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3일(이하 현지 시각) 백악관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인 신흥 재벌 19명과 그들의 가족 및 측근 47명의 비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일 이들의 재산을 압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백악관은 제재 대상자들이 "러시아 국민들을 희생시켜 많은 자본을 축적했고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자원을 제공했다"며 이번 추가 제재의 배경을 밝혔다.
제재 대상으로 오른 올리가르히 중에는 푸틴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인 알리세르 우스마노프가 포함됐다. 그는 러시아 철강·광물업체인 메탈로인베스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소유주다.
우스마노프는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에도 올라와 있는 인물이다. 독일은 최근 그가 소유하고 있는 초호화 요트를 함부르크의 조선소에서 압류했는데, 그의 전용기도 제재 대상 품목 명단에 명시됐다.
푸틴 대통령의 유도 연습 상대였던 아르카디 로텐베르그도 이번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 그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공사를 비롯해 크림반도와 러시아 교량 공사 등 러시아 정부로부터 굵직한 인프라 사업 계약을 따낸 바 있다.
러시아의 천연자원과 관련, 가스관 전문 건설회사 스트로이가스몬타슈의 주주인 보리스 로텐베르그와 송유관 업체인 트란스네프트 최고경영자(CEO) 니콜라이 토카레프도 제재를 받게 됐다.
푸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구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 세르게이 케메조프와 부총리를 역임했던 이고르 슈발로프 국가개발공사 회장도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사업가인 예브게니 프리고진도 제재 명단에 추가됐다. 그는 해외에서 용병을 동원하는 사기업인 와그너그룹을 운영하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초기에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암살을 위해 수도 키이우에 용병을 침투시키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백악관은 그가 "푸틴의 허위 선전을 퍼뜨리는 고위직"이라서 이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고강도 제재가 연일 이어지면서 러시아 경제에 적잖은 타격이 가해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3일 기준으로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BB+에서 CCC-로 8단계 하향 조정했다.
S&P는 이같은 평가를 내린 배경에 대해 서방의 제제 때문에 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CCC-는 국가부도인 D등급보다 두 단계 위로, 원금과 이자 상환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경우에 내려지는 평가다.
뿐만 아니라 S&P는 러시아의 향후 신용등급이 더 내려갈 수 있다며 '부정적'인 단계로 평가했다. 앞서 이 기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었던 다음날인 지난 2월 25일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낮추기도 했다.
S&P와 함께 세계 3대 신용기관으로 불리는 무디스와 피치도 러시아의 국채 신용 등급을 6단계 낮췄다. 피치는 러시아의 등급을 종전 'BBB'에서 'B'로 낮추며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렸고 무디스도 'Baa3'에서 'B3'로 강등했다.
서방을 중심으로 한 제재 부과와 이에 따른 경제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및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계획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3일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와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면서도 "군사작전은 계속할 것이다.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우크라이나 내의 인프라를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시사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긴장 고조가 목적이 아니다. 핵 전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발언을 하는 인사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라며 푸틴 대통령이 아니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먼저 이같은 이야기를 꺼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군사 작전이 계속되고 있고 이날 진행된 러시아-우크라이나의 2차 협상도 민간인 대피 통로 마련 등 제한적인 측면에서만 이뤄지면서 향후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 담판을 짓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나와 협상을 위해 마주 앉자. 다만 30m나 떨어져 앉지는 말고"라며 "당신은 무엇을 무서워 하는 건가. 어떤 말이든 총탄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해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것은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문제는 바이든이 아니라 세계의 우유부단함에 관한 것"이라고 말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보다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적 대응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이 요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미국이 나서서 하게 될 경우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거부 입장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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