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물류창고 화재 등 대형 인명피해 화재사고의 주 원인으로 지목돼온 부실 건축자재들이 국토부의 방치로 여전히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3일 오전 성명을 내고 "건축자재 품질인정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세부 운영지침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시행 3개월이 지나도록 제도가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국토부의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건축자재 품질인정제도는 지난 2020년 4월 38명의 인명피해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 등 건축물 내의 대형화재를 막기 위해 국토부 주관으로 2021년 12월 23일부터 시행된 제도다. 방화문, 복합자재 등 화재안전 성능이 요구되는 건축자재에 대한 생산·유통·시공 과정에서의 품질관리 강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실제 품질인정 수행을 위한 세부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제도에 따라 부실 문제가 제기된 기존의 자재들이 아닌 강화된 품질의 자재들을 새로 생산해내야 하는데, 그 품질을 검수하고 인증할 세부지침이 없으니 결국 기존의 부실 자재들이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다는 게 경실련 측 지적이다.
경실련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토부는) 법 시행 3개월이 지나도록 전문가 자문단이 결정한 (품질인정제 세부지침 관련) 후속 입법을 특별한 이유 없이 미루고 있다"며 "품질인정제의 운영지연으로 정상적인 건축자재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고, 불법(부실) 자재의 양산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희택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 시민안전위원회 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품질인증은 민간업체 등 여러 기관에서 (정부) 위탁을 받아 진행한다. 이들이 품질인증을 수행하기 위해선 국토부가 세부지침을 확정하고 승인해야 하는데, 국토부가 이를 실행하지 않고 있으니 (품질인증을 받는) 정상적인 제품들이 생산되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 인증 기준이 만료되면 현재 생산되고 있는 자재들도 생산 자체가 불법이 되는 상황"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세부지침 미비가 화재안전기준 자체를 완화하려는 국토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성명에서 경실련은 명확한 설명 없이 세부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는 국토부의 태도를 가리켜 "현재의 안전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을 수십 년간 생산 판매하던 기득권 이해관계자의 편에 서서 정책을 무력화하고, 화재안전기준 완화를 통해 과거로 회귀하려는 의도적인 늦장 지연이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 또한 "보통 법이 시행되면 세부 운영지침을 미리 만들어서 같이 공포한다. 그래야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세부지침을 확정을 하지 않으면 법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이다. 전부터 일부 업자들이 (화재안전기준 완화 등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보니, 국토부가 혹시 그쪽의 손을 들어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