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일찍이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외교전문이 있다. 위키리스크가 공개한 2008년 2월 1일자 외교문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외교전문은 당시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번스가 작성해 나토와 본국에 보고한 것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이 몰고올 파장을 다각도로 다룬 것이다. 참고로 번스는 현재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고 있다.
문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군사적 위협"이자 "감정적이고 골치아픈 문제"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전략적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분열되고 이는 내전을 비롯한 극심한 폭력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라고 번스는 지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1997년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우호협력 조약을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이 조약에는 "상대방의 안보를 저해하는 행동에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이 조항가 위배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외교전문에서 주목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내전 가능성이었다.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 다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개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토가 문호를 계속 열어둘 경우 우크라이나 내의 친서방-친러 사이의 갈등이 내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번스는 "이렇게 될 경우 러시아로서는 개입 여부를 결정하게 될 터인데, 이는 러시아가 직면하길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번스는 또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가 나토와 러시아 관계, 미러 관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면서 "러시아는 1990년대 중후반과는 달리 자신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에 대해 더욱 강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등 일부 나토 회원국들이 신중론을 제기했지만, 미국은 경직된 태도를 고수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상황은 번스가 외교전문에 적었던 방향대로 흘러갔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책임과 위선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냉전 종식기와 1990년대 초반에 나토 동진은 없을 것이라고 러시아에 숱하게 약속했었다. 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이 어떤 비극을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일찍이 예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나토 동진과 군사력 전진배치와 같은 일방주의적 행태를 지속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비극으로부터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미국도 조속한 휴전과 평화정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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