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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참사 책임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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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참사 책임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12년 만의 다시 벌어진 참극, 그러나…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시의 냉동 물류 창고에서 불이나 노동자 40명이 죽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전기 용접 중 불씨가 유증기로 옮겨붙어 폭발한 게 화재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창고 건축은 '코리아냉동'이 공사를 발주했고, '코리아2000'이 공사를 맡았으며, '코리아2000건축사사무소'가 창고 설계와 감리를 담당했다.(<경향신문> 2008년 1월 9일 자)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익이 클수록 책임이 커진다. 냉동 물류 창고가 만들어졌을 때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이 사고가 났을 때 비례하여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익과 책임의 비례 원칙이 '법의 지배(the rule of law)'의 근본인데, 산업재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선 작동하지 않고 있다.

'코리아2000' 대표, 벌금 2000만원으로 끝나

각종 건설 현장에서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가장 큰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가장 적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이천 참극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인 시공사 코리아2000의 공봉애 대표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코리아냉동과 코리아2000건축사사무소의 소유주이기도 했다.(KBS뉴스 2008년 1월 9일 자)

2008년 7월 수원지법 여주지원 표극창 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공 대표에게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현장소장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방화관리자에겐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족과 원만히 합의했고 유족들이 피고인들에 대한 처벌을 바라지 않는 점, 피고인들 모두 범죄전력 없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냉동 창고가 완공되면 가장 큰 이익을 누릴 사람의 책임을 가장 낮게 평가한 것이다.

'한익스프레스' 물류 창고 참사

판사만 탓할 것도 아니다. 관계자들에게 징역 8월에서 징역 2년6월의 징역형에 그친 검사의 요구 형량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사는 부실한 법 핑계를 댈 것이다.

올해 4월 말, 이번에도 경기도 이천의 물류 창고 건설 현장에서 코리아2000 참사와 똑같은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죽고 10명이 다치는 참극이 일어났다. 12년 만에 완벽하게 재현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의 참극을 계기로 2008년 벌금 2000만 원만 내고 면죄부를 받은 공 대표가 어떻게 지내 왔는지 궁금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게도 지역사회의 유지이자 자선사업가로 활약하는 공봉애 대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08년 참극 당시에는 베일 뒤에 가려져 있던 남편 한주식 (주)지산 회장이 사업 전면에 나서면서 그의 가족은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

구글링을 통해 검색하면 공 대표 일가가 경기도 내에서 첫 가족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되었다는 2016년 8월 기사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만든 개인고액기부자 모임으로 1억 원을 기부하거나 약정하면 가입할 수 있다.

<중앙일보>, <경기일보>, <경기신문>, <경인일보>, <인천일보>의 인터넷 기사들은 공 씨 일가가 경기 1호 가족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한 회장이 당시 24세인 아들과 22세인 딸에게 각각 1억 원을 빌려주어 기부토록 했다고 썼다.(2017년 7월 21일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설명에 따르면, 2007년 12월에 출범해 "개인 고액기부 문화를 이끄는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아너 소사이어티는 2019년 12월 현재 "회원수 2158명, 누적기부액은 2399억 원이며, 가족이 함께 가입하는 패밀리 아너도 늘면서 현재 242가족 543명이 가족 아너로 등록돼 있다".

"국내 최대 물류업자, 부동산 형질변경사업 전문가"

공 대표의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주)지산은 "거대 냉장·냉동물류창고와 산업단지, PC공장, 와인과 맥주 수입 유통 등을 포함하여 10여 개, 회사에 종사하는 전체 직원이 170여 명이고 외주 처리된 '동반성장' 기업 직원이 500여 명에 이른다"고 <경주신문>은 전했다.(2019년 6월 27일 자)

이 매체는 한 회장을 "국내 최대 물류업자, 부동산 형질변경사업 전문가"이자 "탁월한 사회사업가"로 묘사했다. 기자는 사회사업가의 근거로 '아너 소사이어티'의 감사패를 거론했다.

<용인신문>에 따르면, "지산그룹은 (주)지산엔지니어링, (주)지산건축사사무소, (주)용인창고, (주)이천창고, (주)용인물류터미널, (주)남사물류터미널 등을 비롯한 10여개 특수목적법인 계열사를 총괄하고" 있다.(2018년 4월 23일 자)

<시사투데이>는 "2015년에 설립한 (주)지산은 물류산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건설기술력과 창의적인 경영 시스템으로 물류센터개발·건축공사 등 종합물류 서비스를 책임지고 (중략) 전문 분야별로 구성된 설계, 감리, 건설사업·프로젝트 관리 등을 통해 국내 물류센터개발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2019년 8월 30일 자)

지산그룹 계열사인 (주)이천창고는 2008년 코리아2000 참극의 현장인 호법물류센터가 소재한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에 위치해 있다. 코리아냉동을 발판으로 2014년 설립된 (주)이천창고가 입주한 호법물류센터는 한 회장이 소유한 지산엔지니어링과 지산건축사무소의 합작품이다.

<용인시민신문>이 "용인판 꿈의 직장"으로 묘사한 지산엔지니어링은 "코리아2000과 코리아냉장 등 각종 자문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세운 기업"이다.(2013년 1월 14일 자)

기부는 좋은데, 그 진짜 의도는?

기업인들이 개인 재산을 공익 사업에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은 권장되는 미담이다. 당연히 기업인 부부와 자녀가 기부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에 가입하고 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공 씨 부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사회지도자'로서 기부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닌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는 2008년 이천 참사의 책임자임을 먼저 알리고, 유죄 판결을 받은 당사자로서 물류 창고 건설현장의 참극을 예방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공 씨 가족이 자기 재산에서 기부금을 낼 여력이 있다면, 일반적인 자선이나 기부보다는 당시 피해를 입은 사망자의 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과 더불어 물류 창고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와 재해를 예방하는 사업과 활동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공 씨 부부가 해왔는데도 언론에 소개되지 않아 필자가 모르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스러운 일이겠으나,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특수관계자와의 빈번한 거래

2008년 이천 참극의 책임 기업으로 공 씨 부부가 최대주주를 맡아온 주식회사 코리아2000의 2019년 사업보고서는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특수관계자에 대한 채권이 전체 자산총액의 62.7%에 이르고 있으며, 특수관계자와의 자금거래가 빈번하고 특수관계자로부터 제공받거나 특수관계자에게 제공한 담보 및 지급보증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상태. (중략) 이로 인해 특수관계자의 경영성과 및 현금흐름에 따라 재무구조가 취약해질 위험에 노출."

대주주와 경영진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회사의 자생력이 그만큼 떨어지고(소유주의 '자생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특수관계자들에게 대여금 지급 등 위험한 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공 씨 부부 소유의 회사들은 요지의 부동산 등 우량 자산을 보유한 알짜배기일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불량 회사' 고른 한익스프레스의 책임은?

38명이 죽고 10명이 다친 올해 4월의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창고의 시공사인 주식회사 선우에 대하여 YTN은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율 조사에서 최악의 낙제점을 받은 불량사업장"으로 "당국의 정기감독을 받아야 하는 업체가 버젓이 대형 물류창고, 그것도 시공이 어려운 냉동창고 공사를 하고 있었고,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2020년 5월 3일 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조카이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자인 미국 국적자가 대표로 있는 한익스프레스가 '최악의 불량사업장'에 공사를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 친화적인 서비스 개발에 노력하고, 철저한 안전 점검과 관리를 통하여 사고를 예방한다"는 한익스프레스의 윤리강령이 창고 건축 현장에서 무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들에 대한 해답을 '노동을 존중한다'는 여당이 총선 압승을 거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찾아내지 못한다면, 2008년 이명박 정권 하의 '코리아2000 참극'이 2020년 문재인 정권 하의 '한익스프레스 참극'으로 재현되었듯,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이 거듭 승리하더라도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떼 죽음이 계속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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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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