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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대리 판교장터 그 여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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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대리 판교장터 그 여름의 끝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복대리 판교장터 미군기폭격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복대리 판교장터 그 여름의 끝

(복대리 판교장터 미군기폭격 희생자추모 위령제에 부쳐)

여름이 끝나갈 무렵

1950년 9월 10일 인천상륙작전 5일 전

그날은 판교 장날 이었답니다

현암리 장터를 못 열게 하자 시골 사람들은

모두 구장터 방향으로 모여든 거지요

판교국교 뒤편 판교리 복대리에

국도를 따라 임 시장이 선 거예요

인민군 장교가 탄 삼륜오토바이가

흙먼지 일으키며 부여 방향으로 사라진 뒤

갑자기 나타난 쌕쌕이 비행기 소리에 하늘을 보니

F-51 무스탕 프로펠러 미군기 2대가

교대로 상승 급강하하며, 따다다다다다~~

장터 장꾼들에게 무차별 기관총 사격을 한거예요

인민군 삼륜오토바이는 멀리 도망간 뒤였어요

시골 장터는 한순간 즉사한 사람들의 피와

창자가 터져 나온사람 팔과 다리가 잘린 사람들로

온통 피바다 아수라장이 되고, 그때

40명이 죽고 다친 사람까지 100명이라 합니다.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르고 식구와 친척들끼리

들것에 옮겨 거적을 덮어 그냥 묻었답니다

판교국민학교 두 개의 교실에 시신들을 임시로 모셨다가

홍산 옥산 미산 문산 종천 시초 서천까지 가족들이 소문을 듣고

들것으로 우마차로 시신을 찾아 갔답니다

다친 사람들은 동일주조장 옆 송의사 병원에 넘쳐났답니다.

치료약은 빨간 아까징기와 하얀 다이아진가루약 뿐이었답니다.

왜 미군은 시골 장터에 무차별 사격을 했을까요?

진실은 묻혀버린 채로 벌써 71년이 흘렀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사과도 없이 지금도 오후만 되면

미군기가 폭음을 내며 우리의 머리 위로 날아갑니다

이만 평의 영동 황간 노근리처럼, 우리는

위령탑이나 추모공원 하나도 세우지 못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 그때 다친 분까지 모두 돌아가시고 없습니다

오늘 돌아가신 100명 원혼들에게 삼가 엎드려 비옵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우리들을

부족한 우리들을 부디 용서하소서

이제 우리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 추모제. ⓒ정완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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