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박자가 맞아들어 가고 있어요.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하는데, 드디어 때가 된 것 같아요."
김춘삼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대표의 말에서 흥분과 확신이 함께 느껴진다. 최근 납북귀환어부 문제 해결에 '순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건설호-풍성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과 함께 다른 유사한 사건들에 대한 직권조사를 결정했고, 강원도의회는 전국 최초로 납북귀환어부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모두 시민모임 창립 이후 불과 두 달여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김 대표 역시 납북귀환어부다. 그는 열다섯 살이던 1971년 납북돼 1년 뒤에 돌아왔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1983년 다시 경찰에 끌려갔다. 북에 대한 '고무찬양'이라는 죄를 뒤집어쓴 그는 2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의 억울함은 다시 30여 년이 지나, 2013년 재심 무죄 판결을 통해 조금이나마 씻길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지난 세월 납북귀환어부 문제 해결에 제 일처럼 앞장서 온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공을 돌렸다. 엄경선 시민모임 운영위원도 그중 하나다. 엄 위원은 2000년대 중반부터 기자로서 또 인권활동가로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들과 연대해왔다.
지난 2월 23일 강원 속초시 청학동 설악닷컴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20년 지나도 감옥 꿈 꾼다"… 아직도 풀지 못한 응어리
Q : 먼저 시민모임 준비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시작은 언제였나요?
엄경선(이하 엄) : 지난해 6월 25일 강원민주재단이 납북귀환어부 국가폭력 피해 토론회(민주주의포럼)를 열었어요. 그때 김 대표님과 피해자 두 분이 피해 진술을 해주셨어요. 그때가 계기가 됐어요. 2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활동이 본격화됐으니 우리도 모임을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뵀어요. 그 뒤로 운영위원들을 모시고 피해자 가족들도 모아가면서 12월 10일 창립총회를 열게 된 거죠.
Q : 대표직을 맡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담스럽지는 않으셨어요?
김춘삼(이하 김) : 제가 피해 당사자이고 나이도 젊어서 맡게 된 거죠.(웃음) 저는 열다섯 살에 북에 잡혀갔어요. 같이 간 분들은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많으셨죠. 엊그제(2월 19일) 승운호 피해자 분들이 50년 만에 처음으로 모이셨어요. 저도 같이 갔는데, 많이 울었어요. 북에 끌려갔다가 우리가 자유대한으로 돌아왔을 때는 금방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죠. 그 뒤로 그런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 가슴에서 잊히지가 않는 거예요.
제가 좀 더 열심히 하면 아직 말 못하고 숨죽이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도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이분들과 같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Q : 시민모임 출범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엄 : 지금까지 납북귀환어부 문제는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시민모임 창립을 통해서 피해자들 스스로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나섰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아직도 많은 피해자 분들이 이야기를 못 꺼내세요. 한 분은 진실규명 신청서 한 장 쓰는 데 장장 7개월이 걸렸어요. 열일곱 살에 겪은 그 일들을, 이야기는 못하고 눈물만 쏟아요. 상처가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트라우마를 벗고 나섰다는 점이 의미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김 : 제가 1983년에 다시 잡혀가서 감옥에서 2년 살고 나왔는데, 한 20년 지날 때까지 교도소에 있는 꿈을 꿨어요.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깨는 거예요. 혹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을 평생 떨칠 수가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얘기 들어보면 1년 365일 걸릴 거예요."
엄 : 김 대표님이 피해 당사자라는 게 우리 모임에선 정말 중요해요. '나도 피해 당사자이고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았다'라고 직접 얘기하는 게 다른 피해자 분들한테는 엄청나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시민모임을 만든 뒤로, 물어 물어 전국에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피해자 수에 비하면 아직도 빙산의 일각밖에 안 돼요. 많은 분들이 그 응어리를 못 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분들이 용기 내서 나설 수 있게 저희 시민모임이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분단체제 속에서 약자를 희생양 삼아… 사건 본질 주목해야"
Q : 수십 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동안 납북귀환어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김 : 과거에 한 국회의원을 찾아간 적 있어요. 이 문제는 아직 거론할 때가 아니라고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가 얘기도 못 꺼냈어요. '금언(禁言)'이었죠. 피해자 중 누구도 내가 나서겠다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누가 나선다 해도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요.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건 1기 진실화해위원회죠. 몇몇 개별사건들이 진실규명되고 재심으로 해결되기 시작했죠. 또 그때부터 많은 언론인, 법조인, 인권활동가 분들이 끈질기게 이 문제를 파헤쳐온 덕분에 이제 피해자 개인들이 쉽게 나설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분들의 공로를 저희는 잊지 못하죠.
엄 : 우리 과거사에 너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다 보니 납북귀환어부 문제는 미처 눈에 안 들어왔던 것 같아요.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분단체제와 권위주의 통치가 아주 평범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삶 자체를 파괴해버린 사건입니다. 가족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만 명 이상 되는 거죠. 피해자의 일상과 의식을 반공이란 체제에서 통제하고 공포심을 불어넣었던 사건들이기 때문에 꼭 진실규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Q : 시민모임 창립 이후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언제 체감하시나요?
김 : 사실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사회적인 성과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해보자 그랬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되고 있으니 고마운 거죠.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직권조사 소식까지 들으니 너무나 희망적이고 고무적이죠. 강원도의회에서도 조례를 통과시켜주셨고, 모든 것이 박자가 맞아들어 가고 있어요.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하는데, 드디어 때가 된 것 같아요.
엄 : 지난 1월 25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승운호 사건 조사개시를 결정하고 나서, 피해자 23명 중에 22명을 찾아냈어요. 이런 사례가 없었어요. 50년 전 사건의 피해자들을 그 짧은 시간에 찾아내는 건 피해자들 스스로 대단히 열심히 활동한 결과거든요. 갈 길은 멀지만 그런 것들이 작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Q : 지난 2월 17일 강원도의회에서 납북귀환어부 지원 조례가 통과됐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김 : 너무나 고맙더라고. 말 그대로 천군만마예요, 천군만마. 정말 이 말은 이럴 때 쓰는 말 같아요.
엄 : 2007년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전후 납북피해자 지원법)이 만들어졌는데,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지원은 배제돼 있었어요. 김 대표님도 그때 울분을 토하시곤 했죠. 그때 이후로 약 15년 만에 처음으로 강원도의회가 저희들의 외침에 응답을 해준 거죠. 납북귀환어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 정가에 이견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 활동도 공감을 많이 얻고 있어요.
Q :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활동에 더해, 어떤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김 : 납북됐다 돌아온 열다섯 살 소년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죄를 뒤집어씌운 이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인가,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정신적인 피해와 고통, 심리적인 상처는 정말 아직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런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서 국가에서 트라우마센터 같은 걸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엄 : 개별사건에서 불법 사실로 인한 인권유린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본질에도 제대로 주목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남북 분단체제 속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사건이거든요. 그런 본질을 제대로 인지하고, 남북 화해라는 큰 틀에서 이제는 좀 더 평화로운 바다를 꿈꾸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기록은 아직도 모두 국가가 쥐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자료에 접근이 안 돼요. 국가가 누구한테 피해를 입혔는지 국가 스스로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 당시 신문에는 사람 이름 박아놓고 얼굴 넣고 주소까지 다 나오게 해서 '간첩'이라고 써놨어요. 집안이 다 간첩으로 찍힌 거잖아요. 그 가족들 명예회복 어떻게 다 할 수 있겠어요? 그런 피해들을 세밀하게 연구해서 구제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살아 있는 자로서"
Q : 재심 재판부가 판결문으로 사과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를 대표해서 사과한 사람은 없나요?
엄 : 없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권고에 항상 들어가는 문구가 있잖아요, '국가 사과'. 선언적 문구로만 끝나는 거예요. 국정의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사과 한마디가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그 한마디가 납북귀환어부 문제를 푸는 결정적인 반전의 계기가 될 겁니다.
김 :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사과와 면담 요구도 도전해볼 겁니다. 이 말은 기사에 꼭 써주세요.
Q : 엄 위원님께 묻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이 문제 해결에 매진해온 이유는 뭔가요?
엄 : 마음의 빚이죠. 2007년에 납북귀환어부 기사를 쓰고 우리 지역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었죠. 다른 어떤 문제보다 저한테 절실히 다가왔다는 건 틀림없어요. 그런데 피해자 분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저한테 힘들게 말씀해주신 분들한테 제가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게 참 마음의 빚이었어요. 어떤 성과라도 그분들과 함께 만들어내고 싶어요. 이 지역의 분단의 아픔은 그렇게 해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Q : 끝으로, 아직도 피해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피해자 분들께 김 대표님이 한 말씀 해주시죠.
김 : "숨지 마십시오. 마음의 상처는 깊으시겠지만, 우리가 겪은 고통과 피해가 이제라도 밝혀진다면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라도 나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도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살아 있는 자로서 이게 제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명예롭고 자랑스럽게,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게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살아 있는 자로서."
※ 이 글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소식지 <진실화해> 5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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