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생활을 하면서 늘 부딪히는 딜레마가 있다. 취재를 하다보면 어느 하나 명쾌하게 정리되는 게 없다. 복잡한 구조 속에 놓인 하나의 사건은 늘 이면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모두 기사로 담아낼 수는 없다. 기사란 간결하고 선명한 주제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사를 쓰고 나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을 때가 많다.
언론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수많은 징후들을 기초 정보처럼 나열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나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많은 언론이 그런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과거부터 언론은 '세대론'을 자주 사용한다. 최근에는 그 빈도가 잦다. 청년세대, 2030세대, MZ세대, Z세대, 밀레니엄 세대, 82년생, 90년생, 이대남, 이대녀, 586세대, 민주화 세대, 꼰대 세대 등…. 세대를 규정짓는 수많은 신조어들이 언론 지면에 오르내린다.
이렇게 특정 세대를 '특정한' 성격으로 규정지으면 기사는 조금 더 명징해 진다. 다른 세대와 구분 지으면서 만들어지는 대결구도를 프레임화하면 이슈화 하기에도 편하다. 정치권도 이러한 언론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하고, 심지어 앞서 나가기도 한다.
세대론은 없다
최근 읽은 <그런 세대는 없다>(개마고원 펴냄)의 저자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지금과 같이 소비되는 '세대론'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자칫 같은 세대 내 계급, 교육, 성별, 지역 등에 따른 차이와 불평등은 아예 무시하고 '어떤 동질성'이 같은 세대가 존재한다고 믿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물론, 저자가 세대 차이나 세대적 독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현재의 담론, 즉 세대론에 급격히 기울어진 우리 사회의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경기'들에 급제동이 필요하다며 이 책을 낸 배경을 설명한다.
세대는 시대의 질문들에 대한 손쉬운 대답이 아니라,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어려운 질문이어야 한다. 지금의 현실은 저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대론이 언급된다.
일례로 저자는 '586세대'에 덧씌워진 허구를 이야기한다. 586세대론은 과거 '저항세대'에서 이제는 '기득권 세대'로 자주 사용되는 세대론적 구분법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대론에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586세대의 다수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살고 있는가."
저자는 다양한 수치와 통계자료로 기존 '586세대론'에 의문을 나타낸다. 우선 586세대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학력인구 중 4년제 대학 취학률이 13%에 불과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1960년대 생인 현재 50대 중 대학에 간 사람은 10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또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당시 대졸과 고졸 간 임금 격차에도 주목한다. 50대의 10명 중 7명은 현재 서비스판매직, 생산직, 단순노무직으로 종사하고 있는 점도 지적한다.
이들을 배제하고 50대의 10%에 불과한 이른바 '586세대'를 마치 전체 50대로 등치해 기득권 세력으로 도식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한 줌도 안 되는 80년대 운동권 출신의 50대 엘리트층이 이 세대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세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을 지워버리는 일이 된다"고 지적한다.
'586세대'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인가
'586세대'의 연장선에서 저자는 '기성세대'라는,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이 된 세대'에 주목한다. 이른바 '기성세대'가 사회에 통용되는 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부동산으로 쉽게 돈을 번 안정계층'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도식은 경계 대상이다. 과학에 근거하지 않는 이런 '세대론'이 마구잡이식으로 확장되면서 '기성세대=안정계층, 청년세대=불안정계층'이라는 도식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도식은 모호한 대상, 즉 '기성세대'라는 존재가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지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금권, 이권을 장악한 '권력 집단'은 세대를 불문하고 존재한다. 이런 '기득권 집단'이 '기성세대'론 뒤에 숨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저자는 "부의 세습,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계급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라는 세대 간 불평등의 관념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기성세대는 대부분 안정계층이고 청년세대엔 불안정계층만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는 '세대론'은 청년계층 내에 존재하는 '고소득 청년'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현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어떤 세대가 안정계층이고 다른 세대가 불안정층이기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부와 지위의 세대 간 이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안정계층의 부모자식과 불안정계층의 부모자식이 있으며, 이 문제가 청년세대에 와서 더 심각해졌다."
저자는 "지금 20대의 가장 주목할 점은 다 똑같은 취준생, 알바생도 아니고, 능력주의 공정 관념 세대도 아니"라며 이 세대의 핵심 문제는 "직업, 교육, 소득, 재산 등 여러 면에서 세대 내 양극화가 지난 10여 년간 충격적으로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라고 지목한다.
그러나 언론, 그리고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세대론'을 적극 이용해 자신들의 표 획득에 골몰한다. 올해 치러진 20대 대선에서는 그 어떤 선거 때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이대녀'라든지 '세대포위론'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치를 저자는 '신기루'라 표현한다. 세대론만 바라보는 정치는 실제 유권자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것인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임대생활자는 주거안정 대책을 요구할 수 있으며, 빈곤층은 생계안정 대책을 요구할 수 있다"며 "하지만 20대의 이름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정책은 없다"고 지적한다.
세대론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실제 이번 대선에서 '20대 청년들을 위한'이란 꼬리표를 달고 여러 정책이 나왔으나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일례로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된 일자리와 주거 공약은 지방에 사는 청년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각기 다른 위치와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을 20대라는 세대론으로 묶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다.
저자는 더는 '세대론'에 갇힌 논쟁과 담론이 만들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세대론에 가려진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가져오려면 그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세대의 고통의 경중을 저울질하면서 청년들이 더 아픈지, 노인들이 더 아픈지를 따지며 세대와 세대를 비교하기를 멈추어야 한다. 청년들의 어려움을 말하기 위해 다른 세대의 인생이 짊어진 무게를 폄훼하거나 심지어 기득권층으로 만들 필요는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가해자 세대와 피해자 세대, 착취하는 세대와 착취당하는 세대, 운 좋은 세대와 불운한 세대를 나누는 일은 경험적으로 사실이 아닐뿐더러 정책적으로 무익하고, 윤리적으로도 문제적이다."
저자는 지금의 세대론을 두고 "특정집단이 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허위일반화하고 다른 집단을 배제함으로써 그 세대의 진정한 실태를 오인하게 된다"고 부작용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러한 오인은 종종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은폐하거나 재생산하는 결과를 남긴다.
우리는 세대론에 포위되어 정작 중요시해야 할 젠더, 지방 소멸, 불평등, 학벌 문제 등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세대론'에 갇혀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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