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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으로 살아남기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20~21화

20. 3금과 세 가지 각오

"여러분 남부군에 합류한 것을 축하합니다. 모두 자축하는 의미에서 박수 한번 칩시다."

이현상은 단심폭포 앞에 모인 빨치산들에게 사기진작을 위해 축하박수를 치라고 했다. 단심폭포는 뱀사골계곡에서 올라가면 있는 폭포로 나지막하고 수량도 적은 폭포지만 그 앞에 넓은 공터가 있어 새로 빨치산이 되면 폭포의 이름처럼 붉은 마음을 조국을 위해 바칠 것을 맹세하는 행사 등이 열리던 장소다. 박수가 끝나자 이현상은 강의를 시작했다.

"빨치산이 되려면 3금과 세 가지 각오를 해야 합니다. 3금은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피해야 할 세 가지인데 능선과 연기와 소리입니다. 연기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화력이 좋지만 연기가 안 나는 땡감나무, 싸리나무로 밥을 하고 연료로 써야 합니다. 행군을 할 때도 능선을 따라가면 눈에 뜨이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물론 소리도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적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새 대원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의 생생한 산교육을 경청했다.

"대장님, 세 가지 각오는 뭐지요?"

"굶어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 총 맞아 죽을 각오입니다."

모두들 숙연해졌다.

이현상 부대를 비롯한 빨치산들을 제일 괴롭힌 것은 토벌대보다 굶주림과 추위였다. 특히 겨울의 지리산은 혹독했다. 먹을 것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뼈를 에는 추위에 동상이 걸리는 것은 예사였다. 눈이 오면 발자국이 남기 때문에 식량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 갈수도 없고 움직임이 극히 제한됐다. 여름에도 비가 오는 장마철에는 비에 젖은 싸리나무 등이 잘 타지 않을 뿐 더러 매캐한 연기가 나 음식 만들기를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흔했다.

▲ 원경이 이현상을 따라 생활했던 지리산 ⓒ손호철

병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현상은 사병들과 똑같이 먹고 생활했지만, 어린 병삼에게는 최우선적으로 먹을 것을 배려해줬다. 소금만 넣은 희멀건 탕이라 백운탕(白雲湯)이라고 부르는 국이라도 한 그릇 더 퍼 줬다. 그래도 식량이 부족할 때는 병삼이도 어쩔 수 없었다. 특히 토벌대에 쫒길 때는 밥을 해 먹을 수가 없어 생쌀을 씹어 먹고 바위 틈새로 떨어지는 물로 연명했다.

이현상 부대는 적에게 들키지 않고 적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전투나 회의가 있지 않는 한 분산해 생활했다. 서너 명이 무리를 지어서 아지트를 만들고 잠을 잤다. 병삼이는 한산스님, 이현상 아저씨와 함께 빗점골에 가까운 동굴아지트에서 잠을 자고 생활했다. 동굴 속이라 바깥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한겨울의 추위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한 여자 빨치산이 들어와 넷이 자기 시작했다. 하수복이라는 빨치산 위생병으로 이현상 아저씨의 애인이었다.

▲ 빨치산 복장. 복장 뒤에 동상에 걸려 뭉개진 빨치산의 발사진이 그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뱀사골 역사관 전시 자료

이현상 부대는 계속 움직였기 때문에 병삼도 같이 이동해야 했다. 특히 작전이 있을 경우 이들은 산을 구보로 움직였는데 어린 병삼은 이들로부터 낙오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했다.

"아~ 이현상 아저씨와 한산스님은 어디 갔지?"

어느 날 토벌대의 공격을 받고 병삼은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 다른 산으로 도피했다. 헌데 병삼이 뒤따라서 달린 한 호위대원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현상 부대의 본대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호위대원은 본대를 찾기 위해 병삼이를 데리고 근 한 달 산속을 헤매야 했다. 이현상도 수색대를 풀어 병삼이를 열심히 찾았다.

"뻐꾹 뻐꾹"

"병삼아, 드디어 찾은 것 같다."

"예?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잘 들어봐라. 뻐꾸기 소리 들리지?"

"예."

"그 소리가 본대에서 보내는 신호란다."

뻐꾸기 소리 덕분에 병삼은 한 달 만에 한산스님, 이현상 아저씨와 재회할 수 있었다.

21. 가짜 이현상

"아저씨!"

그는 이현상 아저씨를 보자 반갑게 달려가 매달렸다. 헌데 그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이현상 아저씨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병삼이가 "아저씨"하고 달려가면 "우리 병삼이"하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하지만 아저씨는 병삼이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아, 아저씨가 왜 저러지?"

병삼이 의아해하는데, 뒤따라온 한산스님이 급하게 현준을 불렸다.

"현준아 저리로 가자."

"스님, 왜요?"

스님은 현준을 끌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한산은 병삼에게 주의를 줬다.

"현준아, 혹 네가 보기에 이현상 아저씨가 이상하더라도 내색을 하면 안 된다."

"왜요?"

"참 설명하기가 그렇구나."

"…"

"아저씨를 헤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저씨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으로 가짜 이현상 아저씨를 만들어 세워놓은 것이란다."

병삼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 이현상의 삶을 심층연구한 안재성 작가의 <이현상평전> ⓒ실천문학사

하지만 갑자기 얼마 전 있었던 폭발사고가 생각났다.

'펑'

한 달 전 누군가 수류탄을 이현상 부대에 던졌다. 수류탄은 터졌지만, 다행히 이현상은 다치지 않았다.

이현상 부대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난리가 났다.

"누가 수류탄을 던졌지?"

토벌대가 여기까지 침투해 들어와 수류탄을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부소행이었다.

"내부의 누구?"

"아마도 북에서 자객을 보낸 것 같습니다."

남쪽의 빨치산부대와 북군 정규군 간에는 상당한 알력이 있어왔다는 점, 특히 이현상은 반김일성주의자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능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동지, 아무래도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스님, 무슨 대책을?"

"이 동지 부대원 중에 체격이나 용모가 이 동지를 빼어 닮은 친구가 있더군요."

"아, 김학성 동지요? 저를 닮아서 사람들이 가끔 저와 착각을 하지요."

"그러니까요. 그 동지에게 이 사령관 복장을 입혀 대리역할을 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토벌대에 혼선을 일으킬 뿐 아니라 암살에 대비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지요."

"역시 스님이십니다. 좋은 계획입니다."

▲ 의신마을 지리산역사관에 진열되어 있는 빨치산의 무기들. 이들은 무기가 열악한다데다 북한의 보급품 공급거부로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지리산역사관 자료 사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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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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