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한 사회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큰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변화가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 변화의 속도가 엄청 빨라진 것 같다. 여러 변화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개인주의 현상이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현상이 일상화 되면서 우리 모두는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두려워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화하고 일하는 일들이 무척 어렵게 느껴지게 되었다. 비교적 과거 세대에 속한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물론 이 사회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지금의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우는 일들이 가끔 있었으면 싶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만들었던 노래 한 곡이 떠오른다. ‘에루아 에루얼싸‘란 제목의 노래인데 여기에 소개한다.
어린 시절, 모내기철이 오면 집안 식구 모두가 동원되어 마을 '아재 아짐'들과 모내기를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다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직접 모심기는 하지 않고 못줄 잡는 특혜(?)를 받았다. 일이 많아 해가 뉘엿뉘엿 져서 어둠이 깔려도 모심기가 끝나지 않은 적이 많았다. 어린 초등학생인 나는 그게 무척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힘들었다는 기억과 동시에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그 노래는 '에루아 에루얼싸'였다. 그게 정확한 발음이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비슷한 웅얼거림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오후에 새참을 먹고 나서 다시 모내기가 시작되면 목청 좋은 마을 아재 한 분이 걸죽한 목소리로 소리를 메기기 시작한다. 새참에 마신 막걸리 때문에 모두들 흥겨워 하며 동참한다.
"앞집에 갑돌이와(에루아 에루얼싸) 뒷집에 갑순이가(에루아 에루얼싸)"
이런 식으로 노래를 메기면 나머지 분들이 '에루아 에루얼싸'로 화답한다. 힘든 노동을 노래로 풀어내며 서로 응원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5.18을 겪으면서 나는 위의 '에루아 에루얼싸'와 비슷한 느낌을 여러 장면에서 받았다. 부상자들 치료에 피가 부족하다고 하니까 병원 앞에 길게 줄서서 헌혈을 기다리는 시민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생이나 청년들이 배고프다며 집 앞에 좌판을 깔고 주먹밥 만들어 나눠주는 동네 아주머니들, 경찰 없어도 한 건의 불미스러운 일없는 도시 치안 등등….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 등 두드리며 견뎌내는 시민의식, 이게 대동세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5.18에 이 ‘대동세상’을 경험했고 민주를 위해 투쟁했던 숭고한 외침에 못지않은 파라다이스를 보았다. 내가 그 ‘대동세상’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항상 자랑스럽다.
"앞에서 끌어주고 에루아 에루얼싸 뒤에서 밀어주고 에루아 에루얼싸 모두들 힘합하여 에루아 에루얼싸 이 어둠을 밝혀 보세 에루아 에루얼싸"어린 시절 모내기 때 들었던 농요 '에루아 에루얼싸'의 풍경이 오버 랩되면서 당시 어려웠지만 찬란했던 ‘대동세상’을 노래로 만들었다.
이 노래는 처음엔 아주 느리게 시작해서 점점 빨라져 휘모리로 끝난다. 요즘 세상이 바뀌고 힘들어서 그런지 ‘에루아 에루얼싸’ 정신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코로나로 예상하지 못한 변화 때문에 당황해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화답하는, 우리 모두 힘들어도 즐겁게 일했던 '에루아 에루얼싸'같은 마음 회복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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