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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의 철수, 다시 시작된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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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의 철수, 다시 시작된 고행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16~17화

16. 인천상륙작전

"스님, 큰일 났습니다."

정태식이 숨이 넘어가게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정 동지, 무슨 일인데 이리 소동인가요?"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답니다."

"아니 그런 일이! 낙동강에서 전선이 교착되더니 결국 허를 찔렸군요."

"예, 인천에 상륙했으니 미국 놈들이 서울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지요. 인민군도 철수준비를 하고 있고 저도 북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스님도 빨리 피란 준비를 하십시오."

"그래야겠네요. 하지만 저는 북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병삼이를 여기에서 지켜야지요. 병삼이까지 북으로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면 어떻게 하려고요?"

"이현상 동지를 찾아가야할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것 같네요. 스님 건강하시고 병삼이 잘 돌봐 주십시오. 북에 가면 이정 선생님에게 안부 전하겠습니다."(정태식은 이후 북으로 넘어가 농림부 일을 했으나 1953년 남로당 숙청작업 때 처형당했다.)

한산스님은 다시 보따리를 싸서 병삼이와 함께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남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향했다.

▲ 유엔군사령관에게 깃발을 주는 맥아더.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역전시켰다. ⓒ전쟁기념관 전시자료

"스님, 우리 어디로 가요?"

"미군이 서울로 들어온다고 해서 피란을 가는 거란다. 이현상 아저씨가 태백산맥을 타고 동해안에 있는 양양 쪽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해서 동해 쪽으로 간단다."

이현상 아저씨를 만난다고 하자, 병삼은 은근히 신이 났다. 하지만 가는 길에 보는 산하와 민초들은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피란민들이 줄을 이었고 폭격과 전투로 불타고 부서진 집들과 나무들이 즐비했다.

"스님 계곡이 너무 예뻐요."

"그렇지? 이곳이 유명한 무릉계곡이라는 곳이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거의 다 왔다."

"이현상 아저씨가 여기 있어요?"

"그건 아니지만,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찾아봐야지."

계곡을 조금 걸어가자 큰 텐트가 있고 그 앞에 인민군복을 입은 군인들과 젊은 여자들이 보였다.

"꼬마스님이 귀엽게 생겼네요.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네요. 이리 와 보세요."

젊은 예쁜 누나들이 병삼을 부르자, 병삼이 왠지 가슴이 뛰는 게 기분이 묘했다.

"꼬마스님이 고생이 많네요. 겨울이 코앞인데 옷이 그래서 어떻게 해요? 특히 여기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에요. 꼬마 스님, 잠깐 기다리세요. 저희가 겨울옷을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누나들은 병삼에게 두꺼운 옷과 장갑, 버선을 만들어줬다.

"꼬마 스님, 이건 내 선물!"

다른 한 누나가 두 귀가 달린 토끼모양의 모자를 만들어 머리에 씌워줬다.

모자를 많아 만들어 봤는지, 딱 맞았다.

"여기는 두타산이고 저 절은 삼화사란다."

"예."

▲ 한산이 인천상륙작전 후 원경을 데리고 피란간 동해의 삼화사 ⓒ손호철

헌데 한산스님은 절로 들어가지 않고 절 옆의 오솔 길로 올라갔다.

"스님, 절로 안 가나요?"

"아니다. 여기서 한참 올라가면 관음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그곳은 아무도 찾아 올 수 없는 안전한 곳이니 거기로 가야한다."

관음암으로 가는 길은 끝이 없었다.

"천이백, 천이백일, 천이백이…"

병삼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며 계단 수를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스님, 너무 힘들어요. 좀 쉬었다가 가지요."

큰 바위에서 쉬면서 아래를 내려 보자 지나온 무릉계곡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한참을 더 올라가자 작은 암자가 나타났다. 이런 곳에 어떻게 암자를 지었는데 궁금했다.

▲ 관음암에서 내려다 본 무릉계곡 ⓒ손호철

"병삼아, 다 왔다."

암자는 원래 암자라고 부르기가 뭐할 정도로 초라한 움막인 데다가 오랫동안 버려져 엉망이었다. 한산스님은 서둘러 암자를 청소했다.

"병삼아, 나는 내려가서 이현상 아저씨를 찾아 볼 터이니, 너는 여기에 꼼짝 말고 있어라."

"저 혼자요?"

병삼은 예지동 아지트에 혼자 버려졌던 생각이 나 겁이 덜컥 났다.

"그래야지 어떻게 하냐? 여기는 누구도 모르니 안전한 곳이니 걱정하지 마라."

"…"

"참, 내 정신 봐라. 깜박 잊어버릴 뻔 했다. 병삼이 이리 와보아라."

한산은 병삼을 부엌 아궁이로 불렀다. 옆에는 작은 주머니와 병이 놓여 있었다.

"여기 보리쌀과 된장이 있으니 네가 밥을 해 먹어야 한다."

"…"

"보리쌀은 한두 소끔 끓으면 먹을 수 있으니 물을 솥에 이 정도 넣고 끓이면 된다. 된장은 물에 풀어 국 끓여 먹어라."

"예."

"그리고 병삼아 이리 나와 봐라."

밖으로 나가자 한산스님은 소나무 앞으로 병삼을 데리고 가서 가지를 꺾었다.

"병삼아, 내가 빨리 오겠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혹 쌀이 떨어지면 저 언덕에 올라가 이 청솔가지를 태워라. 그러면 아버지의 부하들이 식량을 가지고 나타날 것이다."

한산스님이 떠나고 밤이 됐다, 사방에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 간간이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병삼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지리산에서 근 한 달 간 살아봤지만 그때는 한산스님과 이현상 아저씨가 같이 있어 몰랐던 공포였다. 하지만 과천에서 이곳까지 오는 오랜 여행에 지친 병삼은 잠이 들고 말았다.

"아~ 이거 밥이 제대로 안 됐네."

스님이 시키는 대로 밥을 했지만 보리밥은 제대로 익지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병삼은 보리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아침밥을 먹으면 병삼은 스님이 오나 보느라고 삼화사에서 올라온 산길이 보이는 암자 입구에 앉아 산길만 쳐다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스님은 오지 않고 보리쌀이 떨어졌다. 하루를 굶었지만 너무 배가 고팠다. 할 수 없이 스님이 이야기해준 대로 청솔을 따서 언덕에 올라가 불을 붙였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날 밤, 누군가 암자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스님이세요?"

병삼이 반가워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헌데 수염이 덥수룩한 한 젊은 남자가 무언가를 지고 다가왔다.

"쌀이 떨어졌나 보구나. 여기 보리쌀하고 된장, 소금, 그리고 남은 배추가 있어 좀 가져왔다."

"한산스님은요?"

"잘 모르겠는데, 곧 오실 것이다. 조심하고 잘 지내라."

17. 구인사에서

"스님~"

매일 같이 쭈그리고 앉아 내려다보던 산길에 익숙한 한산스님의 모습이 보였다. 병삼이 반가워 단숨에 스님에게로 뛰어 내려갔다.

"잘 있었느냐?"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혼자 잘 버텼구나. 장하다, 장해."

"이현상 아저씨는요?"

"만나지 못했다. 양양 쪽에서 북으로 넘어가려다가 실패하고 소백산맥을 타고 남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봐야겠다."

한산과 병삼은 남으로 발길을 돌렸다.

"병삼아, 바보 온달이야기를 들어봤느냐?"

"예, 학교에서는 안 배웠는데 아저씨들이 해줬어요."

"저기 산위에 보이는 것이 바보온달이 장군이 되어 신라에 쳐들어와 쌓은 온달산성이란다."

"아 그래요?"

"온달장군이 여기서 싸우다가 전사했단다."

한산은 소백산 자락에 있는 단양 영춘면에 도착한 것이다.

"이현상 아저씨가 이쪽으로 내려왔을 것인데…. 여기에 내가 잘 아는 고승이 계신단다. 우선 거기 가서 좀 쉬자구나."

소백산 제4봉인 수리봉 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자 해발 600미터가 되는 고지에 초가집 몇 채가 나타났다.

"상월 있는가?"

한산은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불렀다.

"아니 이게 누군가? 한산 아닌가? 난리통에 죽지 않고 살아있었네 그려. 반갑네."

"자네도 무탈한 것 같으니 다행이네. 허긴 여긴 이 산속 명당이니, 안전하겠지만."

"머리 깎은 저 아이는 누구인가?"

"이정 선생님 아들이네."

"아 그런가?"

상월은 병삼을 찬찬히 훑어봤다.

"쯧쯧쯧"

"상월, 왜 그러나?"

"아쉬워서 그러지."

"뭐가?"

"녀석 뒤꼭지가 한 치만 더 나왔어도 팔자가 필터인데, 뒤가 너무 약해서…"

상월은 병삼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안타까워했다.

"병삼아 내가 이현상 아저씨 찾아보러 다녀 올 테니, 큰스님 말씀 잘 듣고 있어라."

한산스님과 다시 떨어지는 것이 싫었지만, 관음암처럼 홀로 남겨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병삼아, 한산스님 오실 때까지 나랑 한문공부나 하자."

성월스님은 천자문을 꺼내 병삼에게 읽고 외우라고 했다.

"하늘 천, 따 지, 가물 현, 누루 황."

병삼은 열심히 천자문을 읽고 외웠다. 오늘이면 오시려나, 매일 기다렸지만, 한산스님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병삼은 마을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 가까운 온달동굴에 들어가 귀신놀이를 하다가 지루해지면 온달산성에 올라갔다. 온달산성에서 밑으로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병삼은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배운 무술을 가르쳐줬다. 무술훈련이 끝나면 병삼이 대장이 돼서 병정놀이도 했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 그러한 만큼, 경찰과 국군은 나쁜 놈 역할을 맡겼다.

▲ 원경이 동네 어린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던 온달산성 ⓒ손호철

병정놀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돌에 낯익은 신발이 눈에 띄었다. 한산스님의 신발이었다. 반가워 방으로 뛰어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한산, 자네가 간 뒤 내가 가르쳐보니 병삼이가 한 달 만에 천자문을 떼었네. 역시 아버지를 닮아 보통 영특한 것이 아니네."

두 분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병삼은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고 방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천자문을 가르쳤다니 고맙네. 바삐 여기저기 도망 다니느라고 가르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똑똑한 아이네."

"그래서 말인데, 저 아이를 이 전쟁 통에 어디까지 끌고 다닐 것인가? 자네에게 무슨 일이라도 나면 저 아이는 어떻게 되겠나? 차라리 나에게 맡기게. 내가 책임지고 잘 키우고 가르칠 터니."

병삼은 자기를 맡기고 가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덜컹했다.

"한산스님, 싫어요!"라고 소리치며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지만, 꾹 참았다.

한산이 이러저런 생각을 하는 듯 긴 침묵이 흘렀다.

"자네 말이 일리가 있고, 그리 신경을 써주니 고맙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정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이 아이는 내가 끝까지 돌봐야 할 것 같네. 그리고 그것이 이 아이의 운명인 것 같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어떻게 하겠나. 나무관세음보살."(상월원각대조사는 깨달음을 얻고 1966년 천태종을 중창했으며, 구인사는 1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5층짜리 콘크리트 대법당 등 50채의 전각을 가진 초대형 절로 발전했다.)

▲ 1966년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원각대조사와 구인사 ⓒ천태중앙박물관 전시자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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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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