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윤석열 당선인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 그리고 국회의 여소야대 지형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이제 복기의 시간이고 해석의 시간이다. 마침 전국 단위 선거는 또 있다. 6월 1일 민선 8기 지방선거다.
지금, 민주당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대선 패배 원인을 '남탓', 더 구체적으로 '심상정 탓', '이낙연 탓'으로 돌리는 일이다. 패배한 진영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심상정 탓'은 사실도 아니다. 오히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민주당 탓'을 해야 맞다. 정의당 지지자 상당수가 윤석열 후보의 부상으로 인한 양당 구도 공고화를 감지하며 '전략적 이탈'을 했고, '심상정을 찍으려 했으나 눈물을 머금고 이재명을 찍는다'는 여성 유권자도 심심찮게 존재했다. 출구조사 결과 20대 이하 여성의 58%가 이재명을 선택해 줬다. 민주당은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한다. 게다가 안철수의 '투항'을 비판하는 이들이 심상정의 '완주'를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심상정의 득표율과 이재명의 득표율을 합하면 50.2%로 투표자 과반을 넘어선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후보에 대한 적극 비토층이 국민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다. 애써 정체성도, 태생도 다른 정당의 후보를 비판해 봐야 돌아오는 것은 없다.
'이낙연 탓'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오롯이 민주당의 선거였다. 이낙연 전 대표는 자신의 경쟁자를 위해 총괄선대위원장을 수락했고, 선대위가 흔들릴 때마다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했다. 선거에서 드러난 표 수 차이로 셈을 해 다른 누구 탓을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1997년 이회창 지지자가 이인제 탓을 하고, 2012년 문재인 지지자가 안철수 탓을 하는 것처럼, 이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결과는 나왔고, 득표율의 함의를 따져보며 민주당의 향후 행보를 차분히 그려보는 게 훨씬 도움되는 일이다.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것 몇 개 있다. 6월 1일 지방선거를 '잘 지는 선거'로 만드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리라 예측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듬해 치러진 4월 총선은 한나라당의 돌풍이었다. '타운돌이'(뉴타운 공약으로 대거 당선된 한나라당 서울 초선 의원들)가 탄생했고, 압도적 승리로 국회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후광효과였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을 때 정동영 후보와 표 차이는 530만 표였다. 당시 민주당은 분열했고, 정당을 깨고 만들고 반복해 비주류였던 손학규 대표를 내세웠지만, 정동영 등 '올드 보이'가 대거 출마한 이듬해 총선은 대패로 귀결됐다.
'이번 대선 표차는 25만 표 차이라 다를 것이다'라는 말은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윤석열의 선거'다.
먼저 국민의힘의 예상 전략을 살펴보자. 첫째, '윤석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것이다. 170석 야당에 포위된 윤석열 당선인의 처지를 어필하며 지지자의 '위기의식'과, 중도층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전략이다. 둘째, 대선 승리의 기세를 몰아 민주당 지방 행정을 심판해달라는 '심판론'이다. 특히 민주당의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 낙마의 악몽을 적극 이용할 것이다. 민주당이 여기에 정면으로 맞선다고 해선 승산이 없다. 특히 새로 선출된 대통령을 공격해봐야 소용이 없다.
인물론 역시 한계가 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를 사실상 '싹쓸이'한 민주당의 이번 선거 도전자들은 대부분 '수성'을 해야 하는 처지이며 '재선' 이상에 도전해야 하는 처지다. 심판의 대상이지, 미래의 상징이 아니다.
첫째, '수성'을 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는 이번 대선에서 47.8% 득표율을 기록한 이재명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발견했다. 이재명은 선대위 고문에 이름을 올리고 전국을 뛰어다니며 '이재명의 대선 캠페인'의 연장에서 네거티브를 지양하고 개혁을 내세워야 한다. 인물론도 덤이다. 이번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유권자는 기득권 '민주당의 낡음'이, 비주류 '이재명의 신선함'으로 일부 상쇄된 걸 목격했다. 그의 깔끔한 승복 연설을 통해 '이재명 재평가'가 이뤄지는 움직임도 있다.
둘째, 지방의회 선거구 개혁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지방의회가 '민주당 과다 대표' 상태다. 조정은 반드시 이뤄진다. '얼마나 좋은 조정'이 이뤄지느냐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대선 전인 지난달 27일 의원총회를 열고 이재명 후보가 제안하고 송영길 대표가 발표한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여기엔 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방안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오는 6.1 지방선거에서부터 2인 선거구 폐지, 3인이상 중대선거구 개편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당제를 지방의회부터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움직인다.
셋째, 가장 중요하다. 상징적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지방선거를 승패와 상관 없이 '세대 교체'와 '정치 신인' 발굴의 무대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지난 재보선 패배 지역인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와 민주당의 상징적 지역인 광주시장 선거에 정치 신인을 내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30대, 40대 신인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 부산시장 선거, 광주시장 선거에 나서면 어떨까. 이 지점에선 '이준석 식 캠페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준석이 구현한 '청년 보좌역' 중심의 참모그룹 구성과 '후보 직보' 시스템은, 비록 그들이 만든 '갈라치기' 캠페인 자체가 허상이었더라도 그 형식만은 참신했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광주시장 선거만이라도 중앙당이 손을 떼고, 20, 30 민주당 젊은 전략가들에게 전적으로 선거를 맡겨 보는 것이다. 패해도 상관 없다.
선거에 패하더라도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선거를 통해 발굴한 '신진 세력'은 민주당 미래의 든든한 자산이 된다. 세대 교체와 신진 발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0선? 이준석을 보고 윤석열을 보라. 이미 기득권 이미지가 가득한 'n선 586 후보'의 노회한 이미지나 '지역 한정 토호 셀럽' 후보로는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 패배가 될 가능성만 크다. 민주당이 할 일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다음 총선과 대선을 맞이할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지방선거를 정치 실험과 세대교체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도 졌는데 잃을 게 뭐가 있나? 오히려 개혁의 적기가 될 수 있다.
'잘 지는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사즉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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