대북 적대적 ‘호국’의 강조가 대북 포용적 ‘민주’의 정신과 충돌하기도 한다. 기존의 보훈 행위가 국민들 간 조화와 한반도의 평화 보다는 갈등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보훈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모순적 상황은 빨리 극복할수록 좋다. 그러려면 이들 간의 충돌 지점을 완화시키고 상생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논리를 발굴해 범국민적 교육으로 이어가야 한다. 독립, 호국, 민주 및 사회공헌이 별개의 것들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 전체를 위한 통합적인 가치라는 사실을 더 많은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훈 교육과 문화의 진흥이 국민 개개인의 성숙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이들이 느낄 있도록 해야 한다. 보훈 관련 컨텐츠를 국민의 눈높이에 더 맞추어 다양화하고, 보훈을 위한 국민적 자율성을 더 확보해야 한다.

법이 비로소 법이 되려면

아쉽게도 그동안 그런 시도가 별로 없었다. 보훈 교육은 계속되었지만, 역사적 사실을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경향이 컸다. 이를 넘어서 보훈의 기존 가치들을 서로 연계하고 심화시켜 국민의 눈높이를 선도하는 보훈 철학을 세우고, 교육을 통해 확산시켜 국가와 국민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국가유공자와 그 집안, 그리고 넓은 의미의 보훈대상자들이 국민의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보훈대상자에 대한 보훈교육도 확대해야 한다. 그렇게 국가-국민-국가유공자라는 세 꼭지점이 서로 연결되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이라는 상위의 목표로 나아가는 이른바 ‘보훈의 삼각뿔 구조’를 완성해가야 한다.

이때 독립, 호국, 민주, 사회공헌 등 보훈의 네 축 모두 긴요하지만, 이 가치들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영역은 아무래도 ‘민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훈의 주요 가치 중에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전쟁에서의 호국적 행위는 과거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현재적 가치의 토대이다. 그에 비해 민주와 사회공헌은 현재 진행형이면서 더 미래지향적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이 더 공감할 가능성이 큰 영역이라는 뜻이다.

민주와 사회공헌은 현재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적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다. 민주가 국민통합과 그로 인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좀 더 심층적이고 포괄적인 메시지를 발굴하고 확대해나가야 한다.

보훈이 국가는 물론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 국민은 자발적으로 협조하게 된다. 그 자발성[律]이 뒷받침되어야 국민이 국가의 보훈정책에 협조해야 한다는 법[法]과의 논리적 간극이 축소되고, 법률로서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법’이라는 원칙이 ‘율’이라는 자율적 실천으로 승화될 때 법은 비로소 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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