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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곡 유인호 선생 마이크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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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곡 유인호 선생 마이크 잡다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 4

김구학회(대표 한동우)의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 중 10편을 골라 주 2회(수, 토요일)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김구, 조봉암 등 선열들이 오늘의 시대 상황을 직시하며 나라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민족의 존엄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겨레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독백 형식의 글이다. 모든 글은 선열들이 남긴 기록들, 행적들, 역사적 사실들 등을 토대로 하여 필자의 의견을 가미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네이버 블로그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에는(https://blog.naver.com/tongwoohn/222631939375) 2020년 7월 이후의 모든 연재 글( 25편)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일곡(유인호) 선생 마이크 잡다'는 지난 9일 발행 예정이었으나, 20대 대통령 선거일로 인해 순연돼 12일 발행된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편집자

1. 김구 선생 마이크 잡다

2. 죽산 선생 마이크 잡다

3. 마륵사(마륵사) 선생 마이크 잡다

4. 일곡(유인호) 선생 마이크 잡다

5. 김재준 목사 마이크 잡다

6. 강원룡 목사 마이크 잡다

7. 스코필드 박사 마이크 잡다

8. 서인주 도사 마이크 잡다

9. 이지 스톤 마이크 잡다

10. 땅 속 운동권 마이크 잡다

꼬박 30년 만에 한국 사회를 향해 이야기를 걸어봅니다. 1991년 8월, 중앙대에서 정년을 앞둔 나는 ‘경제학의 수난과 영광’이란 제목으로 고별강연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강연은 내가 생전에 우리 사회를 향해 내놓은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정년은 제2의 인생의 시작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게 그것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과 같았습니다. 정년과 함께 찾아온 병마에 휘둘리면서 새로운 인생은커녕 한국 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주장조차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 기회가 나에게 무척 각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입니다. 이하에서는 내가 주장해왔던 민중경제학의 입장에서 한국경제에 대해 거론하겠습니다.

▲일곡 유인호 선생 

'세계 10위권 한국경제'의 그림자

오랜만에 한국 사회를 둘러보니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행진은 1998년 이후 흑자 기조로 완전히 돌아섰고,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더불어 한국은 기술강국,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듯 보입니다. 게다가 K-반도체, K-배터리, K-바이오 등 이른바 ‘K~ ’시리즈로 불리는 자랑거리들이 가위 전 분야에 확장되고 있습니다. 1991년 당시 한국은 개발연대를 거쳐 압축성장을 이뤄낸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고만고만한 중진국 경제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변화는 당시와 비교하기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30년 새 한국은 그야말로 몰라볼 정도의 도약을 이룬 셈입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 3월, 202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조 6,240억 달러를 기록해 캐나다를 제치고 세계 9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경제의 위상이 ‘세계 10위권’임을 나라 안팎에 거듭 각인시키는 발표 내용입니다. 한국경제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요즈음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도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7월 2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68회 무역개발이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선진국으로 공식 자리매김했습니다.

UNCTAD는 64년 유엔이 개발도상국의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기구이며, 현재 회원국은 194개국으로 A(아시아·아프리카 국가), B(선진국), C(중남미 국가), D(러시아 및 동유럽 국가) 등 4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은 100여 개 국가와 함께 A그룹에 속해 있었고, B그룹에서는 의결권이 없는 옵서버로만 활동해 왔습니다. 이번 이사회 결정에 따라 한국은 B그룹, 즉 선진국 그룹으로 공식 지위가 변경된 것입니다. 그간 UNCTAD 회원국 중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그보다 앞선 지난 2009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DAC는 전 세계 대외원조의 90%를 담당하는 선진국 그룹입니다. 한국이 DAC의 일원이 되었음은 국제사회가 한국을 ‘원조 선진국’으로 인정했음을 뜻합니다. 과거 원조 수혜국이었던 나라가 꾸준히 성장 발전하여 원조 공여국으로 변신한 것도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이후 한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G20의 주요 국가로 떠올랐으며, 올 6월 영국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는 호주, 유럽연합(EU)과 더불어 공식 초청됐을 만큼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45년 8월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이어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을 겪었던 최빈국 한국이 70여 년 만에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분명 자랑스러운 한국입니다. 그러나 ‘세계 10위권 한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나열한 한국경제의 긍정적인 수치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자랑거리들은 어쩌면 밝게 드러난 겉모습일 뿐입니다. 특히 그 수치들은 전체 규모를 가리킬 뿐 개별 경제주체들의 실체와는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은 양극화가 매우 심각합니다. GDP나 1인당 국민총소득(GNI) 규모는 선진국에 필적할 정도로 커졌지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편입니다. 양극화가 워낙 심한 미국을 예외로 한다면 2019년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6.3%로 10%대 초반인 OECD 회원국들의 평균치를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0%를 웃도는 등 최악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득분배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에도 비슷한 양극화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니계수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 등 무엇을 평가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들쭉날쭉하여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 및 복지 조사’에 따르면, 가처분소득으로 측정한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1년 이래 계속 낮아지고 있어서 분배가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나고는 있으나 OECD 36개 회원국과 비교하면 28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표상으로도 한국의 소득분배 불평등도는 아직 높은 수준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2021년 6월 통계청 ‘고용동향’에 드러나 있는 바와 같이 615만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존재, 556만 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 ‘무급 자영업자 가족종사자’ 108만 명 등도 우리의 관심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 임금은 정규직의 약 6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양극화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전체 취업자의 25%를 넘나들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자영업자 비율 또한 취업구조의 영세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위험한 산업현장은 비정규직이나 하청기업에 떠넘겨지고 있어서 ‘위험의 외주화’가 관행처럼 빚어지고 있고, 그 결과 산재 사망자는 매년 800명대를 웃돌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세계 10위권 한국경제’의 속살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거나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의 눈부신 겉모양은 그저 일부 계층만의 자랑거리일 뿐입니다.

당파성은 민중경제학의 책무

그간 내가 견지해온 경제분석의 원칙은 성장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나의 지적이 지나칠 정도로 어두운 면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나는 70년대 후반 박정희 유신정권 때, 그리고 80년대 초 해직 교수 시절 재야 그룹들과 강연회를 자주 개최했습니다. 강연 때마다 나는 한국경제의 만성적인 문제점, 즉 외자유치형 구조, 수출‧대기업 중심의 지원정책, 농업을 희생시키는 저곡가-저임금 정책 등이 이어진다면 한국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어느 날 강연회를 함께 꾸려가던 동료 한 분이 농반진반으로 “유 교수님은 한국경제가 망한다고 얘기한 지가 한참인데 한국경제는 대체 왜 안 망합니까?”하고 질타했습니다. 하여 “기독교에서는 지난 2000년 내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해왔는데도 예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말해온 것은 겨우 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잖아요”라고 대꾸하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누가 제 나라 경제가 망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이 점점 누적되고 있다는 점을 증언하는 데 있었습니다. 개발연대 한국 정부가 선택한 한국형 성장방식, 즉 ‘정부‧외자‧대기업‧해외시장 주도형’ 방식은 최단기간 내 후진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자랑하며 말할 때는 꽤 효과적이고 우월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식량‧원재료의 대외 의존구조, 경제의 이중‧삼중구조(농업과 공업,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근로자 등)의 대립과 갈등, 내수 취약, 양극화, 환경 애로 등 무수히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와 같은 경고와 더불어 나는 강연에서 민중경제학의 당파성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시조 알프레드 마샬이 ‘경제학원리(Principles of Economics, 1890)’를 내놓은 이래 경제학은 사회적 실천 현장으로부터 유리되어 순전히 경제 현상만을 취급하는 이른바 순수경제학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의미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오늘날 경제학은 ‘순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경제적 수치들만을 나열할 정도로 왜소해졌습니다. 정량(定量) 지표에만 주목하고 그 이면에 담긴 내용을 따져보는 정성(定性) 분석에는 소홀했습니다. 이전보다 늘어난 GDP, 성장률, 수출액, 1인당 GNI 등을 과시하듯 거론하는 데에만 열심인 듯 보입니다. 이러한 지표로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민중경제학은 다릅니다. 경제학은 그 자체로 실천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분야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의 실천적 성격을 강조하려면 경제분석의 기준부터 우선 달라져야 합니다. 그 기준은 민중, 민족, 민주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에 맞춰서 현실을 평가하고 나아갈 방향을 거론해야 마땅합니다. 당시 나는 한국경제가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했기에 경고를 쏟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중과 민족과 민주를 앞세우는 것이 어쩌면 매우 당파적으로 비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민중경제학은 그와 같은 당파성을 발휘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당파성은 민중경제학의 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 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잠재력이 자발적으로 동원될 수 있고, 모두가 자유로이 말하고 행동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높여가는 방향을 추구할 때 비로소 개별 경제주체들의 삶이 구현될 수 있습니다. ‘세계 10위권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로 민중, 민족, 민주가 가이드라인 역할을 맡을 때 비로소 제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민중경제학의 복원 절실하다

민중, 민족, 민주가 가치 기준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나는 ‘민중경제론’(1982) 서문에서 “70년대란 … 권력과 민중의 대결장이었으며 대결의 지속은 ‘민중시대의 개막’을 알리게 하였다. … 역사는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고서는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이며 경제의 주인은 민중”이라고 썼습니다. 우리 민중은 식민지 시기의 피지배자였고, 매판 관료에 휘둘려온 백성이요, 반봉건적 생산 관계 속에서 억눌린 사람들이며, 대외 의존성이 팽만한 경제구조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중은 피해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민중은 직접적인 생산자로서 때로는 정치 권력에 저항하고 정치 운동에 참여하면서 여러 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민중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요, 주체입니다.

민족을 대외적인 자주성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민중은 우리 사회 내부의 힘 관계에서 밀리고 처진 이들입니다. 따라서 민중과 민족은 같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이미 70여 년을 지내온 만큼 민족 개념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옅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분단 체제는 여전히 강고하고, 구 식민지 지배국인 일본과의 관계 또한 말끔히 정리되지 않아 대립적 갈등 상황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민족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는 민중과 민족의 상호 결합 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 제기하는 것입니다. 특히 민주는 절차적 공정성, 투명성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은 내가 80년 서울의 봄을 겪으면서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경제 기본권 7가지 규정’(1980)을 제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 전문가들 대부분은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새로 마련해야 할 헌법 내용과 관련해 ‘정치‧권력구조의 개편’에 대해 주로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경제문제를 더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 기본권 7가지 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분명한 민중의 이익을 희생시킴으로써 형성된 개인의 재산이라고 판정될 때는 그 재산은 민중에게 귀속되어야 하며, 재산권의 행사는 민중에게 있다.

2. 경제질서는 민중의 기초적 수요를 충족하고 균형 있는 민족경제의 자주화‧자립화를 실현하는 방향에서 조정되어야 하며, 항상 사회적 계층 간의 경제적 균형이 유지될 수 있는 ‘경제활동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야 한다.

3. 근로자와 농어민 그리고 소상품생산자를 위시한 사회적 약자의 경제적 지위는 보장되어야 하고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희생의 강요는 배제되어야 하며 국가권력의 경제활동(재정‧금융적 활동) 확대에 따른 희생에서도 보호되어야 한다.

4. 근로자‧농어민‧소상품 생산자의 권리는 법률로써 제한되지 않으며, 다만 그 권리의 행사가 민중의 생활과 민족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저해적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5. 경제력의 집중에 따른 사회적 형평의 교란은 그 책임을 국가권력이 져야 하므로, 국가권력은 경제력의 집중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가져야 한다.

6. 모든 국민은 노동할 권리를 가지며 정당한 노동 대가를 요구할 수 있으며 또 이것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7. 어떠한 이유에서나 ‘생활환경’을 파괴하는 산업활동은 없어야 하며 그것에 의한 파괴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보상되어야 한다.

민중, 민족, 민주의 의미를 다시 살펴봤습니다만, 이 세 가지 주제어를 포괄하는 것은 역시 민중입니다. 나는 이를 통틀어 민중경제학이라 부릅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민족과 민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중의 삶이 대외적 자주성 확보라는 의미로서의 민족을 염두에 두고, 절차적 수단으로서의 민주로 무장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민중경제학이 개발연대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데 쓰였던 과거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민중경제학은 바로 오늘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시대정신이라고 봅니다.

민중경제학은 생명‧생태경제학이라야

또 하나 역점을 뒀던 분야는 에너지 가격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나는 6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유공장 국영화’를 통해 가격조절기능을 정부가 확보해 국제 석유 메이저사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가격안정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70년대 1,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는 국내 자원 활용 주도형 성장전략 차원에서 국내 채탄량을 늘리는 한편 대체에너지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사정부는 정유공장 민영화를 택했고, 국내 탄광은 가격경쟁력에 떼밀려 매년 채탄량을 줄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이후 늘 국제 에너지값에 휘둘리는 사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석에너지 사용의 종언이 거론되고 있는 지금 과거의 석유, 석탄 사용과 관련된 나의 주장은 의미 없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는 생활물가와 직결되어 있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환경문제와도 깊이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함의가 매우 큰 분야입니다. 한국경제는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대외의존의 상시화’, ‘낭비형의 고정화’,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ies)의 누적’ 등의 특징을 갖게 되면서 그 결과로서 공해, 이른바 생활환경의 파괴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원자력발전에 대해 저비용‧고효율의 탄소 중립적일 뿐 아니라 산업으로서도 부가가치가 큰 분야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예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원전은 잠재적 위험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정부가 원전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 언론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내세워 원전 폐기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탈원전이 아니라 ‘탈우라늄원전 정책’입니다. 현재의 우라늄을 이용하는 원전은 폭발 위험은 물론 핵폐기물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지금 세계는 우라늄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즉 폭발 위험과 핵폐기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의 차세대 원전을 다투어 개발하는 중입니다. 그중 하나가 수소와 수소를 결합하는 방식의 핵융합원전인데 이 방식에서는 플루토늄이 나오지 않습니다. 현재 KAIST에서 개발 중인 K-STAR도 바로 그것입니다. ‘인공태양’이란 별명이 붙은 핵융합원전이 20년 안에 등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합니다. 그때까지 현 우라늄원전 사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대체에너지 개발을 확대하고 때가 되면 새로운 원전 방식으로 갈아타자는 것이 현 정부의 원전 정책이라고 봅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에너지정책 대전환의 시대에 들어선 것입니다.

핵융합원전 개발을 위해서는 많은 개발자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값싸고 안정적이며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을 마련하자는 노력은 대단히 의미 있는 과제입니다. 이미 유럽 주요 자동차회사들은 휘발유와 경유 등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개발을 2033년 이후에는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시도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등록을 전면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변화는 빠르게 이어질 것입니다.

경제학 관점에서 처음으로 공해‧환경문제를 다뤘던 나의 논문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창작과비평, 1973년 가을호)를 발표한 이래 50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환경문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류의 경제생활이 계속되는 한 이 문제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특별히 이 문제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환경문제가 심각할수록 사회 저변에 있는 민중들의 삶은 더욱 핍박을 겪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경문제로 인한 기후변화가 이어져 이상기온 사태라도 벌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민중들은 혹한과 폭염에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정책, 환경문제, 생태계 등이 민중경제학의 주요 이슈로 거론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민중경제학은 생명‧생태경제학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경제는 민중경제의 다른 이름

물가안정과 관련해 생활경제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의식주 가운데 거주비용의 급등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경제는 부동산시장 급등에 따른 거주권의 불안정성이 매우 심각합니다.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룬 탓에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급증으로 인해 도심 지역의 주택수요를 주택공급이 따라주지 못해 생겨난 주택가격 상승은 개발연대 이후 꾸준히 이어진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전국이 부동산 투기시장으로 치달아 가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부동산시장이 요동칠수록 민중의 경제생활은 극단으로 내몰립니다. 민중경제학의 당파성 차원에서도 부동산시장에 대한 해법 모색은 매우 시급합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주택이 거주의 수단이 아니라 자산증식의 도구로 활용되었고, 때론 정부가 주택정책을 주거복지 차원이 아니라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악용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경기부양 목적으로 주택공급이 추진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해법은 두 가지입니다. 투기적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통한 주택안정화 정책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우선 투기적 수요와 거주 목적의 수요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주택공급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불가능한 과제입니다.

어렵게 꼬여있는 문제일수록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대응이 주요합니다. 늘 부동산시장 악화는 정부의 섣부른 대응이 화를 키우고 있다고 봅니다. 당장 문제 해결을 꾀할수록 거꾸로 상황은 악화되곤 합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택공급을 꾸준히 늘리고 특히 사회초년생을 비롯한 주택 약자들에게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해야 합니다. 부동산과 관련해 징벌적 세제를 당장 강화하기보다 점진적으로 대응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나는 오래전 한국 자본주의의 기본성격을 독과점형 산업, 중소형 산업, 영세농경형 산업이라는 ‘삼중화 구조’라고 판단했습니다. 삼중화 구조 간의 격차 또한 확대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에서는 모습과 성격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 기본성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독과점형 산업의 대표는 대기업집단, 즉 재벌입니다. 영세농경형 산업은 영세농을 포함한 ‘자영업자 등’으로 치환 가능할 것입니다. 최상층에 자리한 재벌은 기술력이나 부가가치 생산에서 한국경제를 견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을 압박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여기에 일부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형 산업 종사자, 자영업자 등이 그 틈바구니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합니다. 폭등하는 부동산시장에 시달리는 주체들도 바로 그들입니다. 대기업집단은 시장 지배자로서 하청관계를 통해 중소형 산업을 압박하고, 소비자 위에 군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농업협업화의 목표가 농민의 지위 향상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중경제학은 중소형 산업 종사자, 자영업자 등의 지위 향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한편, 삼중화 구조의 격차 확대를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세계 각국은 ‘Industry 4.0’(독일), ‘Society 5.0’(일본), ‘제조 2025’(중국)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세대 성장 동력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려는 노력은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전문가마다 4차 산업혁명을 앞세우며 새로운 도약을 거론합니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관심과 전략적 투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개발연대 이래로 한국경제 내부에 쌓여온 외상장부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외상장부는 당연히 대가를 치렀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지불되지 않은 목록입니다. 이는 민중의 삶, 민중의 경제생활이라는 눈높이에서 볼 때 사회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민중의 환경‧생명적 안정성이 억눌리는 데서 오는 고통에 대한 회복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앞만 보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아예 잊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치러야 할 규모가 너무나 커서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정리하지 않은 외상장부는 결코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전혀 엉뚱한 시기에 기묘한 형태로 대가를 치르게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요 몇 년 새 한국 사회 안에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스페인에서는 ‘사회적경제법’의 기본원칙을 네 가지로 요약합니다.

1) 자본보다 인간 및 사회적 목표를 우선시한다.

2) 경제활동으로 얻은 결과는 남녀 조합원 혹은 단체 고유의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

3) 단체의 내부적 연대는 물론 지역발전, 남녀의 기회 평등, 사회적 결속, 사회적 배제에 처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의 통합, 안정적인 양질의 고용 창출, 개인 및 가족의 삶과 노동의 조화,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사회와의 연대를 촉진한다.

4) 공공기관에 대한 독립성을 유지한다.

사회적경제는 해당 조직 내, 즉 조합원들의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민중경제학의 일반적인 대상 범주와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이윤 추구 목적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가치구현, 이를 수행하기 위해 민주적 소유 및 지배구조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민중경제학이 중시하는 가치 기준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회적경제는 민중경제의 다른 이름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사회적경제기본법은 몇 년째 국회에 묶여 있습니다. 앞서 거론한 ‘경제기본권 7가지 규정’과 관련해 보완해야 할 내용을 포함해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어떻든 민중경제의 복원을 위한 노력은 4차 산업혁명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발언을 마쳐야 하겠습니다. 30년 만에 펼쳐본 강연이라서 그런지 두서도 없고 중언부언만 한 것 같습니다. 경제 이슈로 제 얘기를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덕담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최근 들어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의 한국에 대한 평가가 이전과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미래 대화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배경에는 한국경제가 비록 내부적으로는 문제점을 적잖이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경제의 존재감, 즉 질적·양적 성장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나는 그에 더하여,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내용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악전고투하며 어렵게 키워온 민주주의의 성과와 우리 나름으로 뿌리내려온 전통이 그들의 눈높이에 충분히 걸맞은 상대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서구권에서 한국만큼의 민주주의를 꽃피워온 나라는 사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패권 국가로 도약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리가 날로 강화되고 있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던 선진국 일본마저도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해가 다르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세 나라 가운데 유독 한국이 돋보이는 상황입니다. 앞서 제기한 민중, 민족, 민주의 기준을 더욱 다지며 보완해 간다면 한국은 경제 부문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존경받는 나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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