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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고립, 핵 전쟁 위협 키운다"

[해외 시각] 유럽의 만장일치 대응, 푸틴의 핵무기 사용 유혹 키울 수 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대한 서방 세계의 전례 없는 제재가 이어지면서 러시아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인플레이션까지 감수하는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마저 상황을 예의주시만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러한 고립이 심화될 경우 러시아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운영 부대에 특별 전투 임무를 시달하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에 대해 "한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핵전쟁이 이제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며 핵 전쟁을 경고하는 등 핵무기 사용 위험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고립만이 상황의 해결방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기자로 50개국 이상을 취재했던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스티븐 킨저 브라운대 왓슨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보스턴글로브>(3월 10일) 기고문에서 서방의 강력한 제재가 푸틴에게 핵무기를 사용하게끔 만드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방의 제재들이 "푸틴에게 궁지에 몰리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며 핵무기 사용에 대한 현실적 위험성을 직시하고 그 가능성을 줄일 대책을 모색해야 하며 현 상황에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티븐 킨저의 기고문을 번역·정리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 11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벨라루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세계는 (1962년 쿠바 핵위기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어느 때보다도 핵전쟁에 가까워졌다. 러시아와 미국은 전투 현장(battlefield)에서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들 중 일부는 1945년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소각해버린 원자폭탄의 3분의1 수준이다.

지난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명령을 내린 직후 군에 "고도의 핵전쟁 경계태세" 선포라는 매우 무책임한 조치를 취했다. 만약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빨리 이기지 못한다면, 특히 다른 나라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게 된다면, 그는 핵무기를 포함한 그의 모든 무기 역량을 사용하려는 유혹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지는 의심스럽다. 하지만 애당초 그가 우크라이나를 실제 침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는 점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의 핵 위협에 대응하지 않은 것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은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사담 후세인을 반대했던 때보다 훨씬 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특히 러시아의 폭격과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모습은 분노와 복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런데 이는 우리에게 닥칠 정말 끔찍한 위험을 놓치게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무장시키고 러시아를 때리는 것은 우리가 핵전쟁이라는 궁극의 악몽을 향해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그는 (‘핵무기 사용 불가’라는 2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오랜 금기를 깨는 것이며 이에 따라 그는 히틀러 이후 가장 경멸받는 세계 지도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 국방부의 핵전쟁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결과는 항상 똑같다. 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한쪽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면 상대방 역시 전술 핵무기로 방식으로 대응하며, 그 결과 양쪽의 도시들 모두 잿더미가 된다.

워싱턴 퀸시연구소의 핵 전문가 조셉 시린치온 선임연구원은 "일단 핵무기 사용이 시작되면 양측은 계속 더욱 강력한 핵무기로 대응할 것이며, 중도에 멈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양측 모두 자신의 핵 공격이 결정적 한 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을 피할 방법은 없다. 특히 푸틴이 자신이 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위험은 더 커진다. 러시아의 핵전쟁 교리인 '전쟁 확대를 막기 위해 공격을 강화한다(escalate to de-eacalate)'는 원칙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위해 특별히 고안됐다. 러시아가 전투에서 밀리고 있다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군부는 이 원칙을 믿고 있으며 푸틴이 핵공격 명령을 내리면 복종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 사용 가능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크라이나 위기를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우크라이나의 마을을 파괴하기 위해, 또는 적의 전투 진영을 없애버리기 위해, 심지어 단순한 무력시위를 위해 러시아가 핵미사일을 단 한 발 발사하더라도 이는 급격하고 참혹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서방세계의 반응은 강력했고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그 중 일부는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강력한 서방의 반감을 드러냈다. 예컨대 뮌헨 필하모닉과 밀라노 라스칼라 오페라의 러시아 출신 지휘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 외의 다른 서구의 대응은 앞으로 수십 년간 세계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치명적인 수준이다. 러시아에 대한 가혹한 경제 제재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세계화 사회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삶의 형태를 바꿀 것이다. 주요 석유 회사들은 러시아가 세계 유수의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철수를 감행했다. 독일은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리고 있고 핀란드와 스웨덴은 나토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스위스는 오랜 기간 유지해왔던 중립국 정책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대한 유럽연합의 강력한 제재에 동참했다. 이같은 대응은 타당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푸틴에게 자신이 궁지에 몰리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2008년, 네 명의 저명한 지정학 전문가들인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샘 넌, 그리고 윌리엄 페리는 핵전쟁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치들이 "위험을 다루는 데 부족하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위험은 커져만 가고 있다.

이들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목표는 매우 높은 산꼭대기를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산을 계속 내려가거나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 위험은 너무도 무시무시해서 우리는 경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핵전쟁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두려워하는 미국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러시아와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은 핵전투를 전쟁의 사용 가능한 수단으로 상정하고 있다. 비밀공작, 제재, 사이버 공격, 재래식 전쟁에 이은 ‘위협 연속체(threat continuum'의 하나로, 즉 강압적 수단의 (마지막) 한 단계일 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핵전투를 전쟁 수단에서 제거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핵 홀로코스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핵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며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핵전쟁은 아득한,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임박한 핵전쟁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미국과 나토가 먼저 우크라이나에서의 핵사용 포기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러시아에 대해서도 같은 서약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위기를 안전하게 벗어나게 된다면 모든 핵무기 보유 국가들이 핵전쟁 방지를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 책임은 세계 핵무기의 90%를 갖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에 있다. 만일 두 나라가 핵 선제 사용 포기에 합의할 수만 있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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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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