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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떠난 원경의 방황, 다시 부처님 품으로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30~31화

30. 방황, 대리입대, UDT

"예산이네."

원경은 해인사를 떠나 아버지 박헌영의 고향인 줄도 모르고 예산으로 올라왔다. 1958년 12월 15일 예산 대련사에서 원경은 한산스님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됐다(2화 '아버지의 죽음' 참조). 한산스님은 아버지와 세상,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는 17살 사춘기 원경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슬픔도 아니고 허탈함도 아니지만 그대로는 견딜 수 없어 무언가를 저질러야 했다. 그것은 파계였다.

"이 점퍼 하나 주세요."

원경은 시장에서 물들인 야전전투복을 하나 샀다. 9살에 머리를 깎고 입었던 승복을 벗어버리고 이 옷을 입었다. 머리도 기르고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9살 때부터 집같이 지낸 절은 무조건 피해갔다. 아는 사람을 만날지 모르는데다가 자신의 과거가 얽혀 있는 것 같아 근처도 가기 싫었다.

▲ 부산 임시정부기념관에 설치되어 있는 50년대 실업자 모습. 파계한 원경은 이런 모습으로 거리를 헤맸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지만 한 군데도 마음을 붙일 곳이 없었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얼음과자 장수, 식당 종업원,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도저히 뿌리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서울을 떠나 부랑아처럼 전국을 떠돌았다. 먹을 것이 없으면 식당에 갔다.

"아줌마, 제가 화장실 청소했는데 더 청소할 데 없어요? 배가 고픈데 청소 끝나면 식은 밥이나 한 그릇주세요"

절밥을 먹으며 원경이 배운 것이 있다,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하면 모두들 제일 예뻐한다는 것이다. 원경은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고 살아가기 위해 절에서 배운 지혜를 써먹었다. 그러면 식은 밥이 아니라 더운밥에 뜨거운 국을 한 그릇씩 퍼줬다. 그러다가 식당에 와 깽판을 치는 놈들이 있으면 오래 전부터 배운 무술로 혼을 내 주곤 했다. 그러다가 깡패, 양아치들과도 사귀게 됐다.

"씨발놈들! 다 덤벼!"

패싸움도 무수히 했다. 어려서부터 무술을 배운 대다가 절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불교무술까지 배우고 빨치산과 전투를 누빈 그는 10대 1의 싸움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세원아(당시 원경이 사용한 이름), 나 죽고 싶다."

요즈음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가 술이 취해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래?"

"나 영장 나왔어. 다음 주에 군대 가야 해!"

"그래? 헌데 왜 울어?"

"안 울게 됐나? 3년 동안 갇혀서 생고생을 해야 하는데."

"야, 나는 네가 부럽다."

"뭐가 부러워?"

"난 군대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넌 군대 가니."

원경은 호적이 없어 군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친구가 오히려 부러웠다.

"미친놈! 군대 가는 것이 부럽냐?"

친구는 울음을 그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원경을 쳐다봤다.

"야 그러면 되겠다!"

"뭐가?"

"내가 너 대신 군대 들어갈게."

당시는 주민등록도 없었고 신원확인이 불분명해 대리입대가 가능했다.

"정말 네가 대신 가줄래?"

"그래, 대신 갈께."

한산스님이 임존산성에서 이야기해준 아버지의 죽음이 떠오르고, 잘 하면 아버지의 복수를 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네가 약속할 것이 하나 있어."

"뭔데?"

"내가 너 대신 군대 간 것이 발각되면 안 되니, 내가 군 복무할 동안은 너 고향에 돌아가면 안 돼. 마을 사람들이 너 군대 가 있는 줄 아는데 갑자기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어?"

"그러네. 약속할게."

원경은 친구를 대신해 군에 입대했다(당시 누구의 이름으로 입대했는지는 원경에게 묻지 않았는데 갑자기 입적해 알 수가 없다). 해군 72기였다. 기왕 군에 들어왔으니 가능하면 북으로 올라가 김일성 목을 따서 아버지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특수부대인 UDT를 지원했다.

진해에서 이루어진 UDT 훈련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무술로 단련된 원경에게도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지옥주와 생식주의 훈련, 그리고 진해 하수구를 빠져나오는 극한훈련 때마다 그는 김일성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1화, '아버지의 복수' 참조). 100여 명의 지원자 중 8명만이 끝까지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야~ 저기 북한이 보이네!"

한 병사가 소리 질렀다.

"어디? 어디?"

"저기 봐!"

정말 멀리 북한 땅이 보였다. 1959년 말 훈련을 끝낸 원경은 백령도에 배치를 받았다. 그는 매일 북한 땅을 쳐다보며 복수를 꿈꿨다. UDT 정예요원이었던 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는 특수한 임무가 주어졌다. 심야에 북파요원들을 태워 북한 땅에 내려주고 돌아오고 다시 정해진 장소에 가서 이들을 태워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는 가끔 자신이 북한 땅으로 들어가 김일성 목을 베는 꿈을 꿨다.

▲ 백령도의 사곶해수욕장. 원경은 UDT 훈련 후 여기에서 근무했다. ⓒ손호철

31. 탈영과 수계

"푸~~"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나오는 여객선 선창에 앉아 원경은 화랑 담배를 깊게 내품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어제 밤 본부에 있는 친구가 원경의 대리입대가 발각이 돼서 조만간 헌병대에서 조사를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대신 입대를 해주며 군 복무 기간 동안은 고향에 안 가기로 약속을 한 친구가 약속을 어기고 고향에 나타나 대리입대가 발각된 것이다.

소식을 듣고 원경은 부대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백령도에서 인천행 배를 탔다. 탈영을 한 것이다.

"스님, 대리입대가 발각이 돼서 제가 탈영을 했습니다. 헌병대에 잡혀 갔다가는 가족문제가 들통이 날지 몰라서…."

다행히 전화로 한산스님에게 연락이 이루어졌다.

"그래? 큰일 났구나. 어쩌지? 가만 있자, 인천 시내에 가면 용화사라는 절이 있다. 그 앞에서 만나자. 내가 당장 달려가마."

"알았습니다. 거기서 뵙겠습니다."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딱 한가지인 것 같다."

"그것이 뭐지요?"

한산은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원경은 초조해져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병삼아, 네가 머리를 처음 깎은 것이 언제인지 아느냐?"

"10살 때 아닌가요?"

"맞다. 장충동 아지트가 습격을 당한 뒤 나와 함께 지리산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 이후 네가 나와 함께 수많은 절을 다니며 공부하고 불경도 외며 생활했단다. 하지만 이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결정한 것이지, 네가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느냐?"

"…"

"이제 너도 성인이 됐고 너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나이가 됐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기적 같은 일이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아마도 지금까지 보다 더 큰 시련이 닥칠지 모른다. 나는 네가 이제 너 자신의 의지에 의해 수계(불교의 계를 지키겠다고 서약하는 의식)하고 불교에 정식으로 귀의하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네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탈영문제도 부처님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네 생각은 어떠냐?"

원경은 한참을 생각했다.

"스님 말에 따르겠습니다."

▲ 원경이 정식으로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고 수계를 한 인천 용화사. 이제는 거대한 선원으로 발전했다. ⓒ손호철

"잘 생각했다. 너에게 용화사에서 보자고 한 이유가 있다. 나는 네가 이곳에서 수계했으면 한다. 이곳은 한국 최고의 선방이다. 이곳의 전강스님은 16살에 중이 되어서 불과 23살에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개안을 이루고 25살에 선종 77대 법맥을 잇는 대선사가 된 당대 최고의 선승으로 전무후무한 분이다. 사자가 사자새끼를 키운다고, 그의 제자인 송담 스님은 10년 동안 말을 하지 않는 묵언수행으로 불교계를 놀라게 한 분이다. 송담 스님이 몇 년 전 비구니절인 이곳을 인수해 키우고 있는데 절은 작지만 굉장한 곳이다. 특히 두 분 다 내가 잘 알고 너의 사연도 알고 있으니, 너를 제자로 받아주실 것이다. 송담 스님만이 한 많은 너의 삶을 승화시켜 이끌어주실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았습니다."

1960년 음력 정월 15일, 양력으로 2월 21일, 원경은 전강조실을 수계사로 해서 수계하고 송담 스님의 상좌(제자의 불교용어)가 됐다. 머리를 깎은 지 10년 만에 정식으로 불교에 귀의한 것이다.

▲ 원경의 스승인 송담스님 ⓒ원경스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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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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