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 다음날이었던 3월10일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어 1위는 '페미니즘' 이었다. 2위는 '페미니스트'였다. 대선 관심사인 '출구조사'(3위), 2년 넘게 일상을 옭아매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4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더욱 깊어진 '스태그플레이션'(5위)에 대한 우려를 가볍게 제쳤다.
이날 선거 결과를 두고 영국 매체 <가디언>은 "'안티 페미니스트' 후보가 승리 선언을 했다"는 기사를 메인 화면에 실었다. 여기에 많은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0.73%포인트 차로 어렵게 승리를 거둔 이유로 '성별 갈라치기' 선거 전략의 실패를 꼽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시민들이 대선 다음 날 정치며 경제에 대한 다른 궁금증을 접어 두고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시의적절하게 출간된 데버라 캐머런 옥스퍼드대 우스터칼리지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 교수의 저작 <페미니즘>(강경아 옮김·신사책방)은 그러나 이 궁금증에 '단순하게' 답해주지는 않기로 한 듯 하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내 대답은 '복잡한 것'이라는 뻔한 말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이 책에서 나는 페미니즘(들)의 복잡성을 톺아보고 탐구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이 대답에 힘이 빠졌을 독자들을 위해 "논의의 시작점"을 위한 "최소한의 정의"를 제시한다.
"확실히 페미니즘은 각양각색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모두는 다음의 두 가지 근본적 믿음에 기초한다. 1. 현재 여성은 사회에서 예속 상태에 있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을 겪고 체계적 불이익을 받는다. 2. 여성의 예속은 불가피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는 정치적 행동을 통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
저자가 페미니즘을 '단순화 하지 않고' 소개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지배구조, 권리, 노동, 여성성, 성, 문화, 경계와 미래'라는 7가지 주제와 관련돼 제기되는 핵심 문제들과 이와 관련된 그간 진행된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논쟁을 가능한 풍부하게 다루는 것이다. 책은 여느 '교양서'나 '대중서'처럼 마음을 건드리는 예시를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 '쉽고 일관된 설명'을 빌미로 논의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독자를 직관적 혹은 감정적으로 감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각 주제에 대한 논쟁을 개조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론에 반론을 거듭하는 논리적 전개에 따라 글을 구성했기 때문에 가독성은 높은 편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사고를 전개하는데도 비교적 적은 페이지 수(총 176쪽)로 책을 완성해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남성지배와 가부장제는 구조적 문제다"
저자가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은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남성 지배와 가부장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친숙한 말로 치환하면 '성차별은 구조적 문제'라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이 처한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하더라도 문제를 야기한 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아 근본적 해결은 가능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심화된다. 덧붙이면 성차별 구조가 존재하는 한 개별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도 쉽지 않다.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여성들이 겪는 2차 가해를 생각해 보라. 외신이 '안티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당선인은 '무고죄'를 공약하면서 많은 여성이 2차 가해가 두려워 성폭력 피해 사실 자체를 말하지 못하는 것을 외면한다.
저자는 남성지배가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지적할 때 흔히 나오는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반박에 대해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남성지배나 가부장제는 남성 개개인의 태도나 의도, 행동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짚어야 한다"고 썼다.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남성지배는 사회구조에 관한 것이다. 남성지배/가부장적 사회는 법률· 정치·종교·경제구조나 제도가 남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는 곳이다. 특정 권리와 특혜를 스스로 포기하는 개인 남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의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지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즉 남성지배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개별 남성의 존재와 남성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개별 여성의 존재, 사회경제적으로 실패한 개별 남성의 존재와 성공한 개별 여성의 존재가 남성 지배라는 구조 자체를 반박하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사회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은 더 단순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개별 사례로 '반례'가 나오면 곧 이론이 뒤집힐 수도 있는 변인이 통제된 실험실 실험과는 다르다. 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하고 풍부한 것, '더 복잡한 것'이 더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 문제는 자기 자신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인격체인 인간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그 복잡한 인간들의 총합의 이상인, 이보더 복잡할 수 없는 사회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사회에서 구조적 성차별의 증거로 자주 언급되는 성별임금격차에 대해 생각해보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집계를 보면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2020년 기준 31.5%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것을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문제로 접근한다면,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을 덜 받고 있을 것이고, 집계해보면 '우연히도' 임금을 덜 받는 쪽의 성별이 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그것이 성차별이라고는 인정되지 않아서 모든 개별 (여성) 노동자들이 각자 소송 등을 통해 동일 노동을 제공하면 동일 임금을 받게 되었다고 가정하자.(앞서 말했다시피 이 '차별적 구조'를 무시할 경우 개별 사례의 해결도 결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성별임금격차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성별임금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여성이 동일직종에서 남성보다 임금을 덜 받기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시장에 성별직종분리 현상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임금과 지위가 낮은 일자리에 대거 포진해 있으며 "여성이 하는 일은 여성이 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저평가된다." 여성이 하는 일이 저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유급 노동 시장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일이 세탁, 가사나 돌봄 도우미 등 여성이 집안에서 하는 무급 돌봄 노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일반 사무직 유급 노동 현장에서도 여성들이 오랫동안 '무급으로' 사무실 청소, 커피 타기 등 무급 돌봄 노동의 연장선 상의 일을 해 왔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돌봄 노동 자체가 남성이 하는 일보다 노력과 기술이 덜 필요하다며 저평가 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1970년대 중반 내가 병원 세탁소에서 근무할 때 세탁기를 싣고 내리는 일을 했던 남성은 수술 가운과 간호사복을 다리던 여성보다 50%나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세탁기 하역 작업보다 다림질에 필요한 숙련도가 더 낮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분명 세탁을 많이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애초에 동일 직종에서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해 온 이유도 '가족 임금' 모델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남성이 '가족 임금'을 받고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는 오래된 모델은 점차 현실의 삶과 동떨어지게 됐지만, 문화적인 상상력 속에서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2017년 제임스 그린 당시 미국 유타주 와사치카운티 의회 부의장(공화당)이 "남성에게 높은 임금을 줘서 가정을 부양하게 하고 여성은 아이를 기르며 집에 머물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이유로 남녀 동일 임금을 보장하는 법안이 기각돼야 한다는 서한을 언론에 보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휴직하거나 시간제로 일하는 것도 성별임금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이다. 휴직을 할 경우 경력단절 없이 일하는 남성보다 적게 벌고 승진이 어렵고 연금도 낮아진다. 그러면 여성은 왜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줄일까? 노동시장에 이미 존재하는 성별임금격차 탓에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성이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더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문화적으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기업이나 정부가 제시하는 대표적인 '여성친화' 정책이 육아 관련이라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면 왜 여성이 아이의 주양육자여야 한다는 기대가 지속되고 있을까? "많은 남성이 양육자의 역할을 떠맡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남성은 주양육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까? 일단 일일 8시간의 정규직 노동은 애초에 양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조직돼, 사실상 "무급 (돌봄) 노동을 누군가에게 떠넘겨도 된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유급 노동과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돌봄 노동은 각각 '유급'과 '무급', '경력'과 '경력단절'로 사회에서 극명하게 다른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반면, 남성은 '여성화된' 돌봄 노동을 수행하면 그들의 지위가 낮아진다"고 보기 때문에 남성들로서는 굳이 돌봄 노동을 택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저자는 돌봄 노동을 '탈여성화' 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해 직장 근무로 대표되는 유급 노동을 '탈남성화'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만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사람보다 땅을 팔거나 지키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 않는다. 남성 노동자를 표준 노동자로 가정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고자 한다면 개별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기는커녕 노동 시장의 성별직종분리, 무급 돌봄 노동과 유급 노동에 차별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인식의 전환, 지금까지 '여성친화' 정책으로 사용하고 있는 육아 친화적 정책 때문에 오히려 여성 생애 총 임금이 줄어드는 문제 등 포진한 구조적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도 풀지 못한 숙제다. OECD가 17일(현지시간) 구독자들에게 보낸 뉴스레터에서 "성평등을 증진시키는 것은 모든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는 문장을 거의 관습적으로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개인의 선택'이라는 말이 감추는 것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용어 중 하나는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문제가 제기됐을 때 그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고, 심지어 때로는 문제조차 아니고 개인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성매매, 대리모, 성폭력 등 제기되는 대부분의 여성 문제에 대해 이런 방식의 반박이 존재한다. 주로 명시적인 (물리적) 폭력이나 강압이 없었다면 여성이 그 상황에 '동의'했다는 식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여성 문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무화된다. 모든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개인의 선택, 개인의 노력,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그 사회의 상층부 및 중심부에서 태어나 기회에 더 잘 접근할 수 있고 기회를 더 잘 활용할 자원이 있는 이들의 유리함을 은폐함으로써 그들의 특권 및 지배구조를 강화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구나 '자유롭게 선택하는 이성적 개인' 개념은 서구의 근대 사상에서 나왔고, 이 때 이성적 개인은 여성과 흑인을 배제한 그 사회의 주류인 백인 남성만을 의미한다는 비판이 이미 지난 세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성적 개인' 개념이 등장한 뒤에도 여성에게는 오랫동안 재산권도 참정권도 없었다.)
저자는 선택이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빈곤국의 여성이 돈을 받고 어느 부유한 나라 부부의 대리모가 되기를 자처했을 때 이는 그의 '자발적 선택'이므로 문제의 소지가 없는 걸까? 저자는 "(인도) 구자라트 같은 시골 지역 여성에게 더 다양하고 더 나은 경제적 선택지가 존재한다면, 부유한 외국인을 위해 대리모가 되려는 여성이 얼마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여기서 '선택'이라는 용어는 부유한 선진국 부부와 빈곤국 여성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이 같은 '사업'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하는 전지구적인 극단적 경제 불평등 구조를 보지 못하게 한다.
앞서 '일 가정 양립'을 위해 휴직이나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하는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갖기 전부터 이미 남성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있는 데다 직장에서는 성차별과 성희롱을 감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직장 이탈의 유인이 크고 여성이 아이의 주양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의 강한 압박을 배경으로 한 '선택'을 '자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는 '행위성', '선택권'과 더불어 '권리'가 진공 상태에서 행사 되는 것인 양 말하곤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조건에 따라 어떤 행위가 가능할 수도,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며 "'선택'이라는 언어는 사실상 여성의 선택이 그들도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춘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스트가 보기에 개인 여성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왜 여성이 특정한 선택을 내리게끔 강요받는 방식으로 사회가 조직됐는지, 다른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혹은 만들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남성도 불쌍하다?'
현재 대통령 당선인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남성지배적 사회구조를 은폐함으로써 강화하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구조적 성차별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가 뭘까? 저자는 "남성지배가 유지되는 이유는 다른 불평등한 구조가 유지되는 이유와 같다. 가부장제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남성 사회는 이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남성은 엄히 벌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개별 남성들이 젠더 체계 아래서 '남성성'을 갖추라는 요구를 억압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안다. "남성은 감정을 억눌러야 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가족을 부양하고자 오랜 시간 노동해야 하며, 나라를 대신해 전쟁터에 나가 싸워야" 하는데 "많은 남성은 이러한 요구를 특권이라기보다 부담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성을 갖추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해서 이를 이행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남자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남성은 심각한 제재"를 받을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 그 처벌은 죽음"에까지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들도 똑같이 불쌍'한 것일까? "페미니스트 대부분은 남성이라는 계급이 차지하는 지배적 지위에 대한 대가를 남성 개개인이 치른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한편, 남성은 여성과 달리 이러한 체제로 이득을 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하는 젠더 단속 행위가 그토록 엄한 것은 "남성에게 여성과 다르게 행동하도록 요구"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를 드러내는 위계 체제를 옹호하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여성성 수행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반항아일 뿐이지만, 남성성 규범을 어기는 남성들은 반역자다."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는 젠더 체계는 대칭 관계가 아니다. "이는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위계질서"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구성되는 "남성성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이성적이고 강인하고 용감한 것이며, 여성성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이고 감정적이고 연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것"으로 "남성이 권력을 행사하고 여성은 그를 지원하는 부차적 역할만 맡는 사회 체계와 직접 연관돼 있고, 여성이 지녀야 한다고 장려되는 특징은 여성의 열등한 사회 지위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는 특징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전 손태그는 '여성이 해방되면 남성도 해방된다는 상투적인 생각'이라고 부른 것을 거부한다. 손태그가 말하길 가부장제는 모든 이를 동등하게 억압한다는 생각은 '마치 가부장제는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 누구에게 편한 것도 아니며, 그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듯, 남성지배라는 날 것의 현실을 어물쩍 넘기려 한다.'"
페미니즘은 가능한 모든 방면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방법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실은 저자는 서문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페미니즘의 정의를 정리해 두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쓸 때 사람들은 아마 다음 내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말하는 것일 테다.
- 관념으로서의 페미니즘: 마리 시어가 말했듯, 페미니즘은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다.
- 집단적 정치 활동으로서의 페미니즘: 벨 훅스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 지적 체계로서의 페미니즘 :철학자 낸시 하트삭에게 페미니즘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방법이자 (...) 분석 모형"이다."
저자는 책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의 의문을 던지는 논리 전개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방법"이라는 페미니즘의 하나의 정의를 충실하게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과 성차별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을 갖고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는 정의를 유념하되,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간명한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사고 과정을 체화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모든 것을 더 단순하게 만들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복잡성을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이 사회 문제, '구조적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5년 간 논리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느라 모든 힘을 쏟게 될 것이다. 전제와 결론을 뒤바꾸고 하나의 사례로 전체 구조를 부정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이들 말이다. 아무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그러므로) "여성가족부는 역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시한 첫 '공정한 인사'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이었다. 인수위의 주장대로 지역, 학력, 성별, 청년 등에 대한 고려 없이도 '실력대로' 뽑는 것이 가능했다면, 다른 대학 출신 혹은 고졸 출신보다 서울대 출신이, 청년을 비롯한 모든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보다 50대가, 여성보다는 남성이 이 사회에서 더 실력이 있다는 뜻일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로 여성가족부를 해체해도 될만큼 차별이 해소됐다면 이 인사에서는 이론적으로, '저절로' 모든 연령대, 모든 학력, 모든 지역, 모든 젠더의 인사가 고르게 모였을 것이다. 서울대 출신 50대 이상 남성이 핵심 권력 집단에 포진하는 익숙한 그림을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차별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세상', 익숙한 과거의 모습이다. 이미 고학력 중년 남성이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서 지역, 젠더, 학력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공정한 선발'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많은 나라, 많은 정부에서 소수자에 대한 할당제를 권고하고 시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4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7년까지 회원국 상장기업의 이사진 3명 중 1명을 여성 이사로 선임하는 규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편 모두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근거 없이 '우기는' 사람들에게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실은 우리는 더 나아간 논의를 할 수 있었고, 또 하고 있었지만) 성차별과 페미니즘에 대해 사고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논쟁할 수 있다. 사고하지 않으면 어느 정부에서 법과 제도를 바꿔도, 여성가족부라는 부처를 만들어도, 논리 없이 우기는 이들, 전제와 결과를 뒤바꾸고 '과거'를 '미래'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쉽게 무너진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사고하는 방법 그 자체를 배울 수 있다.
더불어 책에서 제시된 것처럼, 그리고 최근 내 취재 경험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그리고 차별과 싸우고 평등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준다.
"페미니스트는 왜 페미니즘을 하는 걸까? (...) 그들은 페미니즘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그들이 다른 여성과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게 만들어줬고, 급진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약화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했다고 말했다. 많은 이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똑같이 불편을 느끼는 여성 공동체를 발견한 뒤 안도했다고도 했다. (...) 이들은 모두 정치적 갈등과 방해에 부딪혀야 했지만, 미래에 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페미니즘은 낙관을 가져다줍니다. 페미니즘은 변화를 창조할 기회를 주니까요.'
오늘날 페미니즘이 맞닥뜨린 과제가 무엇이건 간에, 이러한 낙관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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